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광역자치단체장 공천신청자 간담회가 3월 20일 국회 사랑채에서 열린 가운데 서울시장 예비후보 김황식 전 총리, 이혜훈 최고위원, 정몽준 의원이 공정경선서약을 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그뿐만이 아니다. 김 전 총리와 오랜 친박계인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서울시장 예비후보)이 서울 여의도 대하빌딩 6층과 7층에 선거사무소를 마련하면서 묘한 동거가 시작됐다. 이 빌딩은 2012년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 때 박 대통령이 선거캠프를 차렸던 곳이다.
반면 비박계인 정몽준 의원은 대하빌딩 옆 용산빌딩 3층으로 갔다. 용산빌딩은 이 전 대통령이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둥지를 틀었던 곳. 그래도 정치권에선 “김 전 총리를 친박계가 미는 게 맞나. 죽었다 깨어나도 박심은 MB 사람들을 안을 수 없을 것”이라 의구심을 표했다.
그런데…. 새누리당 서울시장 경선에 나설 2차 컷오프 발표 하루 전, 정치권에선 이런 말이 돌았다. 당 공직후보자추천관리위원회가 서울시장을 2배수로 압축하려는 분위기란 이야기였다. 친박계 소식을 잘 아는 여권 관계자는 이런 말을 들려줬다.
“사실 양자구도가 빅매치인 것은 맞다. TV토론도 세 명보다 두 명이 나섰을 때 노출 효과가 큰 것처럼, 신문이든 방송이든 토론이든 연설이든 양자구도가 흥행을 배가시킨다. 그런데 누구나 알만한 친박, 그것도 구박(舊朴)인 이 최고위원을 버리고 정(몽준)·김(황식) 둘을 내세운다면 둘 중 한 명은 친박에서 밀어주는 후보가 있다는 것 아니냐. 정몽준 캠프에는 이재오 의원이 있다. 친박계에게 이 의원은 공천학살의 원수다. 2배수 압축 이야기는 곧 친박이 김 전 총리를 민다는 것을 일부러 표출한 것이거나, 큰 실수를 한 것이거나 둘 중에 하나라고 본다.”
요즘 ‘황시경’이란 말이 정치권에 회자한다. ‘김황식 형’의 줄임말을 발음대로 표시한 것이다. 가수 성시경이 최근 여러 토크 프로그램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데 친박계에서 만든 말이라는 설이 있다. 그만큼 황시경은 친박계에서 친숙하게 대하고 있다. 한 정치권 인사의 말을 더 들어보자. “아무래도 서울시장 경선은 2강 1약 구도다. 이혜훈 최고위원은 ‘중’으로 올라가기엔 인지도가 너무 떨어진다. 친박계, 여의도 등지에선 이 최고의 정치력이나 인맥, 두뇌회전이나 정보력을 인정하지만 일반 시민에게는 아무래도 ‘듣보잡’일 뿐이다. 실제 2배수 이야기가 나왔을 때 이 최고가 김황식 캠프로 가 선대위원장을 할 것이라는 둥, 이 최고는 흥행의 불쏘시개였을 뿐 역할이 이쯤에서 끝났다는 둥 말들이 많았다. 그런데 많은 해석을 필요로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추가 컷오프’ 논란이 일었을 때 이 최고위원보다 더 성낸 것은 정 의원이었다. 추가 탈락자가 나온다면 여론조사에서 3등을 고수했던 이 최고위원일 수밖에 없었는데 정 의원이 논평을 내고 “추가 컷오프는 ‘빅3’ 경선을 믿었던 당원과 여성 유권자의 신뢰를 깨는 것이자 여성 후보에 대한 명백한 차별이다. 경선이 무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배수진을 쳤다. 이 최고위원으로서는 손 안 대고 코 푼 격이었고, 결국 추가 컷오프는 없었던 일이 됐다.
정 의원 측은 중앙당의 컷오프 원칙은 3배수였는데 이를 2배수로 압축하는 것에는 ‘불량 의도’가 있다고 판단했다. 바로 양자대결 구도를 만들어 친박계의 전폭적 지원이 이뤄질 것이란 해석이었다.
항간에서는 이 최고위원이 정 의원에게 더 가까이 있다는 말이 나온다. 대하빌딩 동거가 친박계 울타리가 아니라 ‘김 전 총리를 향한 일종의 촉수 내지는 안테나가 아니냐’는 것이다. 정치권의 한 정보통은 “이 최고위원 캠프에만 가면 솔직히 정·김 캠프에 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모든 정보가 이 캠프로 몰린다. 정보 길목과 같다”고 귀띔했다.
특히 서울 서초을에서 재선을 한 이 최고위원이 정 의원 지역구인 동작구로 이사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치권에선 “이혜훈이 정몽준을 돕고 동작을 보궐선거에 나서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내놓는다. 여의도 소식을 수집하는 한 기관 관계자는 이런 말을 했다.
“광역단체장 경선이 ‘2:3:3:2(대의원:당원:국민선거인단:여론조사)’로, 사실상 당원과 대의원 50%, 국민과 여론조사 50%로 반영된다. 지난 경선전을 보면 여론조사에 앞서더라도 당원과 대의원 표를 얻지 못해 떨어진 후보가 있었는가 하면 그 반대도 여럿이었다. 친박이 사실상 여권을 장악한 상태에서 누가 봐도 이 최고위원이 당원과 대의원 표를 가장 많이 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서울 당협위원회의 절반 가까이를 이 최고가 먹었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정 의원이나 김 전 총리로서는 어떻게든 이 최고를 구워삶아서 자기편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자꾸 빅딜설이 나오는 것이다.”
김 전 총리는 최근에도 “박 대통령을 도왔던 많은 분들이 저희 캠프에 있다”며 박심을 등에 업으려 한다. 반면 정 의원 측에선 물리적 도움(자금, 지역구 등)에 앞선다. 2배수 압축이 무산되자 김 전 총리 측은 경선 관리의 무원칙과 무능을 겨누면서 경선 보이콧을 시사했다. 상황이 시나리오대로 돌아가지 않으니 일단멈춤을 통해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런 시나리오도 등장했다. 정 의원이 서울시장 후보, 김 전 총리 새누리당 대표, 이 최고위원은 7월 재·보선 도전이라는 각본이다. 정 의원으로서는 현대중공업 주식의 백지신탁이 아킬레스건이 아닐 수 없다. 정 의원이 서울시장이 돼 차기 대권 주자로 급부상하는 것이 싫다면 친박계가 쓸 수 있는 카드는 여럿 있다는 이야기다.
선우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