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14일 사퇴 기자회견 전문이다.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국회의원 사퇴 기자회견문>
저는 오늘 27년간 몸담았던 정든 국회를 떠납니다.
그 동안 저를 키워주신 국민여러분과 당원동지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동료 의원님들, 울산과 동작의 주민 여러분. 바쁘신 가운데도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1988년 민주화 이후 13대 총선에서 당선되어 국회에 들어왔습니다. ‘정치 노무자’로 생활했던 지난 27년을 돌아보면 우리의 정치는 많은 변화를 겪었고 두 번에 걸쳐 수평적 정권교체도 이루어졌습니다. 국회의 위상도 30년 전에 비하면 많이 높아졌습니다.
우리 국회는 국민들로부터 많은 질책을 받으면서도 끊임없이 국민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계속 노력해 왔습니다. 많이 부족했지만 그래도 항상 국민을 바라보았습니다.
제가 일찍이 국회의원이 되고자 한 것은 정치를 하려는 것이 라기 보다는 공직자로서 국가의 일을 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정치노무자’로서 자랑스러운 우리나라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선거만 생각하는 정치꾼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정치가가 되어 공공에 봉사하는 길을 가고 싶었습니다.
지난 27년 간 시련도 있었지만 국회는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국민들과 대화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국민을 위하는 방법인지 고민하고 토론하였습니다. 정책과 법안으로 시대적 여망을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타협과 절충의 중요성도 배웠습니다.
이러한 교훈을 바탕으로 저는 국회를 국회답게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국회는 자율과 책임이 살아서 움직여야 합니다. 국회의원 한분 한분은 독립적인 헌법기관이고 거수기가 아닙니다. 자신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합니다. 당론이 아닌 의원개인이 국회의 중심이 될 때 우리 국회는 국회다워 질 수 있습니다.
한국 정치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 늘 인물이 없다고 하지만 정말 사람이 없어서 한국정치가 안 바뀌는 것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제가 7선을 하는 동안 매 선거때마다 현역의원의 당선율은 50% 이하였습니다. 말이 선거이지, 실제로는 혁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바뀌었다고해도 정치가 바뀐 것 같지는 않습니다.
결국 사람이 아니라 제도가 변해야 한다는 증거입니다. 새사람을 영입한다는 미명하에 얼마나 많은 독선과 위선이 있었는지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지난번 19대 총선 때는 저도 심각하게 출마 포기를 고려했습니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진전이 있었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우리 정치는 달라져야 합니다. 정치를 어떻게 바꿀수 있겠습니까? 과거처럼 정치인을 위협하고, 활동금지해서는 바꿀 수 없습니다. 결국 정치를 통해 정치를 바꿔야 합니다. 국회의원들께서 인내심을 갖고 정치개혁의 대장정에 나서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정치를 바꾸려면 대통령의 노력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정치를 멀리하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국민은 대통령께서 정치를 바꿔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툭하면 “이념을 뛰어넘겠다”고 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념이 없는 정치는 없습니다. 핵무장을 하고 잘못된 이념을 내세워 말할 수 없는 인권유린을 자행하고 있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이념을 뛰어넘을 수는 없습니다.
올바른 이념은 태어날 때부터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편향되고 교조적인 이데올로기는 나쁜 것입니다. 좋고 유연한 이념을 갖고 있어야 옳고 그른 것을 분간할 수 있습니다. 5천만 공동체가 함께 살아가는데 어떻게 나침반 없이 망망대해를 항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정치가 바뀌기 위해서는 풀뿌리 민주주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당내 민주화가 우선입니다. 우리처럼 대통령 중심제를 운영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현역의원이나 출마예상자는 당협위원장을 맡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구당이 당의 공조직으로 운영되면서 누가 후보가 되든 후보자를 돕는 역할을 합니다. 철저하게 독립적으로, 특정 개인이 아닌 당을 위하여 운영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당협은 어떻습니까? 위로부터의 결정을 아래에 전달할 뿐 민심을 모아 전달하는 역할은 하기 힘듭니다. 지역주민들은 동원의 대상일 뿐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제도입니다.
제가 한나라당 대표직을 그만 둘 때 당시 야당 대표께서는 “정 대표는 여야관계를 ... 부드럽고 조화롭게 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 며 “여야관계 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국회의 기능과 정치를 복원시키려는 노력을 열심히 했다”고 말했습니다. 저에 대한 격려로 지금도 감사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옛날에 임금님이 불조심하라고 지시를 내렸으나 신하들이 계속 밑으로 불조심하라고 말은 전달했지만 실제로는 아무 일도 안해서 큰 불이 났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원인과 대책을 놓고 국가개조, 관피아 추방등의 얘기가 나오는데 근본 문제는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고, 사람들이 이에 무감각하다는 점 입니다. 이는 살인적 무책임, 살인적 보신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 국회와 집권여당의 책임이 큽니다. 우리 새누리당에는 관리형 대표라는 말이 있어왔는데 이는 사회 전반의 무책임과 보신주의 시류가 확산되는데 일조했다고 보여지기에 정말 책임을 느낍니다.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이 특별히 반성해야 합니다.
오늘의 현실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로 무장하여 남북관계가 실로 엄중해서 생각할 수 없는 일도 대비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행정부만으로는 대처하기가 대단히 역부족입니다. 이럴 때에 국회가 당연히 역할을 해야합니다.
이제 저는 새로운 봉사를 하기 위해 정든 국회를 떠납니다. 그러나 국회가 정치의 중심으로서 국가 복원력의 원천이 되어야 한다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지난 27년간 제가 국회에서 얻은 소중한 경험은 모두 서울 시장으로 일할 수 있는 토양이 되었습니다. 지역주민과 국민의 삶을 걱정하듯이 이제 서울시민의 삶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민생정치를 서울시민을 위하여 펼쳐보고자 합니다.
소중했던 시간들이었고 도전과 열정의 27년이었습니다.
저는 지난 27년을 국회의원으로서 나라와 국민에 봉사할 수 있었던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민주주의와 선거는 참으로 좋은 제도입니다. 우리 모두를 겸손하게 하고 평등하게 하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경청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제도입니다. 지혜롭게만 운영되면 민의를 수렴하고 국민을 결집시키는 최고의 제도입니다.
저는 이제 국회를 떠나지만 우리 국회가 한국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진정한 민의의 전당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이완구 박영선 의원님의 원내대표 당선을 축하드리고 이분들께서 어제 “백지상태의 개각”“거국내각”을 말씀했는데 우리 모두 이를 귀담아들었으면 합니다.
더 겸손하게 더 낮은 자세로 서울시민을 만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