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일 손길승 SK그룹 회장을 구속하는 등 검찰이 한껏 수사 속도를 내자 기업체 정보팀도 검찰정보 캐내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임준선 기자 | ||
이에 따라 기업들의 대 검찰 정보안테나도 ‘풀’로 가동되고 있다. 그동안 정보 탐지에 뜸하던 SK의 경우 손길승 회장 구속을 전후해 검찰과 대검 기자들에 대한 대대적 정보 캐기 활동이 다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다른 대기업 정보팀 관계자들도 날마다 서초동 주변에서 대기하며 식사시간에 검찰 관계자들과 약속을 잡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닌다고 한다. 재벌 총수들도 그동안 쌓아온 정보라인을 총동원해 검찰 분위기 파악에 힘을 쏟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기업들이 검찰의 정보를 빼내는 데 혈안이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자구책이다. 자신들을 옥죄어 오는 검찰의 칼을 1분이라도 먼저 알아야 대응책을 모색하고 로비창구를 개설할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가 막바지로 치닫는 시점에서 기업들의 대 검찰 ‘정보전쟁’ 뒷얘기를 따라가 봤다.
대기업 정보팀의 A씨는 최근 뜨끔한 경험을 했다. 그는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와 관련해 나름대로 안테나를 총동원해 매주 힘겹게 정보보고를 올려 왔다. 특히 자신의 기업에 영향을 미칠 검찰발 정보에 대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발빠르게 알아내야만 했다. 그런데 최근 어느 날 그룹의 총수가 직접 라이벌 회사의 긴급 자금대출 정보를 미리 알아내 정보팀 관계자들을 머쓱하게 만들어버린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그 뒤부터 총수가 정보팀을 영 마뜩지 않은 표정으로 바라봐 회사에 있어도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다는 게 A씨의 푸념이다. 회사의 정보수집 일을 총수가 직접 ‘처리’했으니 자신들의 존재가 더 없이 초라하게 느껴지더라는 것이다.
현재 웬만한 대기업들은 별도의 정보팀을 운영하고 있다. 많게는 10명 적게는 단 1명의 ‘사원’들이 자신들의 회사와 관련한 정보를 수집하고 다닌다. 최근 대선자금 수사가 마지막 피치를 올리자 기업 정보팀의 안테나는 온통 서초동 대검청사로 쏠려 있다.
이들 대기업 정보팀원들은 서초동 주변에 하루 종일 대기하며 식사시간에 맞춰 약속을 잡고 정보 캐내기에 혈안이 돼 있다. 심지어 일부 기업 팀의 경우 대검 중수부 주변에 대기하다가 중수부 차량이 어디론가 사라지면 즉시 이를 본사로 ‘중계’해 압수수색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도록 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기업 정보팀의 B씨는 이에 대해 “아직까지 고위급 임원들에 비해 연륜이 낮으니 아무래도 고급정보에 가까이 가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고 전하면서 “지난해 초 대검 한 핵심 간부가 임명되고 나서 회사에 한바탕 소란이 있었다. 모든 라인을 동원해 그 간부와 줄을 대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그때 힘을 발휘한 사람들이 고위급 임원들의 사적인 라인이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삼성과 CJ그룹 등은 임원들을 정보수집에 공식적으로 활용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대검 관계자 C씨는 이에 대해 “보통 사건이 터지면 기업에서는 학맥이나 지연을 총동원해 검찰 간부나 일선 수사관계자 가릴 것 없이 접근해온다. 이때 학연 지연이 닿는 상무이사급 이상의 고위 임원들이 직접 검찰 관계자에게 전화해 ‘선배’로서 한번 만나자고 하면 할 수 없이 응하게 된다”고 밝혔다. 대기업들이 자체 법무팀 책임자로 영입한 검찰 간부 출신 인사들이나 고문 변호사들이 ‘줄’ 역할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이들 임원들과 상대하는 검찰 라인도 대부분 고위간부들이라고 한다. 대검 관계자 C씨는 이에 대해 “일부 간부급 검사들은 ‘인기관리’도 해야 하기 때문에 정치권과 대기업 등을 위한 ‘정보원’ 역할도 가끔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예전에는 정치 검사들의 정보력이 곧 진급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정보 파악에 혈안이 되어 있었던 게 사실이다”고 말했다.
기업체가 검찰의 분위기를 직접 파악하지 못할 경우 주로 이용하는 소스는 대검 출입기자들이다. 기업체는 평소 이들과 끈끈한 개인적 유대 관계를 맺어 놓고 사건이 발생하면 기자들의 정보에 크게 의존한다고 한다.
대검 출입기자 L씨는 이에 대해 “사실 기자들에게 기업 정보팀은 그리 반가운 손님이 아니다. 그들에게서 얻는 정보는 거의 없고 대부분 우리가 취재를 당하는 입장이다. 그래서 신경을 안 쓰려고 하지만 개인적 유대관계를 맺은 사람의 경우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다”고 밝혔다.
L기자는 덧붙여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가 피치를 올리면서 요즘 부쩍 정보팀의 전화가 늘었다. 대부분 검찰 주변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것마저도 그들에게는 상당히 소중한 정보라고 한다”고 말했다.
앞서의 대검 관계자 C씨는 지난해 씁쓸한 경험을 했다. 최고의 정보력을 자랑하는 모 그룹 정보팀 관계자가 어느 날 자신을 조용히 보자고 하더란다. 평소 친분이 두터웠지만 정보 교환은 그리 활발하지 않았던 터. 그 관계자는 B씨에게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기업체의 고급정보를 가지고 있다. 아마 검찰이 꼭 필요한 정보일 것”이라고 말문을 열면서 “이것을 줄 테니 우리 기업과 관련된 내부 정보 하나만 좀 알려 달라”고 ‘딜’을 제의했다.
대검의 C씨는 곰곰 생각해 보다 결국 제안을 거절했는데 그 회사 관계자가 요구한 것이 검찰의 핵심 정보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일로 C씨는 이 그룹의 로비력과 정보력에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의 정보가 왜 광범위한지도 알게 됐다고 털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