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서로 간의 채무 관계를 입증할 만한 계약서, 차용증 등이 있고 또한 차입금을 변제했다면 증여세를 물지 않아도 된다는 법적 판결이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국세청 및 각 세무서로부터 부당한 납세 명령을 받은 납세자들을 구제하는 재경부 산하 국세심판원이 지난 3월12일 부친으로부터 돈을 빌린 주택건축업자 박아무개씨(42)가 자신에게 증여세를 부과한 세무서를 상대로 낸 과세처분 취소 심판 청구에서 청구인 승소 판결을 내렸다.
함께 사는 부모에게 자녀가 돈을 빌렸더라도 이자와 원금을 갚겠다는 근거 서류를 작성했다면 증여세를 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은평구 역촌동에 사는 박아무개씨는 지난 2002년 5월초 은평구 응암동 쭛쭛번지 땅을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5층 다세대주택을 건축해 분양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토지 매입 자금이 약 3억8천만원 부족했던 것이다. 박씨는 고민 끝에 여유 돈이 있던 아버지를 설득했다.
결국 박씨는 아버지에게서 2002년 5월16일 2천만원을 빌려 5월30일 전 소유자에게 계약금을 치르고 땅을 매입했다. 이후 6월27일 2억2천만원, 7월27일 9천5백만원 등 총 3억1천5백만원을 아버지로부터 빌렸고, 매형인 여아무개씨에게 5월29일 2천만원, K은행으로부터 5천2백만원을 차입했다.
박씨는 이 돈으로 토지 중도금과 잔금 지불, 그리고 공사비에 사용했다. 박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빌린 돈의 액수, 흐름 등을 현금출납부에 세세히 기록했고, 특히 아버지에게는 연 4.2%이자를 지불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된 금전소비대차계약서를 작성해 주었다.
이후 같은 해 10월5일 주택신축판매업 사업자등록을 끝낸 박씨는 10월6일 입주자로부터 입주대금 7억원을 받았고, 이 중 3억1천8천3백만원을 11월26일과 12월12일 사이에 아버지의 K은행 계좌로 입금했다.
박씨는 이 과정에서 세무서에 증여세 신고는 하지 않았다. 원래 직계존비속에게서 돈을 받은 증여세 납부 의무자는 돈이나 부동산을 증여받는 날부터 3개월 이내에 관할 세무서에 거래 사실을 신고해야 한다.
그러나 당연히 아버지에게 빌린 돈을 변제할 의사가 있었고, 그것을 입증할 근거도 남겨 놓았기 때문에 자신은 해당 사항이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1년여가 지났을까. 지난해 11월 박씨에게 느닷없이 증여세 부과 고지서가 날아왔다. 서대문세무서가 박씨에게 약 6천88만원의 증여세를 부과한 것.
2003년 11월10일 박씨 토지에 대한 근저당권설정이 등기 말소된 사실을 확인한 서대문세무서는 토지 매입 과정에서 박씨가 박씨의 아버지로부터 받은 금액인 3억1천5백만원을 일종의 증여로 판단했다. 직계존비속간의 금전소비대차는 법적으로 인정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세법에는 실제 증여세 과세대상 재산은 민법상 증여로 취득한 재산뿐만 아니라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서 증여의제나 증여 추정으로 규정한 이익이나 재산도 포함한다고 규정돼 있다.
서대문세무서는 세법에 따라 3억1천5백만원에 대해 금액에 대한 과세 표준을 정하고 그 표준에 대해 증여세율 20%와 누진공제액 1천만원, 그리고 각종 가산세 등을 적용하고 과세 금액을 산출한 뒤 박씨에게 고지했다.
박씨는 이에 불복해 지난해 12월11일 국세심판원에 심판 청구했다. 박씨는 청구장에서 ‘비록 아버지이지만 정상적인 이자를 지불하고 계약서까지 썼다’며 차용금액도 다세대주택 분양 후 모두 변제했으니 증여세 부과 처분은 부당하다고 주장하면서 서대문세무서측의 증여세 처분 취소를 요구했다.
처분청인 서대문세무서도 박씨와 박씨의 아버지는 동일 세대원으로 같이 거주하고 있은 상황에서 부자간의 금전소비대차계약은 신빙성이 의심될 뿐만 아니라 그 객관성마저 입증하기 어렵다며 당초 처분이 정당했다고 주장했다.
증여냐 아니냐를 놓고 과세 처분의 적법 여부를 심사하던 국세심판원은 결국 지난 3월4일 박씨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 청구의 주심을 맡았던 강정영 국세심판관 등 세 명은 주택신축판매업으로 사업자등록을 한 박씨가 증빙으로 제출한 현금출납장, 금전소비대차계약서, 금융거래내역을 통해 쟁점금액 3억1천5백만원을 차입하여 변제했다는 점이 확인된 바 청구인이 자금을 일시 변통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박씨의 손을 들어 주었다.
서민층에서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과다한 세금과 은행권 이자 부담 없는 가족 간의 금전거래가 늘어날 것이라며 환영하는 반응이다.
그러나 우려의 소리도 만만치 않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고소득자 집단에서는 이 판결을 악용하는 사례가 늘어날 수도 있다며 “차입금을 개인 목적이 아닌, 사업 목적으로 사용하거나, 증여세 신고 기간 3개월 이내에 차입금을 변제한 경우 등 극히 예외적인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직계 존·비속 고액 거래는 엄격히 현재의 세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