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리커처=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강 장관의 매력으로 군더더기 없는 솔직담백함을 꼽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그는 누구보다 전통춤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인간적인 매력을 더하고 있다.
그는 춤에 관한 자신의 철학을 솔직하게 밝혔다.
“장관이 웬 춤이냐?”는 주변의 시선에 대해 마치 “이제 그런 편견은 버려!”라고 당당히 말하는 듯하다. 실제로 그는 인터뷰를 할 때마다 전통무용 얘기를 빼놓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을 꼽으라면 춤이고, 다음이 노래”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사석에서 “법조인이 안 됐으면 전통무용을 했을 것”이라는 말도 했다. “춤이라면 디스코와 막춤도 추지만, 전통무용을 특히 좋아하는 것은 정신이 몰입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오래 추면 호흡도 깊어지고 명상하는 효과도 있다”고 설파했다.
그래서 많은 강 장관의 팬들은 전통무를 하는 단아한 그의 자태를 보고 싶어한다.
강 장관은 춤과 관련, 그동안 자신이 직접 사사받았던 ‘스승’에 대해 조심스럽게 언급하곤 했다. 물론 누구라고 꼭 집어 말하진 않았다.
그의 스승으로 알려진 인사들 역시 “내가 강금실을 가르쳤다”고 나서질 않았다. 오히려 언론을 피하기 일쑤였다. 그들은 한사코 ‘사회의 편견’을 염려하며 “괜한 오해를 일으키기 싫다”는 이유로 인터뷰를 거부했다. 때문에 강 장관의 춤 인생에 대한 취재에서 만난 가장 큰 난관은 그의 춤 스승들의 입을 열게 하는 일이었다.
취재결과 확인된 강 장관의 전통무 스승은 모두 네 명이었다. 진주검무와 교방굿거리춤의 대가인 인간문화재 김수악 선생과 궁중무용의 대가인 인간문화재 이흥구 교수, 그리고 살풀이춤의 대가인 인간문화재 고 한영숙 선생의 이수자인 손경순 교수와, 도살풀이춤의 대가인 인간문화재 고 김숙자 선생의 딸 김운선 선생 등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국내 전통무용을 대표하는 대가들이고 또 전수자들이다.
이들의 강 장관에 대한 평은 한결같았다. “전통무에 대한 자질을 타고났다”는 것. 전통무에 관한 한 자신이 최고라는 자존심을 가진 춤꾼들이지만 유독 강 장관에 대한 칭찬은 아끼지 않았다. 4인의 스승들과 전통무 관계자들에 의해 그동안 알려져 있지 않았던 강 장관에 대한 많은 뒷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장관에 임명되기 전 개인 발표회까지 고려했던 강 장관은 실제 한 차례 무대에 오른 적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전통무의 한 관계자는 “예전에 전체적으로 하는 발표회 때 그도 함께 섞여서 한 번 무대에 오른 적이 있다. 전체 공연의 한 부분이어서 두드러질 수도 없었고, 딱히 무대 경력으로 내세울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다”고 전했다. 공연 시기와 명칭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무대에 딱 한 번 섰던 것은 맞다”고 확인했다.
강 장관은 지금도 가끔 전통무를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통무의 한 관계자는 “지금도 강 장관은 계속 전통무를 하고 있다. 물론 판사나 변호사 시절처럼은 못하지만 정신수양과 운동 차원에서 틈틈이 하고 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가장 최근의 춤 스승인 김운선 선생은 “강 장관이 ‘사람들과 계속 부딪히는 일이다 보니 스트레스가 많은데, 전통무에 몰입하면 정말 도움이 된다’고 했다”고 전했다. 손 교수 역시 “최근에도 가끔 전화 연락을 하고 있고, 전통무용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있다”고 밝혔다.
강 장관은 본인이 직접 수소문해 대가들을 찾아다니며 가르침을 청했다. 진주에 있는 김수악 선생의 경우 80년대말 자신의 부산지법 근무 기간을 이용, 직접 진주를 찾기도 했다.
김 선생과 관련된 비화 한 토막.
2년여 동안 김 선생을 통해 전통무에 깊이 빠졌던 강 장관은 90년 서울지법 발령으로 사사를 중단해야 했다. 그러자 강 장관은 김 선생을 서울로 직접 모셔다 몇 차례의 가르침을 더 받고 또한 다른 지인들에게도 함께 배울 것을 권유하기도 했다고 한다.
문제는 서울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김 선생이 거처할 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다는 점. 이때 강 장관은 주저없이 자신의 안방을 내주며 김 선생을 한동안 극진히 모셨다고 한다.
손 교수는 “김 선생님의 춤을 함께 배워보지 않겠느냐고 해서 당시 얼마간 함께 모시며 배운 적이 있다. 당시 강 장관은 진심으로 그 분을 존경하며 집에서 극진히 모셨다”고 전했다.
강 장관은 가급적 일대일 개인 교습을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운선 선생은 “토, 일요일을 주로 이용했다. 미리 연락을 취해 약속 시간을 정하고 혼자 춤을 배웠다”고 전했다. 그는 “다른 선생님과는 달리 나는 가르칠 때 형식을 그리 중시여기지 않는 편이라 복장은 그냥 편한 차림으로 하도록 했다. 하지만 가끔은 강 장관이 직접 한복을 챙겨와서 입고 추기도 했다”고 전했다.
