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31일 정부청사에서 열린 법무부 업무보고에 참석한 강금실 법무장관과 송광수 검찰총장의 다양한 표정들. | ||
유례가 없을 정도로 지금 법무부는 극도의 보안을 유지하고 있는 양상이다. ‘인사’의 ‘인’자만 나와도 아예 입을 다물고 있다. 관계자 누구를 붙잡고 물어도 모두 “모르겠다”는 말뿐이다. 법무부의 이런 태도는 잔뜩 긴장한 검찰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초미의 관심사는 강금실 법무장관의 책상 서랍 속에 3개월째 묵혀두고 있는 인사안의 내용에 쏠려있다. 법조계 주변에서는 “평소 강 장관의 업무 성격과 지금껏 몇차례 언급한 내용들을 종합해 볼때, 지난해 검란 파동보다 훨씬 더 큰 태풍이 몰아칠 것 같다”는 전망이다. 대검 분위기 역시 “어느정도 각오하고 있다”는 비장함이 서려 있다.
현재 법무부와 검찰 사이에는 인사 시기와 그 수위를 확인하기 위한 물밑정보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특히 지방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
부산지검의 한 검사는 “지금 우리들 사이에서는 인사 시기에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다. 서울에 있는 동기들을 총동원해서 물어봐도 모르겠다는 대답뿐이다. 심지어 인사 주무부서인 법무부 검찰1과 동기조차 ‘모르겠다’고 발뺌하고 있다. 이런 적은 처음이다”라고 푸념했다.
그렇다면 왜 강 장관은 인사 시기에 대해서 철저한 함구령을 내렸을까.
대검 관계자는 “우선은 대통령 탄핵 정국 하에서 인사설이 나오는 것이 바람직한 모양새가 아니라는 점이 표면적 이유가 되겠지만, 실제로는 전격적인 단행으로 허를 찌르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인사권은 장관에, 수사권은 총장에’를 유난히 강조해온 강 장관은 다른 것은 몰라도 유독 인사에서만큼은 ‘철혈장관’의 이미지를 드러냈다. 지난해 8월 정기인사에서도 대검에게 칼을 빼들었다. 대검에 포진한 송광수 검찰총장의 주변 인사들이 ‘경향(京鄕) 순환’이라는 명목하에 대거 지방으로 전보되어 내부 분위기가 싸늘했다는 것이 대검 관계자의 전언이었다.
송 총장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반쪽짜리 인사가 되고 말았지만, 올 2월 정기인사에서도 강 장관은 ‘깜짝쇼’를 연출, 검찰의 허를 찌르기도 했다. 오전의 의례적인 승진 인사에 이어 갑자기 오후에 검찰 4대 보직 중의 하나로 꼽히는 법무부 검찰국장을 전격 교체하는 칼을 빼든 것.
이번 인사 시기를 놓고 대검 주변에서는 설왕설래의 분위기가 한창이다. 한 관계자는 “사실상 5·6월설은 물건너 간 것 아닌가. 아무리 보안을 유지하더라도 지금쯤 최소한의 얘기는 나오기 마련인데, 전혀 움직임이 없다. 곧 8월인데, 그때 같이 하지 않겠는가”라고 오히려 기자에게 정보를 구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법무부 출신의 다른 관계자는 “아마 6월에 할 것으로 본다. 당초 5월 예정이었다가 헌재의 탄핵 선고 때문에 6월로 좀 늦춰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들의 관심은 역시 강 장관 책상서랍 속에 있는 개혁안. 검찰 주변의 추측은 대단히 파격적일 것 같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우선 대검의 권한과 기능이 대폭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평소 강 장관은 대검이 너무 비대하고 고검은 사실상 유명무실화한 현재의 구조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 개혁안의 핵심이 지금의 총장-고검장-검사장-검사 등 4계층에서 총장-검사의 단순 2계층으로의 변화라는 점이 집중 부각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이는 단순한 서열의 슬림화가 아니라 서열을 파괴하는 파격적인 인사를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사시 20회까지로 내려간 검사장급 자리에 사시 21회나 22회 출신 가운데서 개혁 성향의 검사들이 임명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럴 경우 고검장 승진을 하지 못한 선배 기수들의 검사장 상당수가 또다시 좌천성 인사로 사실상 퇴진 압력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제2의 검란이 예고되는 순간이다.
또한 중앙과 지방의 순환 근무 명목으로 현재 대검에 포진한 주요 인사들이 대거 지방으로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 자연히 송 총장 주변 인사들도 교체될 가능성이 높다.
법무부의 개혁 일정도 솔솔 새어나오고 있다. 당초 강 장관은 지난해 검란 파동을 야기했던 충격적인 인사에 이은 2탄을 2월에 전격 단행하고, 간부급 인사들에 의해 개혁작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오는 8월의 하계 인사를 통해 새로이 마련한 조직 개편안 및 개혁 인사안에 따라 개혁을 하부 조직까지 확산시킨다는 계획인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 인사가 이처럼 초미의 관심을 끌게 되자 과천과 서초동 주변에서는 강 장관과 송 총장간의 알력설이 다시 회자되는 분위기. 지난 3월말 촛불시위 주동자에 대한 체포영장 청구 문제로 갈등을 야기한 두 사람의 앙금의 진원지는 사실상 2월 정기인사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정설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한 차례 정기인사에서 불편한 심정을 애써 참았던 송 총장은 주변 지인들로부터 “진정한 검찰의 독립은 인사권을 장관에게 모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임기제의 총장이 책임 하에 전권을 가져야 한다”는 진언을 들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강-송 체제 출범 이후 두번째 인사인 올 2월 인사를 앞두고 또 한번의 갈등은 어느 정도 예상돼온 터였다. 평소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거의 없던 송 총장이 이번 만큼은 공공연하게 “총선이후로 정기 인사를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법무부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홍 지검장이 상대적으로 한직으로 밀리고 두명의 이 지검장이 중용된 것을 두고 검찰 안팎에서는 강 장관이 꺼내들 상반기 정기인사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종백 지검장은 노 대통령의 사시동기로 ‘8인회’ 멤버였고, 이훈규 지검장은 공공연하게 강 장관의 측근인사로 분류되어 왔다.
