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오노 요코와 함께 사회운동을 하던 존 레넌의 모습. 레이건 정권과 군수업체들이 저항의 싹인 ‘평화운동가’ 레넌을 제거했다는 음모론도 여전히 떠돌고 있다.
그는 1970년대 초부터 감시 대상이 되는데, 특히 닉슨 시절엔 FBI는 물론 경찰과 이민국까지 합세해 레넌의 비자 기간이 끝나자 그를 추방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한다. 특히 레넌은 닉슨의 공화당에 적대적인 단체에 거액을 기부함으로써 더욱 엄중한 감시를 받게 된다. 당시 레넌에 대한 FBI 문서는 1997년에 일부가 삭제 후 공개되기도. 하지만 당시 FBI가 어디까지 개입했는지에 대해선, 여전히 알 수 없는 상태이고 그 결과 채프먼이 FBI의 사주로 레넌을 살해했다는 가설도 여전히 살아 있다.
한편 레이건 정권의 음모라는 설도 있다. 레넌은 레이건이 대통령에 취임한 지 몇 달 후에 살해되었는데, 당시 레이건은 미국의 군사 예산을 크게 늘리려 했다. 레넌이 이런 상황에 침묵할 리 없는 일. 레이건 정권과 군수업체들은 미리 싹을 자르는 의미로 레넌을 제거했다는 것이다. CIA가 개입했다는 설도 있었는데, 여기엔 근거가 있다. 과거 채프먼은 CIA와 관련 있는 방위산업체에서 일한 적이 있었던 것. 특히 그가 최면을 당한 적이 있다는 증거가 나왔는데, 이것은 다름 아닌 CIA의 ‘MK 울트라’, 즉 킬러 양성 프로젝트라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보다 유명하다”는 레넌의 발언이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을 자극해 채프먼을 이용해 죽였다는 설도 있었는데, 조금 황당한 건 사탄의 세력을 통해 레넌의 죽음을 설명하려는 시도. 레넌이 살았던 다코타 빌딩은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악마의 씨>(1968)를 촬영했던 곳이며, 폴란스키의 아내를 무참하게 살해한 연쇄살인마 찰스 맨슨 패거리는 비틀스의 광적인 팬이었는데, 이런 우연적 상황 속에서 채프먼은 사탄 숭배자들에게 조종되어 레넌을 죽였다는 것이다. 다소 황당한 주장이다.
하지만 정말로 황당한 주장은 존 레넌이 죽기 10년 전에 이미 있었으니, 폴 매카트니 사망설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 매카트니가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는 악성 루머는 1967년부터 있었다. 여기엔 근거가 있다. 1960년대 중반, 로버트 휴 프레이저라는 재산가가 런던에 갤러리를 만들었고 그곳을 중심으로 비틀스와 롤링 스톤스의 멤버들과 어울렸다. 당시 프레이저는 모로코 출신의 젊은 유학생인 모하메드 츠타이비를 만나 어시스턴트로 두었는데, 매카트니와 꽤나 닮은 그는 프레이저와 함께 종종 비틀스와 파티를 즐기곤 했다.
1967년 1월, 그들은 런던의 매카트니 집에서 모여 파티를 했고, 이후 교외의 별장으로 옮기려 했다. 사람들은 롤링 스톤스의 보컬인 믹 재거의 차에 탔다. 이때 츠타이비의 임무는 파티에서 즐길 마약을 운반하는 것. 매카트니는 츠타이비에게 자신의 미니 쿠퍼를 타라고 했다. 개조를 해 운전이 만만치 않았던 매카트니의 차를 운전하던 츠타이비는 사고를 냈고, 이후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에 실려가 치료를 받은 후 퇴원했다. 이 사건은 이후 와전되어 매카트니의 자동차 사고 사망 뉴스로 바뀌었지만, 잠깐 돌다가 사라지는 루머 수준이었다.
그런데 1969년에 갑자기 다시 매카트니 사망설이 돌기 시작했다. 시작은 어느 라디오 방송이었다. 1969년 10월 12일, 디트로이트의 WKNR-FM 방송 DJ인 러스 깁은 밤 늦게 청취자로부터 기괴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비틀스가 1968년 11월에 낸 <더 화이트 앨범>을 거꾸로, 즉 백워드 매스킹 방식으로 들으면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는 것이다. 깁은 앨범을 거꾸로 들어보았고, ‘I’m So Tired’라는 곡에서 존 레넌이 웅얼거리는 마지막 부분은 명확하게 다음과 같은 소리로 들렸다. “Paul is a dead man, miss him, miss him, miss him.”(폴은 죽었어. 그를 그리워해, 그리워해, 그리워해.) 이후 깁은 이 문제를 더욱 파기 시작했고,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