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필 전 회장은 수배자 신분임에도 지난 2월부터 자신의 성북동 자택에서 은신했다. 집 내부에 골프연습장 노래방 불당 등을 갖춰놓고 호화생활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KBS 화면 촬영 | ||
수사 결과 발표 후 단연 이목이 집중된 인물은 성원토건그룹 김성필 전 회장이었다. 수천억원대 불법 대출 및 수백억대 회사 공금을 착복한 김 전 회장의 비리가 낱낱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특히 불법적으로 빼돌린 재산의 은닉 수법과 호화 저택의 실상, 그리고 3년 5개월간의 교묘한 도피 생활은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지난 5월7일 밤 10시30분께. 서울 마포지청 건물 3층에 위치한 대검찰청 중수3과 소속 공적자금비리 합동단속반 수사관들이 분주히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합동단속반 수사에서 불법대출 및 회사 자금을 횡령한 혐의가 밝혀진 한 피의자의 집을 압수수색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오전 합동단속반은 법원의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은 상태였다.
수사관들은 마포지청 건물을 쏜살같이 빠져나가 지청 밖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지원 경찰 인력과 합세해 어디론가 향했다. 20여 분 후 20여 명의 압수수색팀이 도착한 곳은 호화 고급 주택들이 즐비한 성북 2동이었다.
이들은 약 1천여 평 규모의 대지에 별관과 본관, 그리고 법당까지 들어선 한 초호화저택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는 10여 명으로 ‘월담조’를 편성한 뒤 따로 3명씩 3개조를 출입문 세 곳에 각각 배치시켰다.
이윽고 밤 11시 무렵, 수사관들은 곧바로 압수수색 작전에 돌입하면서 저택 잠입을 시도했다. 특히 피의자 검거에 나선 월담조는 10여m나 되는 높은 담을 넘기 위해 사다리를 동원했으며 저택 안에 맹견이 있을 것을 대비, 플라스틱 봉까지 소지했다.
저택 본관 건물에 무사히 잠입한 수사관들은 2층 응접실에서 가족과 TV를 시청하던 피의자를 찾아냈다. 한 수사관이 “김○○씨?”라며 한 남성을 지목하자 그는 황급히 일어나 자리를 피했다. 그러나 그의 ‘도주’는 안방에서 끝나고 말았다.
이날 체포된 피의자는 지난 2000년 12월, 한길종금을 인수한 뒤 4천2백억원을 부당 대출 받은 혐의로 검찰로부터 구속 영장이 청구되자 곧바로 종적을 감췄던 성원토건 김성필 전 회장. 무려 3년 5개월간의 기나긴 도피 생활이 마감되는 순간이었다.
▲ 김성필 전 회장은 집 주변에 16대의 감시카메라를 설치했다. | ||
특히 합동단속반의 조사 결과, 김 전 회장은 꼬리를 밟히지 않기 위해 술집 여성들의 이름을 빌려 수십 대의 휴대폰을 개설, 이를 번갈아 사용하며 가족 및 측근들과 연락을 주고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김 전 회장은 타인 명의 휴대폰 개설 자체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피행각을 이어가던 김 전 회장은 지난 2월부터는 자신이 수배자 신분임에도 버젓이 성북동 자택으로 ‘복귀’했다. 그는 지난 1월 자택 주변에 16개의 감시용 카메라를 미리 설치하는 등 따로 완벽한 보안공사를 마친 뒤 집으로 숨어든 것으로 확인됐다. 합동단속반 수사관들이 으슥한 밤에 김 전 회장의 성북동 자택을 덮친 이유 중 하나도 감시용 카메라의 ‘위력’을 의식했기 때문. 이후 김 전 회장은 외부인 출입을 철저히 차단한 채 저택 내부에 실내골프장, 노래방, 홈바 등 오락 시설 및 사우나 시설 등을 갖춰 놓고 호화 생활을 누려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가 수백억대 재산을 은닉하고 관리해온 수법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회사에서 빼돌린 돈은 물론, 그 돈으로 인수한 회사와 부동산도 철저하게 타인 명의로 이전시켜 관리했다. 지난 98년 빼돌린 회사 자금 45억7천만원의 경우 절친한 사찰 스님인 김아무개씨와 공모, 김씨로 하여금 수십 개의 사찰 계좌를 개설하게 한 뒤 이 계좌에서 입·출금을 반복하는 수법으로 돈세탁을 했다.
김 전 회장은 지난 98년 7월 화의 판정을 받은 은하주택(옛 성원기업)에서 빼낸 60억원으로 주식을 매입한 포항터미널과 부산 소재 주차장도 김씨와 H사찰의 또 다른 스님의 이름을 빌려 설립한 J산업 명의로 관리했다. 합동단속반은 포항터미널의 자산 규모를 2백50억원, 부산 소재 주차장을 약 80억원 정도로 평가했다.
김 전 회장의 재산 은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 98년 7월 회사 부도 이후 그는 자신의 여동생과 부인 명의로 소유하던 아파트 네 채와 상가 점포 두 곳, 그리고 서울, 제주, 속초, 부산 등에 있는 연립주택 총 19세대의 명의까지 스님 김씨와 안동 Y사 명의로 이전시켰다. 또 올해 초에는 시가 1백억원 상당의 창원 소재 토지 2만평을 동생, 장모 및 심지어 은하주택 직원들의 명의로 구입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김 전 회장은 지난 96년 2월부터 생활한 성북 2동 저택 및 바로 옆 동생의 집도 98년 2월 D사찰 명의 등으로 이전시켰다. 김 전 회장의 저택과 동생 집의 규모는 약 1천2백 평으로 시가는 2백4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다.
현재까지 합동단속반이 적발해낸 김 전 회장의 은닉 재산은 6백34억원. 그러나 합동단속반은 이 돈이 김 전 회장 및 타인 명의로 된 각종 계좌 입·출금액과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동산의 시가가 제외된 액수라는 점을 감안할 때 실제 은닉 재산은 1천억원대에 육박할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