검찰 주변에선 현재 전체적인 인사윤곽은 어느정도 마련됐다는 것이 중론이다. 지난해 4월과 8월 때와 마찬가지로 강 장관에 의해 주도된 것임은 물론이다. 그 공개 시기만 남았다는 것.
인사권 주도 다툼으로 촉발된 강 장관과 송 총장의 갈등 구도는 기본적으로 두 사람의 출신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본질적인 문제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내가 두 분을 다 모셔봤지만 두 사람은 유사점이 많다. 우선 격하지 않고 말을 아주 아낀다.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이다. 아마 두 사람의 성격이 서로 직선적이었다면, 기자들은 아주 재미있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상대를 배려하는 사려깊은 성격탓에 큰 충돌은 애써 감춰지고 있지만, 진보성향의 변호사와 보수성향의 검사가 일체를 이루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강 장관은 자신이 검찰의 내부 조직을 바꿔놓겠다는 명확한 소신을 갖고 있다고 주변은 말한다. 민변의 한 관계자는 “강 장관은 노 대통령에 의해 법무장관으로 발탁되면서 주변 재야 법조계 선배들로부터 검찰 개혁에 대한 여러 주문과 기대를 받게 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대검의 한 관계자는 “송 총장도 검찰 내에서는 개혁성향의 인사로 통할 만큼 개혁의 필요성은 인정하고 있다”면서 “문제는 그 방법과 속도”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인사의 파장에 따라서는 강 장관과 송 총장이 1년여동안 애써 유지해온 공조관계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인사권과 감찰권의 법무부 이관 문제만큼은 결코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이 강 장관의 확고한 입장이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본격적으로 검찰이 ‘친강파’와 ‘친송파’로 나눠질 가능성도 제기한다.
법무부 검사 출신으로 지난해 7월 사표를 던진 박준선 변호사는 “지금 언론에서 말하는 친강파와 친송파의 갈등은 그냥 법무부와 대검 간의 그것으로 보면 된다. 검사들은 조직의 생리상 자신이 모시는 직속상관의 정서와 입장을 대변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개인의 호불호와는 또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나 역시도 지금껏 법무부에 남아 있었다면 강 장관의 입장에서 대검에 칼을 겨누었을 것이다. 그것이 검찰 조직”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지검의 한 검사는 “강 장관이나 송 총장이 개인 인맥을 만드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검사들 사이에서 친강파니, 친송파니 하는 것은 없다. 다만 검찰 개혁을 놓고 불거지는 양측간의 입장 차이를 보면서 각 사안마다 ‘이번에는 강 장관이 옳다’, ‘이번의 경우엔 송 총장이 잘한 것 같다’는 등의 의견 개진은 존재한다”고 밝혔다.
검찰에서는 이번 총선 과정과 탄핵 정국을 지켜보면서 강 장관에 대해 더 큰 두려움을 가졌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검사 출신의 한 중견 변호사는 “솔직히 나부터도 총선에 강 장관이 출마할 것으로 봤다. 인기가 날로 높아가고 주변에서 부추기면 웬만한 남성들도 결국 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고보면 강 장관은 정말 상상 이상으로 대단한 강단과 소신의 소유자인 것 같다. 그는 우선적으로 검찰 개혁이라는 일차적 목적만이 우선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검찰이 그가 휘두를 칼의 강도에 대해 더 크게 긴장하고 경계하는지도 모르겠다”고 전했다.
지난 3월 말 촛불시위 주동자 영장 청구 파동으로 갈등이 야기된 후 송 총장이 뜻밖에도 “법무부에서 (검찰을) 조사하려면 나부터 하라”고 ‘항명성’ 발언을 던진 이후 곧바로 한 재야 변호사의 반박이 이어진 것에 대해서도 법조계에서는 해석이 분분했다.
민변에 몸담고 있는 한 변호사는 “차 변호사는 강 장관과 함께 민변에서 활동하며 서로 정서적 공감대가 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차 변호사가 공개적으로 송 총장의 발언에 대해서 ‘이는 검찰총장의 장관에 대한 항명이며 이야말로 탄핵감’이라고 강력하게 비난하고 나선 데에는 강 장관을 보호해주기 위한 차원일 수도 있으나, 실제 강 장관이 느끼는 어떤 위기감을 읽고 대신 공격에 나선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전했다.
차 변호사는 지난 2월 이가서출판사가 발행한 <강금실 매혹의 카리스마>에 공동 저자로 참가해 ‘나는 그를 좋아한다. 나는 그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를 알려주고 싶다’며 강 장관에 대한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