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유명 백화점에서 잇따라 벌어지고 있는 명품절도 사건들의 속을 들여다본다.
▲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 ||
지난해 10월19일 강남의 A백화점. 방배경찰서 소속 형사들이 백화점 1층에 나타났다. 왜 형사들이 백화점에 나타났을까.
강남권 백화점에 미모의 여성이 명품 의류를 훔친다는 첩보를 입수했던 까닭이었다. 경찰은 고객이 많은 일요일 오후를 ‘디데이’로 잡았다. 경찰은 범인으로 보이는 인물이 훔친 물건을 숨기거나 자신의 모습을 위장하기 위해 화장실을 한 번쯤은 들를 것으로 예상하고 화장실 앞에서 진을 쳤다.
예상은 적중했다. 경찰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여자 화장실 안으로 들어간 미모의 20대 여인을 추적, 화장실과 인근 지하철역 사물함에서 그녀가 훔친 명품 의류를 발견하고 곧바로 그 여성을 구속했다.
구속된 20대 여성은 명문 사립대 경제학과 출신 김아무개씨(여·25·무직). 놀랍게도 김씨는 상습 명품 절도범이었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는 지난해 7월부터 서울 강남지역 백화점을 돌며 모두 14차례에 걸쳐 2천여만원 상당의 의류를 훔친 것으로 밝혀졌다. 더욱 놀라운 점은 2001년에도 같은 혐의로 구속된 적이 있었다는 것.
김씨는 원래 부유한 가정 환경에서 태어났으나 갑작스레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면서 세상을 떠나자 걷잡을 수 없이 이성을 잃고 ‘나락’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 재학 시절부터 명품을 사재기한 김씨의 카드 빚은 무려 1억원. 대학 졸업 후 취업도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대금 상환이 불가능했던 김씨는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고육지책’을 선택하고야 만 것이었다.
김씨는 고객이 몰리는 금·토요일 오후 점원이 1∼2명 상주하는 매장을 찾아가 미리 가져온 가방에 옷을 담거나 혹은 매장에서 두세 벌의 의류를 훔친 뒤 탈의실에서 한 벌을 갈아입고 나머지를 가방 등에 챙기는 수법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이렇게 훔친 옷을 대학가 매장이나 지인들에게 되팔고 현금을 마련하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 사건2. 쇠고랑 찬 모녀 절도단
지난해 6월 동대문경찰서에는 50대 여인이 붙잡혀 들어왔다. 백화점 명품 매장에서 고가의 의류만을 상습적으로 절도하다 쇠고랑을 찬 것이었다. 경찰은 현장에서 붙잡힌 20대 공범을 추가로 불구속 입건했다. 공범은 어처구니없게도 50대 여인 S씨(56)의 딸 Y씨(25)였다.
놀랍게도 어머니가 훔치고 딸이 망을 본 사건이었다. 모녀가 훔친 명품은 50여 점에 달하는 고가 의류와 구두, 총 7백여만원어치.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심지어 하루 16개 매장을 돈 적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어머니 S씨의 범행 동기는 빗나간 모정이었다. “10년 전 이혼하고 혼자 키워온 외동딸이 ‘명품 옷을 사달라’고 자주 졸랐다. 딸에게 예쁜 옷을 입히고 싶은 마음에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
- 사건3. 끊지 못한 ‘마술’의 유혹
‘마술이 마술을 부렸다?’
지난해 강남경찰서에 구속된 이아무개씨(여·44). 생리기간 중에만 백화점을 돌며 명품 화장품과 의류 등을 훔치다 경찰에 붙잡힌 케이스. 이씨는 지난 11월27일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 세개층 매장을 돌며 수입 영양 크림과 의류 등 수백만원어치의 명품을 몰래 훔치다 직원에게 적발됐다. 이씨는 ‘생리도벽’ 환자였다. 이전에도 똑같은 혐의로 무려 9차례나 검거 적이 있는 상습 명품 절도범이었다.
- 사건4. ‘짝퉁’재벌가 며느리
지난 5월 강남 일대 백화점은 20대의 한 재벌 며느리가 명품 귀금속을 훔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곧바로 수사에 나선 강남경찰서는 강남 일대 백화점에서 수백만원 상당의 귀금속을 훔친 20대 여성을 붙잡았다. 그녀는 재벌 며느리였을까. 아니었다. 그녀는 다름 아닌 미모의 모델하우스 도우미 강아무개씨(23)였다.
강씨는 명품으로 치장한 재벌집 며느리로 위장하며 점원들의 환심을 산 뒤 점원들이 물건을 찾는 틈을 타 매장에 진열된 귀금속을 주머니와 가방에 쓸어 담는 수법을 이용했다.
강씨는 경찰 조사에서 “자신을 재벌집 며느리라고 하자 기가 막히게도 점원들이 아양을 떨고 환대를 해 범행을 하기 수월했다”고 진술했다. 강씨는 훔친 귀금속을 되팔아 또 다시 명품을 구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종의 ‘품위유지’를 위해서였다.
이밖에도 60여평짜리 아파트와 수십억원대의 부동산을 갖고 있는 한 건설회사 사장 부인 이아무개씨(여·51)는 “세상 살기가 재미없다”는 이유로 서울 유명 백화점을 돌며 1천여만원 상당의 명품 의류 및 안경, 골프용품 등을 훔치다 경찰에 붙잡혀 구속됐다.
상습적으로 백화점 의류 매장에서 물건을 사는 척하며 무려 1천6백만원 상당의 고급 의류를 훔친 주부 두 명이 구속된 바 있다.
이처럼 유명 백화점을 무대로 하는 ‘명품범죄’가 늘어나면서 백화점측은 자사 이미지 훼손을 크게 걱정하고 있는 눈치다. 범죄 예방을 위해 매장 CCTV를 늘리고, 경호원들도 추가 배치하고는 있지만 갈수록 범행 수법이 교묘해지고 있어 적발이 쉽지만은 않다는 반응이다.
더군다나 롯데, 현대, 신세계 등 유명 백화점이 신년 돈벌이 전략으로 각종 명품 매장의 확장과 거대 명품관 신설을 계획하고 있다. 백화점들이 ‘돈’이 되는 ‘명품’을 승부수로 거는 이상 ‘명품 범죄’에 대한 유혹의 바람은 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