전자가 여권의 인물 우위를 과시하려는 것이라면, 후자는 ‘전국 정당화’ 의지를 국민에 각인시키려는 의지 표현이다.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가 추진중인 영남권 물갈이, 조순형 민주당 대표가 ‘대구 출마’라는 카드를 통해 관철하려는 호남물갈이론의 바람에 맞서려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번 총선에서 반드시 의회 제1당이 돼야 행정과 의회의 양대 권력을 축으로 남은 4년간 안정적인 국정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 여권은 이번 총선을 통해 제1당으로 거듭나지 못하면 남은 국정운영은 없다는 각오로 ‘지역구 대이동’을 준비중이다. 사진은 그 핵심인물로 거론되는 인사들. 왼쪽부터 정동영, 유시민 김부겸, 김영춘, 천정배 | ||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당사자들에게 이를 직접 또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적극 권유한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지역구 이동의 핵심은 수도권 출신의 영남 배치인데, 최근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을 만난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이와 관련한 노 대통령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노 대통령이 지역구 이동을 통해서라도 영남에서 바람을 일으키고 선거에서 이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노 대통령은 특히 고향이 경북인 아무개 의원을 거명하면서 ‘이번 총선에 그 사람 혼자 대구에 내려보내는 건 곤란하지만 여러 사람으로 팀을 짜서 한꺼번에 내려보내는 것은 괜찮지 않느냐’고 말했다. 지금으로서는 떨어질 게 확실하다는 지적에 대해 ‘떨어지면 내가 먹여 살려주면 되지’라는 농담까지 했다. 몇 사람의 이름이 추가적으로 오갔다. 지역주의의 벽을 깨려면 누군가가 희생을 각오해야 하고 일단은 영남에서 옥쇄론을 불사하겠다는 의식과 행동이 일어나야 한다는 게 노 대통령의 생각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창당 때 거론됐던 당내 유력인사의 지역구 대이동에 대한 검토 작업이 다시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1월11일 전당대회 이후 출범한 정동영 의장 체제가 몰고온 상승 효과는 지역구 대이동의 실현 가능성을 더욱 높여주고 있다.
우리당 내에서 지역구 대이동이 검토되는 대상은 정동영 의장과 천정배, 김부겸, 김영춘, 유시민 의원 등이다.
정 의장의 경우 서울로 올라오는 역(逆)이동을 선택받는 지점에 서 있다. 전북 순창 출신으로 전북 전주 덕진을에 지역구를 둔 정 의장은 서울 종로 출마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우리당 바람을 일으키려면 서울에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당내 여론을 반영하는 측면이 우선 강하다.
‘포스트 노무현’을 겨냥한 자신의 대권 행보를 유리하게 가져가기 위해서는 호남을 뛰어넘는 전국 지도자로 우뚝 서야 한다는 개인적 필요성도 적지 않다. 종로에 출마할 경우 무조건 1등이라는 각종 비공개 여론조사 결과도 정 의장의 종로 출마를 유혹하는 부분이다.
노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정동영 의장의 지역구 이동과 종로 출마는 바로 노 대통령의 뜻과 부합하며, 특히 최근의 열린우리당 상승기류로 볼 때 정 의장의 결단은 ‘시간문제’라고 한다.
노 대통령의 의중을 읽고 있는 우리당의 한 측근 인사는 “정 의장의 종로 출마설이 언론에 회자되자 노 대통령이 굉장한 관심을 표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내에서는 이참에 영남지역으로 지역구를 이동할 수도권 인사들의 명단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당 대표인 정 의장의 지역구 이동은 더 ‘큰 그림’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김부겸(경기 군포), 김영춘(서울 광진갑) 의원이 당 안팎에서 각각 고향 출마를 설득당하고 있는 건 이를 말해준다. 김부겸 의원은 대구, 김영춘 의원은 부산 출마를 직·간접적으로 권유받고 있다.
또 다른 맥락에서 호남 출신이면서 당내 개혁파의 상징인 ‘천신정’(천정배 신기남 정동영) 트리오의 영남 차출론까지 제기된다. ‘노빠’(노무현 오빠)부대의 대장격인 유시민(경기 고양 덕양갑) 의원의 경북 경주 출마론도 이런 상황에서 나온다.
노 대통령과 동지적 관계인 이철 전 의원도 요즘 고민이다. 현재 서울 성북갑에서 뛰고 있지만, 청와대로부터 부산 출마를 ‘강권’받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최근 이 전 의원을 만나 ‘노통의 뜻’임을 들어 “부산에서 뛰는 게 좋겠다”고 권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 군포 출신에 DJ정부 시절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냈던 유선호 전 의원의 목포 출마론도 거론된다.
하지만 유 전 의원의 목포출마론은 DJ의 장남인 김홍일 의원의 민주당 탈당과 무소속 출마 선언으로 좀 누그러졌다. 김홍일 의원의 무소속 출마가 DJ와의 긴밀한 상의 속에서 이뤄졌을 게 확실한 데다 이 경우 민주당과 우리당 양쪽으로부터 눈총을 받지 않으려는 DJ의 자식 사랑에 대한 생각이 녹아 있을 텐데, 냅다 공천을 하는 게 DJ의 노여움만 사게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서다.
현재의 구상대로라면 총선 출마 일반 공무원의 사퇴 시한(2월15일)과 맞물려 앞으로 2주 안에 지역구 대이동과 관련한 구체적인 모습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2월 중순이 되면 정국은 그 모습을 구체화하는 여권의 올인전략으로 다시 한번 요동칠 게 확실하다.
허소향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