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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부터 열린 이날 공판에서는 1심에선 물론, 일반 법정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 연출됐다. 이름만 들어도 누구인지 알 법한 내로라하는 7명의 ‘명’변호사들이 서 피고인의 변론을 위해 변호인석에 포진한 것. 더구나 일반 방청석에 자리한 20명 안팎의 배석자 대부분도 피고인과 가깝게 지내온 현직 변호사들이었다.
특히 서 피고인의 변론에 나선 7명의 변호사들은 공판 말미에 재판장의 양해를 구한 뒤 선처를 바라는 장문의 글을 릴레이식으로 낭독해 눈길을 끌었다. 피고인이 주동적으로 정치자금을 받지 않았으며, 자금을 개인적으로 유용한 사실도 없다는 게 주 내용. 그러나 중간 중간 이들이 검찰 수사와 1심 재판부 판결에 강한 ‘물음표’를 던지고, 변론 시간도 어느덧 1시간을 훌쩍 넘기자 담당 검사와 재판부는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출석한 증인은 대우건설 남상국 사장으로부터 15억원을 받아 서 변호사에게 전해준 것으로 알려진 기업인 J씨의 운전기사 K씨. 변호인, 재판부의 K씨에 대한 증인 신문이 끝나자 검찰측 박진만 서울중앙지검 부부장검사(대검찰청 공적자금비리합동단속반 파견)가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박 검사는 증인 신문에 대해 간략한 의견을 개진한 뒤 “피고인은 삼성으로부터 받은 3백억원 상당의 채권 중 1백38억원 상당의 채권을 1년여 동안 보관하고 있다가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삼성에 급히 반환하는 등 여러 정황으로 볼 때 개인적으로 돈을 축재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았겠느냐”며 서 변호사에 대해 징역 7년과 수표 몰수 3억원, 추징금 5백72억원을 구형했다.
재판부가 검찰의 구형 내용을 받아 적는 순간, 변호인석에 앉아 있던 이정락 변호사는 김용균 재판장에게 “7명 변호사들이 각각 2~3분간 소명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다. 김 재판장이 이를 받아들이자 7명의 변호사들은 각자 준비한 변론 요지서를 들고 소명에 나섰다.
먼저 정귀호 변호사가 종결변론에 나섰다. 정 변호사는 66년 서울민사법원 판사로 임용된 뒤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장, 춘천지방법원장 등을 거쳐 지난 93년부터 99년까지 대법원 대법관으로 재직하면서 사법부 내에서 ‘신사법관’이라는 불리던 베테랑 법조인.
정 변호사는 3~4분간 서 변호사가 법조인으로서 쌓아온 이력을 열거하면서 잠시 숨을 고르더니 판사들을 바라보며 “최고의 심판을 기대한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로 돌아갔다.
곧바로 강현중 변호사가 바통을 이어갔다. 강 변호사는 서 변호사와 사시 6회 동기로 75년 수원지원 판사로, 1980년부터 81년까지 서울고등법원 판사와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함께 재직하며 끈끈한 친분을 유지해온 사이.
현 국민대 법학과 교수이자 대한변협법률구조재단 이사인 강 변호사는 특히 일본의 법을 사례로 들며 1심 판결의 부당함을 호소했다. 강 변호사는“일본은 정치자금 사건의 경우, 정치인들만을 범죄주체로 본다”며 “피고인은 당원도 아니기 때문에 범죄구성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세 번째로 강훈 변호사가 나섰다. 강 변호사는 사시 24회 출신으로 제주·마산·수원지방법원, 서울지방법원에서 근무한 판사 출신 변호사. 지난 98년 서울고등법원 특별8부 판사 시절 갑상선암을 앓고 있는 어머니 병간호를 위해 사표를 내 화제가 된 바 있다.
강 변호사는 검찰과 재판부를 함께 겨냥한 듯 “최종적으로는 이회창 후보나 노무현 대통령이 책임 추궁을 당해야 할 사안”이라며 “더구나 야당측에만 큰 죄를 물게 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등장한 안동일, 이진강, 정인봉(사시 17회), 이정락(고등고시 13회 합격 · 인천지방법원장, 서울민사지법원장 역임) 변호사는 서 변호사와의 개인적 인연을 소개하고 각종 고전 등에 언급되는 법조인의 덕목을 들며 서 변호사에 대한 검찰 수사나 공소 제기, 1심 재판부의 판결은 법조인의 권한을 적정하게 행사하지 못한 결과라는 주장을 폈다.
서 변호사와는 경기고-서울대 법학과 3년 선배로 올해 <나는 김현희의 실체를 보았다>는 저서를 펴낸 바 있는 안 변호사는 45년 전에 읽었다는 미국 법학자 로스코 파운드 법 철학책 서문을 인용, “책에서 예수를 처형한 빌라도가 정의는 하나이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말한 것처럼 현재 검찰이 생각하는 정의와 변호인이 생각하는 정의는 그 답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닌지 묻고 싶다”며 말을 이어갔다. 안 변호사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이회창 한나라당 전 총재가 1987년 서울대 법대에서 강의했다는 ‘사법의 적극주의’ 내용 중 ‘법이 만들어내는 정의는 하나여야 한다’는 구절을 인용하기도 했다.
특히 안 변호사는 원심에서 중형이 선고됐음에도 도리어 검찰이 항소를 제기한 부분에 대해 조용한 어조로 “이는 ‘자기부죄금지’(모든 국민은 자기의 형사상 책임을 추궁당할 위험이 있는 사항에 대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장한 법)의 원칙을 정면으로 무시하는 처사”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사시 5회 출신으로 법무부 조정실장과 대검찰청 형사 1과장, 성남지청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으로 활동중인 이진강 변호사도 “검찰과 법원이 과연 소임을 다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는 말로 변론을 시작했다. 67년 4월 부산지검 검사시보 시절, 서 변호사와 같은 하숙방에서 생활하면서 우정을 쌓았다는 이 변호사는 “미국 남북전쟁 당시 링컨 대통령이 ‘데이비스 남부 연합 대통령은 잡히는 대로 풋사과 나무에 목매달아야 한다’는 북부 사람들을 설득, 그를 재판 없이 석방되도록 했다”는 일화를 소개하며 재판부 판사들의 마음을 움직이려 했다.
변호인 7인의 변론을 듣고 서 변호사는 감동을 받았는지 피고인 변론 도중 눈물을 흘리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반면 검찰측 박 검사나 지난달 송두율 교수를 석방시킨 김용균 재판장 및 김하늘, 오준근 두 30대 배석 판사들의 분위기는 사뭇 다른 듯했다. 1시간이 넘는 법조 ‘대선배’들의 ‘융단 변론’에 질린 탓인지 상기된 얼굴을 감추지 못한 채 법정을 빠져 나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