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검찰의 서정우 고문에 대한 구속기소는 어디까지나 삼성과 LG, 현대차 등 대기업으로부터 대선자금을 수수한 부분까지다. 아직 롯데그룹에 대한 대선자금 수사 발표가 없었고, 5대 대기업 외 20대 기업으로부터 건네진 대선자금과 관련한 소환조사나 압수수색 등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대선자금 수사는 2004년 갑신년을 맞아 새로운 국면이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와중에 검찰의 대기업 대선자금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과정에 또다른 대선자금 제공 기업들의 리스트가 흘러나와 귀추가 주목된다.
워크아웃 상태에 놓여 있는 대우건설과 김대중 정부 시절 민영화된 공기업 서너 곳에서도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의 대선자금이 정치권에 건네졌다는 의혹이 검찰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5대 기업을 포함, 20대 기업에서 제공된 대선자금 수사가 일반적인 정치자금과 관련한 것이라면, 이들 워크아웃 기업 또는 민영화 공기업의 경우 사장 선임에 정권이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파장이 예상된다.
검찰이 5대 기업에 대한 대선자금 수사와 노무현 대통령 측근 비리에 대한 수사 발표를 앞두고 안대희 중수부장이 때늦은 휴가에 들어가는 등 장고(長考)에 돌입한 배경에는 대선자금 수사 확대에 따른 부담을 감안, 여론 탐색의 성격이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일단 12월 말까지 검찰의 수사 진행상황만으로 보면, 대기업으로부터 5백여억원을 제공받은 한나라당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와 안희정 이광재 최도술 강금원 선봉술 이기명 등으로 이어지는 측근비리의혹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는 어느 정도 균형 잡힌 등가수사로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검찰의 고민은 지금부터다. 삼성, LG, 현대차 등으로부터 3백62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이회창 전 후보의 법률고문을 지낸 서정우씨를 지난 12월26일 구속기소했지만, 여전히 5대 대기업 이외 20대 기업에 대한 대선자금 수사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현재 검찰 안팎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큰 규모의 대선자금은 이제 나올 만큼 나왔다’는데 딜레마가 있다. 두 차례에 걸쳐 압수수색을 벌인 롯데그룹 정도에서 현대차에 버금가는 대선자금 제공 혐의가 포착됐을 뿐이다.
수사의 새로운 국면을 전개할 것으로 예상되던 한화, 금호 등 여타 기업들이 제공한 대선자금 규모는 5대 기업에 훨씬 못미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1백50억 차떼기와 1백억원 차떼기, 1백12억원의 책자 양도성예금증서에 놀란 국민들이 이보다 적은 대선자금 제공 사실에 얼마 만큼 검찰 수사에 뒷심을 보태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한때 네티즌 사이에서 ‘안대희 신드롬’이 일기도 했지만, 최근 들어 이러한 신드롬도 시들해진 상황이다. 이 때문에 5대 기업에 대한 수사 이후 6대 기업에서 20대 기업으로 수사를 확대해야 할 검찰은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으로 풀이된다.
사정당국 소식에 밝은 한 인사에 따르면, “한나라당에 유입된 대선자금 수사는 서정우 변호사가 긴급체포되면서 굵직한 것은 어느 정도 밝혀진 셈”이라며 “검찰 수사가 확대될 조짐을 보이던 시점에 이회창 전 후보가 기자회견을 하고, 검찰에 자진 출두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대선 당시 부국팀에는 이정락 회장을 비롯, 서정우 변호사가 부회장으로, 대외적으로 이흥주 특보가 실무책임자로 알려져 있지만, 이들 외에도 A변호사 L회계사 등도 적지 않은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전했다.
특히 이 인사는 “이정락 회장은 대선자금과 관련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았고, 대신 서정우 변호사가 주로 대기업을 담당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서 변호사 외에도 부국팀에 참여했던 다른 인사들은 5대 기업 이외 기업을 담당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검찰의 수사가 계속된다면, 서정우 변호사 이외 다른 부국팀 인사들의 역할에 초점이 맞춰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그렇지만 ‘감옥에 가겠다’며 검찰에 자진출두한 이회창 전 후보에 대한 처리 문제로 검찰의 고민은 깊어졌다는 게 이 인사의 분석이다.
이 같은 어려움 속에도 검찰의 강도 높은 대선자금 수사는 2004년 벽두부터 재개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민영화 공기업 등에서도 적지않은 대선자금이 건네졌다는 또다른 의혹이 정치권을 비롯, 검찰 주변에서 새롭게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P, K, 또다른 K, 또다른 K 등 서너 개 민영화 공기업들의 이름이 검찰 안팎에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민영화 공기업의 대선자금 제공 의혹은 단순한 정치자금 제공 의혹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5대 대기업 등에서 건넨 대선자금이 정치자금 성격이 강한 반면, 민영화 공기업 등에서 건넨 자금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인사청탁’을 목적으로 한 ‘대가성 뇌물’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실제 민영화된 공기업이라 하더라도 아직까지 정권의 입김이 경영진 인사권에 적잖이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민영화 공기업들의 대선자금 제공 의혹으로까지 검찰 수사가 확대될지 주목하는 이유다.
한편,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와는 별도로 또다른 기업 비자금이 새로운 뇌관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원주지청 수사를 통해 대검 중수부에 이첩된 대우건설 비자금 수사가 그 것이다.
강원랜드 건설 수주와 관련, 김대중 정권 실세들에게 건네진 수백억원대 대우건설 비자금 수사가 예고되고 있는 것. 대우건설 소식에 밝은 한 인사는 “원래 원주지청 수사로 (비자금) 윤곽이 잡혔고, 자금 흐름까지 어느 정도 드러났었다”며 “그런데 웬일인지 검찰 수사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며 “그러나 폭발성이 강한 사안인 만큼 언제든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강원랜드와 관련한 비자금은 과거 정권 실세들에게 상당부분 유입돼 있다는 점에서 그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업들의 대선자금 제공 수사와 민영화 공기업들에 대한 대선자금 제공 의혹 수사가 주로 한나라당을 겨냥하고 있다면, 대우건설 비자금 수사의 경우 주로 민주당을 겨냥하고 있는 셈이다.
특검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 측근비리 의혹이 강도 높은 수사를 받는 점을 감안해본다면, 4월 총선을 앞둔 정치권의 운명은 검찰 손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1백20년 전 갑신정변으로 낯에 익은 2004년 갑신년에는 유난히 정치인들에게 파란이 예고된 한해가 될 전망이다. 이 모든 키를 쥐고 있는 검찰의 다음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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