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관련해 지난 1월28일 출국했다가 한 달 가까이 해외에 머물다 돌아온 삼성 이학수 부회장이 지난 2월26일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아 이 뭉치채권의 정체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1백70억원의 추가 채권이 발견됐던 시점에 출국했던 이 부회장이 검찰에서 뭉치채권을 발견한 시점에 귀국, 검찰 조사를 받았다는 점에서 의문을 더해주고 있다. 검찰이 추가로 발견한 뭉치채권이 삼성측에는 ‘아킬레스건’과 같은 것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 송광수 검찰총장 | ||
정치인들에 대한 자금 수수 사실 공표는 삼성 채권의 향배에 자꾸만 몰리는 세간의 관심을 분산시키려는 의도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해 소환 조사를 벌였던 대한항공으로부터 정대철 의원이 추가 자금을 수수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흘러나온 점도 그렇고, 대선자금 수사 초기 압수수색을 벌였던 서해종건으로부터 김원기 의원이 자금을 수수한 의혹이 제기된 점도 ‘시점’이 미묘하다는 점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또 한나라당으로 당적을 이적한 11명의 의원들이 ‘이적료’를 받았다는 검찰의 발표 이후, 박근혜 의원에 대한 추가 ‘이적료’ 논란이 새롭게 불거진 대목도 예사롭지 않다는 지적.
여기에 한나라당으로부터 측근이 5억원을 수수한 의혹을 받고 있는 이인제 의원의 경우 세 차례 소환에 불응하자 검찰이 전격 체포영장을 청구하는 등 강력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
검찰이 채권시장을 조사하는 과정에 2백억원대의 뭉치채권을 발견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 직후 검찰 주변에서는 ‘이제 나올 것이 나오는 모양’이라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일단 한나라당에 추가로 불법 대선자금이 건네졌을 가능성에 대한 얘기가 잠시 회자됐다. 삼성측이 당초 이회창 전 후보 측근 서정우 변호사를 통해 1백12억원의 채권을 전달했다는 점과, 이후 1백70억원에 달하는 추가 채권이 건네졌다는 점에서였다.
삼성측에서 한나라당에 건넨 대선자금 규모가 3백3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지만, 더 많은 규모의 대선자금이 건네진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던 것.
그러나 삼성 이학수 부회장이 전격 귀국한 직후 뭉치채권에 대한 얘기가 흘러나왔다는 점에서 전혀 다른 해석도 제기됐다. 한나라당이 아닌 노 캠프에 유입된 대선자금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이학수 부회장이 출국한 시점은 검찰이 한나라당에 건네진 1백70억원의 채권의 윤곽을 어느 정도 파악한 시점이었다. 즉, 이 부회장은 검찰 수사 결과 한나라당에 건네진 추가 채권이 발견된 시점을 전후해 출국했던 셈이다.
그러나 이 부회장이 귀국하고 검찰에 소환 조사를 받은 직후에 검찰 주변에서는 ‘뭉치채권’에 대한 얘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학수 부회장이 한 달여 만에 전격 귀국한 배경에 뭉치채권이 무관치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검찰 주변에서는 ‘한나라당에 추가로 건넨 채권이 더 발견됐다고 해서 이 부회장이 귀국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무언가 자신이 직접 나서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에 귀국을 서두른 것 아니겠느냐’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검찰에서 뭉치채권에 대한 언급이 흘러나오기 직전에는 유력 정치인들에 대한 자금 수수 의혹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우선 대선 직전 한나라당으로 당적을 옮긴 11명의 의원들이 ‘이적료’를 받았다는 사실이 검찰 조사 결과 밝혀졌고, 이인제 의원 역시 한나라당으로부터 측근을 통해 5억원의 자금을 수수한 의혹이 제기돼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여기에 열린우리당 김원기 의원이 서해종건으로부터 자금을 수수한 의혹이 제기됐는가 하면, 최병렬 대표의 사퇴 발표 이후 한나라당의 차기 유력 대표로 거론되고 있는 박근혜 의원이 대선 직전 합당 과정에 2억원을 받은 사실 등이 흘러나왔다.
대선자금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이 정치인들의 자금 수수 사실을 밝혀내는 것은 마땅하지만 연일 터져나오는 정치인들의 자금 수수 사실이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은 ‘미묘한 시점’ 때문이다.
실제로 서해종건의 경우 지난해 11월 검찰이 대선자금 수사를 확대하면서 가장 먼저 압수수색을 단행했던 기업이다. 그런데 4개월이 지난 시점에 김원기 의원에 대한 자금 수수 의혹이 제기된 배경에 의구심이 더해지고 있다.
또한 박근혜 의원의 경우도 마찬가지. 검찰이 한나라당으로 당적을 옮긴 11명의 의원들이 ‘이적료’를 받았던 사실을 밝혀낼 때만 해도 빠져 있던 ‘박근혜 의원’이 최병렬 대표 사퇴 파동 이후 차기 대표로 부상하던 시점에 언급돼 묘한 뉘앙스를 풍겼다.
이인제 의원의 경우도 2002년 대선에서 유력 대선후보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이 의원의 정치적 비중을 감안해 볼 때 이 의원이 한나라당으로부터 자금을 수수한 사실은 적지 않은 폭발성을 갖고 있다. 그런데 때마침 한나라당에 건네진 삼성의 추가 채권이 밝혀지고, 또다른 뭉치채권의 존재가 언급되던 시점에 검찰이 이 의원에 대해 ‘체포영장 청구’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해 정치적 배경이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낳고 있다.
물론 검찰은 ‘단서가 있으면 수사를 하는 것’이라며 ‘정치적 고려 없이 수사가 이뤄지고 있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문제의 채권이 언제, 어떤 목적으로 구입됐는지, 그리고 그 자금이 어디로 흘러들어갔는지가 검찰이 풀어야 할 최대의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삼성 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 등에 대한 조사를 통해 ‘삼성과의 연관성’을 밝혀내는 것이 당면 과제다. 검찰은 일단 뭉치채권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문효남 대검 수사기획관은 채권의 유통 시점을 들어 “일단 (불법 대선자금과) 무관해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이 한나라당에 제공한 채권은 2002년에 구입된 것인데 반해, 뭉치채권의 경우 2002년 이전에 유통됐다는 것이다. 출처와 행방이 묘연한 2백억원대 뭉치채권의 실체를 추적중인 검찰이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