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M카페에는 짝을 찾는 글들과 각종 가학·피학 이미지들이 올라 있다. | ||
이른바 사디즘, 마조히즘으로 불리는 가학적·피학적 변태 성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인터넷 카페가 늘어나고 있다. 그간 소수의 사람들이 음성적으로 즐기던 변태적 성행위가 인터넷을 타고 급속하게 번지고 있는 것. 때문에 호기심으로 이런 카페에 들어왔다가 변태적 성행위에 눈을 뜨게 되는 사람들도 차츰 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성적 취향이 사회 통념상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점. 변태 성행위를 한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해 돈을 뜯어내는 범죄가 최근 늘어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더욱 심각한 점은 이들 가학적·피학적 성격의 카페들이 미성년자들에게도 적잖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청소년들 사이에 가학적·피학적 변태 행위가 인터넷의 ‘아○○’과 같은 새로운 엽기 코드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이들 카페에서 은밀히 오고가는 비밀스런 용어들과 행태들이 청소년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지난 3월14일 부천의 백아무개씨(27)는 인터넷 카페에서 알게 된 신아무개씨(35)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맞고 싶으니 때려줄 사람을 구한다”는 내용이었다. 두세 번의 메일을 주고 받은 뒤 두 사람은 직접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로부터 이틀 후 백씨와 신씨는 서울 영등포역에서 만나 인근의 한 여관으로 들어갔다. 벌거벗은 두 남자는 이내 변태적인 성행위를 시작했다. 여관으로 가는 도중 공사장에서 구한 회초리가 ‘작업 도구’였다. 신씨는 백씨가 처음 이메일에서 요구한 대로 백씨의 종아리와 허벅지를 회초리로 1백여 대 때렸다. ‘맞는 역’을 맡았던 백씨는 변태적 성행위의 대가로 20만원을 챙기기도 했다.
조용히 끝날 수도 있었던 두 사람의 관계는 한 달 후 악연으로 이어진다. 백씨가 변태적인 성행위를 한 것을 주변에 알리겠다고 신씨를 협박한 것. 백씨는 “가족에게 알리겠다. 상해진단서를 발급받아 형사고소도 하겠다. 합의금을 달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발송하고 전화를 통해 6백만원을 요구했다.
그러나 당시 신씨는 자신이 운영하던 사업체를 정리한 뒤 무직 상태라 수중에 지닌 돈이 거의 없었다. 신씨는 경찰에 고소를 당하는 것보다도 자신의 변태 성행위 사실이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질까봐 상당히 괴로워했다. 심지어 자살을 떠올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백씨는 신씨 외에도 3명의 또 다른 피해자들을 협박하다 결국 경찰에 꼬리가 잡혔다. 지난 6월5일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백씨를 상습공갈 혐의 등으로 구속했다. 경찰 조사 결과 백씨는 돈을 뜯어내기 위해 신씨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곱상한 외모의 백씨는 뒷모습을 보면 흡사 여자로 착각할 정도로 여성스럽게 자신을 꾸미고 있었다.
이들이 이용한 카페는 이른바 SM 동호회 카페였다. SM이란 사디즘(Sadism)과 마조히즘(Masochism), 즉 가학적·피학적 변태 성행위를 뜻하는 말이다. 현재 국내 최대 규모의 모 포털 사이트에서 ‘SM’, ‘회초리’, ‘체벌’ 등의 검색어를 치면 1백 개 이상의 사이트가 뜬다. 이 가운데 상당수가 바로 SM 관련 사이트다.
이들 사이트 회원들은 자신의 성향을 멜돔, 펨돔, 멜섭, 펨섭, 스위치 등으로 분류한다. ‘돔’과 ‘섭’은 지배와 복종을 뜻하는 ‘Domination’과 ‘Subordinate’의 줄임말이다. 여기에 남성과 여성을 뜻하는 ‘Male’과 ‘Female’의 앞글자인 ‘멜’과 ‘펨’을 붙여 성별을 구분한다. 예를 들어 가학적 성향을 지난 남성이라면 ‘멜돔’, 피학적 성향을 지닌 여성이라면 ‘펨섭’이 되는 것이다. ‘스위치’는 돔과 섭 두 가지 성향을 모두 지니고 있는 사람을 뜻한다.
SM카페에서는 주로 가학성향을 지닌 남성과 피학성향을 지닌 여성의 만남이 일반적이지만 그 반대의 경우나 동성간에도 만남이 이루어진다. 이들은 직접적인 성관계보다는 가학과 피학적 행위를 통해 쾌감을 느끼는 것이 특징.
SM카페 게시판에는 이들이 파트너를 구하기 위해 올리는 글들로 도배돼 있다. “펨섭을 찾습니다(멜돔)”, “펨돔을 찾습니다(펨섭)”와 같은 식이다.
SM카페 회원들의 경험담에 따르면 ‘가학’은 주로 종아리, 허벅지, 엉덩이 순으로 많이 이루어진다. 특히 종아리의 경우 ‘전문’ 카페가 수두룩할 정도다. 이들 카페의 자료실에는 가학적 행위들을 담은 동영상과 사진들이 올라와 있는데, 이 중에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회초리를 맞는 장면들이 적지 않다. 자신들만의 가학적 행위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가학·피학적 장면들이 이들의 취향을 채워주는 소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물리적인 가학 행위뿐만 아니라 주인과 노예라는 확실한 주종관계를 ‘역할놀이’를 통해 즐기기도 한다. 주인이 노예에게 수치심을 유발시키는 행위를 요구하고 노예는 그것에 복종함으로써 느끼게 되는 수치심과 정복욕을 서로 즐기는 것이다.
보다 심각한 것은 인터넷 SM카페들을 통해 청소년 세계에도 가학·피학적 행태가 퍼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카페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받는 체벌을 하나의 ‘SM 코드’로 변형시켜 받아들이는 사례가 많이 눈에 띈다. 평소 흠모하던 선생님으로부터 체벌을 받았을 때는 마치 사랑고백을 받은 듯 흥분해서 글을 올리기도 한다. 청소년들에게 ‘SM 코드’가 더 쉽게 파고들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런 부분 때문이다.
이들 SM카페들 중 대부분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5월 사이에 개설된 것들이다. 카페 일부 회원들이 사건에 연루될 경우 경찰의 수사 직후 자진 폐쇄하거나 사이트 운영자가 강제 폐쇄하기도 하지만 카페 수는 나날이 증가하는 추세다. 이들 카페들이 늘어나면서 보통사람들도 SM에 대한 관심을 표시하기도 한다. 이들 카페에는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으며 SM이 아닌지 고민하는 내용의 글들도 상당히 많이 올라와 있다.
SM카페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적지 않지만 이런 사회적 정서는 법적인 문제와는 별개다. 현재 이들 사이트를 규제할 만한 법적 근거는 미약하다. 앞서의 백씨 사건을 수사했던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관계자는 “상대방의 동의하에 이루어진 상해죄의 경우 처벌할 근거가 없다. 종교집단의 ‘안수기도(치료를 목적으로 신체에 위해를 입힘)’와 같이 반사회성이 확실할 경우에만 처벌이 가능하다. 또 SM 관련 인터넷 사이트 자체를 처벌하는 것은 관련 법규도, 판례도 없어 곤란하다”고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