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최근 KDB생명과 아주캐피탈 인수를 추진하며 종합금융사로서 도약을 꿈꾸는 DGB금융지주까지 LOI를 제출했다. DGB금융지주는 다만 현대증권보다는 현대자산운용 인수에 관심이 큰 상태다. DGB금융지주는 지난 2일 현대증권 인수 추진에 대한 조회공시 요구에 “현대증권 인수 추진은 사실무근”이라며 “현대자산운용의 분리매각 시에만 입찰 참여를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면서 그동안 일괄 매각을 고집했던 산업은행도 분리매각을 병행할지 고민이 큰 것으로 전해진다. 산업은행 측은 “아직 현대자산운용 분리 매각에 대해 내부적인 검토 단계를 거친 상태가 아니다”며 “따라서 분리매각은 좀 더 협의를 거친 후 판단 할 문제”라고 밝혔다.
# IB업계 “유력 후보 현대차, 현대중공업 막판 참여 예상”
당초 유력 후보로 꼽혔던 범현대가, 즉 현대차그룹과 현대중공업은 1차 LOI접수에서 일단 빠진 모양새지만, IB업계에서는 이들의 막판 참여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실제 현대차그룹의 경우 그동안 인수에 성공한 현대건설이나 녹십자생명 같은 대규모 ‘딜’에서 막판에 참여한 전력이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은 지난 2011년 현대라이프로 이름이 바뀐 녹십자생명 인수 과정시 거래소의 조회공시 답변을 교묘히 이용했다”며 “당시 거래소의 조회공시 답변에 현대차는 검토한 적 없다고 부인했지만, 결국 2개월 만에 계열사인 기아차와 현대모비스, 현대커머셜 등이 녹십자생명(93.6%)지분을 인수했다”고 말했다.
현대건설 역시 막판에 뛰어들어 결국 인수에 성공했다. 때문에 시장에서는 지난 4월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HMC투자증권이 현대증권 인수전 참여를 공식 부인한 것을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다.
또 다른 유력 후보인 현대중공업도 4일 치러진 지방선거를 의식해 일단 한 발 물러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IB업계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은 지난 2008년 당시 CJ투자증권과 CJ자산운용을 인수했지만 업황 침체와 맞물려 큰 시너지를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이에 그동안 JP모건을 인수 주간사로 선정하고 그동안 현대증권 인수 타당성을 검토해왔으나 4일 치러진 지방선거를 의식해 1차 마감 당시 LOI를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산업은행 역시 현대증권 인수에 관심 있는 곳이라면 LOI를 마감한 후에도 실사를 진행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현대증권 인력 구조조정 지시 의혹 등 산은과 밀월 논란
이처럼 매각 작업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와중에 한편에선 현대그룹의 주채권단인 산업은행이 현대증권에 인력 구조조정을 지시했다는 의혹이 확산돼 논란이 일고 있다. 인력 구조조정은 노동법상 노사 당사자 간 문제인 데다, 향후 인수 후보가 계약서에 명시하는 중요 사항이기 때문에 주채권단도 관여할 수 없는 고유 영역인 까닭에서다.
지난 5월 29일 전국정보경제서비스노동조합연맹은 성명서를 내고 산업은행이 현대증권에 구조조정을 지시했다는 의혹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윤경은 현대증권 대표가 직원들과 간담회 자리에서 산업은행 부행장으로부터 구조조정에 대한 허락을 받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산업은행 측은 “매각을 위임받아 추진하면서 절대 구조조정을 지시한 바 없다”며 “인력 구조조정은 권한 밖의 이야기”라며 강하게 부인했다. 이에 앞서 서울남부지방법원 형사3단독 재판부는 산업은행의 압력으로 매각을 결정하게 됐다는 윤경은 대표의 발언에 대해서도 홍기택 KDB산은금융지주 회장에게 사실조회를 요청한 바 있다.
IB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최근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 등 정책금융기관들이 회사채신속인수제에 이어 1600억 원 규모의 ABCP(자산유동화기업어음)까지 담보를 지며 발행하는 등 유독 현대그룹한테 우호적인 시각이라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며 “때문에 최근 매각이 진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부실 계열사 유상증자 참여와 사채 인수 방식 등으로 계열사 지원에 나선 현대증권의 행보에 결국 산업은행이 깊이 관여한 것 같다는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현대그룹은 지난해 말 재무구조 개선안을 발표하면서 현대증권을 매각하겠다고 했는데도 현대증권을 이용해 계속 그룹 계열사를 지원해 논란을 빚고 있다. 현대엘앤알은 지난 5월 19일 이사회를 열어 610억 원어치의 무보증 사모사채를 발행하기로 했고, 현대증권이 이를 전액 인수했다. 610억 원은 현대증권이 그룹 계열사를 지원하겠다고 나선 액수 중에서 가장 큰 규모다. 현대엘앤알은 2012년 반얀트리호텔을 인수하기 위해 설립된 회사로 현대상선(49.0%), 현대엘리베이터(23.1%), 현대로지스틱스(23.0%), 현대증권(4.9%) 등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에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현대그룹이 재무구조를 개선하겠다고 했으나 최근에는 현대증권이 나서서 현대그룹 부실 계열사를 지원해 오히려 출자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자구안의 실천 의지도 의심이 된다”고 지적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3일 금융위원회에 현대증권의 현대엘앤알 사모사채 610억 원 인수 결정이 자본시장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대주주에 대한 신용공여금지 규정 위반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조사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승훈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