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9일 인천 월미도 인근 현장검증 장소에 나타난 유영철. 사진공동취재단 | ||
그가 살고 있는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오피스텔의 이웃 주민은 “악한 인상이라기보다는 뭔가 좀 모자라는 듯한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그의 모친인 김아무개씨는 “모자란 아이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서서히 드러나는 가면 속의 모습에서 그는 가장 잔인한 미소를 짓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 그는 경찰에 검거된 15일 다리를 다친 것처럼 절룩거리며 어수룩한 모습으로 경찰을 안심시켰다가 방심한 틈을 타 탈주에 성공하기도 했다.
유씨가 말한 자신의 신상에 대한 내용 역시 대개가 거짓임이 속속 드러나고 있어 유씨의 자백 자체 또한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의혹을 사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유씨는 14세 때 아버지가 정신분열성 간질로 사망하고 유씨의 작은형 또한 같은 병으로 사망했기 때문에 자신도 똑같은 병으로 사망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의료전문가에 따르면 간질은 그 자체로 사망할 정도로 치명적인 질병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아버지는 행방불명된 것으로 유씨의 작은형은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씨는 자신이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측정한 아이큐가 140이 넘었다고 밝혀 상당히 지능이 좋은 인물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역시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생활기록부에는 아이큐가 90∼100으로 기록되어 있다.
유씨의 생활기록부에 따르면 유씨는 마포구 소재 A초등학교를 다닌 6년간 단 두 번밖에 결석을 하지 않았고 역시 마포구 소재 B중학교 때는 하루도 빠지지 않는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성적은 중간 정도였지만 미술과목은 항상 ‘수’를 받아 미술적 소질을 일찌감치 보여주었다.
유씨는 중학교 졸업 후 정규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유사교육기관인 K기술고등학교에 진학해 고교 졸업 후 취업을 목표로 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려운 가정형편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유씨의 초등학교 6학년 기록에는 아버지가 행방불명으로 나와 홀어머니가 어렵게 자식들을 키웠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유씨는 학교생활을 끝내 마치지 못하고 고교 2학년 때인 1987년 절도혐의로 소년원에 수감되어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유씨는 1991년 다시 징역 10월형을 받고 교소도 생활을 한 이래 14회에 걸쳐 7년 간을 교도소에 수감되어야 했다. 그간 유씨가 벌인 범죄는 절도 8건, 강간 2건, 폭력 1건, 사기 1건, 음란물유포 1건 등이 있다.
유씨는 처음 경찰에 자신이 서울 서남부권 지역의 부녀자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라고 주장했다가 다시 또 노인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이라고 하는 등 말을 번복하기도 했다. 경찰이 자신을 연쇄살인을 저지른 흉악범으로 보지 못하게 하려는 계산된 의도인 것으로 보인다.
한 범죄 전문가가 유씨를 가리켜 ‘공부하는 범죄자’의 한 전형이라고 말할 만큼 그의 주도면밀함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는 실제 한자검정시험 2급 자격증과 워드프로세서 2급 자격증이 오피스텔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특정 직업이 없는 그가 월세 35만원에 이따금 파출부를 고용하면서까지 청소를 시키는 등 만만치 않은 생활비는 어떻게 조달했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그는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위조된 경찰 신분증으로 노점상 등에게서 금품을 뜯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막상 부유층 노인 살인 당시에는 금품에 전혀 손을 대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만약 노인 연쇄 살인범으로 유씨가 진범이 맞다면 그는 대단히 냉철한 범죄자인 셈이다.
지난 1월에도 유씨는 사우나에서 잠든 손님의 열쇠를 훔쳐 사물함의 지갑을 뒤지다 서대문 경찰서에 검거되어 조사를 받았으나 당당한 자세로 자신의 혐의를 끝내 부인해 결국 무혐의 처리되기도 했다.
경찰에 붙잡힐 때마다 유씨는 자신을 어리숙하게 보이도록 위장하며 경찰의 눈을 속였으나 실제로는 완전범죄를 기할 정도로 치밀하게 속내를 숨기는 교활함을 보이기도 했다.
사회부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