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변호사 사무실이 모여 있는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왼쪽)과 변호사회관으로 기사의 특정내용과 관련없음.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대표적인 사례는 변호사가 검사를 고발한 사건. 변호사와 검사는 특정사건을 두고 공격자(검사)와 방어자(변호사)라는 입장으로 인해 맞설 수밖에 없지만, 서로 필요하기 때문에 어느 선까지는 상대의 입지를 지켜주었다. 전관예우란 말도 그래서 나온 것. 그러나 최근 일부 변호사들의 고발은 그동안 어느 누구도 범접하기 힘들었던 검찰 고유 권한까지 흔드는 취지의 성격이라 법조계 전체가 주목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변호사들의 고소장을 받아든 검찰은 물론, 이들의 대결을 지켜보는 사법부도 당황스러운 모습이다.
검사와 변호사. 창과 방패를 든 두 집단의 대결에서 과연 누가 최후의 승리자가 될지 법조계는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요즘 검사의 권위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변호사 집단은 신세대 변호사들. 이들은 검사가 수사 과정에서 작성한 공문서나 조서, 수사보고서 등 매우 구체적인 부분까지 제동을 거는 경우가 늘고 있다.
그중에서도 변호 경력이 1년도 되지 않는 새내기 변호사가 검사를 고발한 사례가 주목을 끌고 있다.
사법연수원 32기 출신으로 2003년 4월 변호사 활동을 시작한 이아무개 변호사(여·31)가 지난 2월26일 검찰총장 앞으로 고발장을 제출했다. 고발 상대는 다름 아닌 검사와 검사 주사보. 이 변호사는 피의자 조사 서류, 공문서 등을 허위로 작성하는 등 직권을 남용한 책임이 있다며 현재 법무부에 재직중인 K검사를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현재 이 변호사가 제출한 고발장은 서울북부지검으로 이첩돼 있는 상태. 서울북부지검은 K검사가 해당 사건을 맡을 당시 재직했던 곳이다.
놀랍게도 이 변호사가 고발한 K검사는 현재 자신이 맡은 사건의 담당 검사는 아니다. 고발장에 의하면 이 변호사는 지난해 8월 자신의 의뢰인 김아무개씨 사건을 조사하던 중 수사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 수사를 맡았던 K검사를 고발한 것.
이 사건은 I고교의 교사 48명 등이 이 학교 교감인 김씨가 학부모로부터 전입학 사례금을 받았으며 또한 앨범 제작업자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며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98년 10월27일 서울북부지검에 접수돼 99년 6월 1심이 열렸고, 지난해 11월28일 서울고법이 항소심에서 항소기각 판결을 내리며 피의자 김씨에게 징역 1년형을 선고한 상태. 이 사건은 판결이 진행된 5년5개월 동안 무려 21명의 변호사가 변론에 나서는 등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 변호사는 고발장에서 검찰 수사 중 ▲피의자의 알리바이를 벗어나기 위해 원고측 증인들의 진술을 바꾼 점 ▲피의자와 고발인에 대한 대질조사 없이 피의자의 범죄 일시를 직시했다는 점 ▲피의자 진술조서나 피의자 신문조서에는 특정한 날로 범죄일시가 기록돼 있으나 고발장에 첨부된 진술서나 확인서에는 범죄일시를 특정한 날로 직시하지 않았다는 점 등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고발 여부를 두고 무척 고민했지만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허점이 너무 많아 도저히 가만있을 수 없었다. 파장이 크겠지만 변호인 신뢰의 근간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검사들의 현격한 불법행위를 지금 막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고발 취지를 밝혔다.
이에 대해 K검사는 황당하다는 반응. K검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피고인은 내가 불구속 기소를 했으나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을 정도로 교사로서 자격이 불충분한 사람이고 더군다나 최근 고발장을 제출한 변호사는 당시 변호에 참가하지도 않은 변호사”라며 “당시의 상황을 경험하지 못한 변호사가 당시 검찰의 수사 과정을 자신의 방식대로 이해하고 그것을 유포한다는 것은 잘못된 처사”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K검사는 “수사는 아무런 하자가 없었다. 이를 사법부도 인정했다”며 이번 고발에 대해 법적 대응을 준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충북 청원지역 한나라당 후보로 이번 총선에 나서는 오성균 변호사(39)도 최근 검사를 고발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오 변호사는 지난 2월9일 대전지방검찰청 검사장과 자신의 수사를 담당했던 당시 대전지방검찰청 검사 등 5명을 직권 남용 등의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했다가 3월 초 이를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변호사는 지난 2002년 6월 불법 성인 오락실을 운영한 혐의로 검거된 박아무개씨의 변호를 맡을 당시 증인으로 채택된 정아무개씨에게 검찰 조사 내용과 다르게 증언하도록 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으나 최근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해 무죄가 확정된 바 있었다.
또 오 변호사는 양길승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에 대한 몰래카메라 제작을 주도한 혐의 등으로 구속된 김도훈 전 검사를 조사했던 청주지검 수사 검사 5명도 “검사들이 검찰의 비호세력을 폭로한 김 전 검사를 흠집 내기 위한 수사만을 하고 있다”며 이들을 대검에 고발했다가 취소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처럼 변호사가 검사를 고발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추세에 대해 검사들은 일단 “올 것이 왔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변호사는 물론, 사건 수도 증가한 만큼 변호사와 검사간의 충돌이 늘어나는 것도 당연하지 않느냐는 시각이다.
하지만 이번 사례가 검찰 수사 과정에 대해서만큼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던 변호 관행을 깨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변호사들도 검사와의 냉전은 이제 피할 수 없게 됐다는 반응이다. 특히 일선 변호사들은 최근 사법연수원 수료 성적이 상위권임에도 각종 시민단체 등에서 의욕적으로 변호 업무를 시작하는 젊은 변호사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최근 젊은 변호사들은 경험은 부족하지만 검찰의 실수나 허점을 물고 늘어지는 집념은 대단하다. 이들이 검찰 관행에 도전하는 사례는 계속 늘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