▲ 강금실 장관의 전통무용 스승들. 손경순 숭의여대 교수(왼쪽위), 김운선 선생(오른쪽위), 아래는 김수악 선생과 함께 한 강금실 장관. | ||
문학평론가 남재일씨는 “10년 전 문화판 사람들의 모임에서 강 장관을 처음 봤는데 당시 주변으로부터 ‘살풀이춤 추는 사람’으로 소개받았다”고 했다. 그는 당시 강 장관의 모든 분위기가 살풀이춤 추는 사람으로 느껴졌다고 했다.
살풀이춤을 익힌 후 그는 전통무 중에서도 가장 난이도가 높은 승무와 궁중무용도 욕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강 장관이 춤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대학 동아리 ‘가면극연구회’에 들어가 탈춤을 배우면서였다. 당시에 대해 강 장관은 “북 두드리는 걸 좋아해서 탈춤반에서 활동했는데 법대에 들어왔으니까 이런 건 그만둬야 한다 뭐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그만두고…”라고 밝힌 바 있다.
혹독한 유신 치하 최루탄 가스 속에서 대학을 졸업한 그는 81년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83년 판사로 입문하게 된다. 서울지법 남부지원에서 시국 사건을 줄줄이 맡는 등 초임 판사 시절을 정신없이 보낸 그는 85년 ‘좌천성 한직’인 서울가정법원으로 옮기면서 잠시 숨을 돌리게 된다. 이때부터 전통무용을 배우고 싶다는 내면의 열정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강 장관은 경기여고 동문 선배인 이명경씨를 통해 손 교수를 소개받았다. 손 교수를 통해 살풀이춤과 승무를 배웠던 그는 88년 부산지법으로 발령이 나면서 진주에 있는 김수악 선생을 찾게 된다. 그는 김 선생의 당시 제자였던 손심심씨를 통해 직접 진주를 찾았다.
김 선생은 “어느날 문득 부산의 손심심이가 여자를 한 명 데리고 왔다. ‘선생님 명성은 TV를 통해서 봤다’며 ‘춤을 배우고 싶다’고 정중하게 인사를 하더라. 배우고 싶다고 청하는데 내칠 이유가 있나. 그래서 가르쳐 줬는데 곧잘 배우더라. 얼핏 따라하는 폼이 제법 익힌 솜씨였다. 물론 그땐 그 여자가 판사인지 뭔지도 몰랐다”라고 밝혔다.
여든의 나이인 김 선생은 딸뻘인 강 장관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애착을 표시했다. 그는 “춤은 맵시도 있지만 ‘춤씨’라고 하는 것이 따로 있는데 강 장관은 보기 드물게 춤씨가 있었다. 이전부터 죽 배워왔던 다른 제자들보다 훨씬 나았다”고 회상했다.
다시 서울로 올라온 강 장관은 손 교수에게 “승무와 살풀이춤을 배워 봤으니 궁중무용을 한번 배워보고 싶다”고 청했다. 손 교수도 “궁중무용이 잘 어울릴 것 같다”며 자신의 스승인 이흥구 교수를 소개했다.
이 교수는 “당시 손 교수를 통해 강 장관을 소개받아 6~7년간 궁중무용을 가르쳤다. 전문적으로 배워온 웬만한 제자들보다 그 자질이 훨씬 뛰어났다. 장관으로 발탁되면서 사사를 그쳤지만, 다시 가르치고 싶을 만큼 애착이 간다”고 전했다.
강 장관은 96년 변호사 개업한 뒤 김운선 선생을 만나게 된다. 그는 신림동에 있는 김 선생의 사무실을 직접 찾았다. 김 선생은 “96년 봄쯤 한 여성이 와서 ‘돌아가신 김숙자 선생님의 생전 공연을 두세 번 본 적이 있는데 꼭 한번 직접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을 내서 좀 가르쳐달라’고 정중히 청하더라. 명함을 보니 변호사여서 참 특이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당시 강 장관은 일주일에 한 번씩 개인교습을 받기로 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바쁜 변호사 업무로 교습시간은 들쭉날쭉했다. 김 선생 역시 “꾸준히 정기적으로 배웠으면 참 좋았을 텐데 사정이 여의치 않다보니 맥이 중간중간에 끊겼다”며 아쉬워했다.
2000년에 접어들면서 강 장관은 남편 김태경씨의 사업 실패로 이혼을 하고 법무법인 지평의 대표와 민변 부회장 등을 맡으면서 전통무에서 한동안 멀어졌다.
이에 대해 강 장관은 한 시사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춤을 계속 배우지 못해 참 아쉽다. 85년에 처음 배웠는데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에 배우다 말고 그 후에 또 한 차례 배우다 말고… 판사 시절 배우다 만 춤이 못내 아쉬워 변호사 개업 후 한 스승으로부터 다시 1년여 배웠는데 정신이 산만하니까 영 잘 안되더라. 변호사 개업 뒤 계속 돈문제·사건에 신경쓰다 보니 명상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