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LG그룹 사옥. LG의 담합 관련 줄소송으로 다른 수출업체들의 후속 움직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박은숙 기자
지난 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LG전자, LG화학, LG디스플레이, LG생명과학, LG그룹 4개 계열사는 지난해 말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국내 항공사와 싱가포르항공, 에어프랑스, 캐세이패시픽, 일본항공, 타이항공 등 외국 항공사 12곳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4억 400만 원을 지급하라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가액은 실제 피해 산정액에 따라 수십 배로 늘어날 수 있다. LG 측은 “제품을 수출할 때 해당 항공사들의 화물항공기를 이용하는데, 항공사들의 운임 담합으로 제품의 운송료가 높아져 수출 경쟁력이 떨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2010년 11월 “항공사들이 유류할증료를 신규 도입 또는 변경하면서 운임을 담합했다”며 120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것이 시발점이 됐다. 당시 공정위는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루프트한자, 에어프랑스 등 16개국 21개 항공화물운송사업자들이 지난 1999년 12월부터 2007년 7월까지 7년 7개월 동안 유류할증료를 변경하는 방법으로 항공화물운임을 담합했다고 결정했다.
항공사별 과징금 규모는 대한항공 221억 9900만 원, 아시아나항공 206억 6000만 원, 루프트한자 121억 원, KLM항공 78억 원, 에어프랑스-KLM 54억 원, 캐세이패시픽항공 40억 원, 일본항공 38억 원 등이다. 스칸디나비아항공과 인도항공은 과징금 없이 경고 조치를 받았다. 항공사들은 공정위의 과징금 처분에 불복해 항소해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LG그룹은 현재 법무법인 태평양을 소송대리인으로 두고, 법정 공방에 나서고 있다. 이에 대한항공 측은 “원고 측이 자신들이 주장하는 피해액을 산출하고 그에 걸맞은 증거를 제출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입장을,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4월 14일 변론 이후 앞으로 원고들의 청구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뒤 신중하게 대응해나갈 것”는 방침을 밝혔다.
그간 유류할증료를 둘러싼 논란은 지속적으로 있어왔다. 유류할증료는 주로 이동 거리와 무관하게 책정되기 때문에 전 세계를 상대로 휴대전화, TV 등을 항공화물을 이용해 신속히 공급해야 하는 기업들에게는 불합리한 정책이란 불만이 제기된 것이다. 인천공항에서 하와이, 뉴욕, 상파울루까지의 화물운송 거리는 각각 7339㎞, 1만 1071㎞, 1만 8728㎞지만 지난 3월 기준으로 유류할증료는 모두 똑같이 왕복 288달러다. 정부는 항공사별 할증료 기준표에서 세 곳 모두 ‘미주’로 분류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기업 간 담합사건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된 것이 지극히 이례적인 일로 여겨진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기업들 간에는 일종의 동업자 의식이 있어서 서로가 시장가격을 놓고 어느 정도의 담합에 대해서는 모른 체하는 것이 관행이었다”며 “경쟁당국이 아닌 기업 간에, 그것도 특허분쟁이 아닌 담합 건으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일반적인 사례는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LG전자 관계자는 “이제 그릇된 관행을 고쳐간다는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면서 “어떤 기업이든 공정경쟁의 룰을 어기면 제재를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LG전자는 항공사들의 담합뿐만 아니라 다른 경쟁부문에서도 이와 똑같은 소송을 제기해놓고 있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 서초 사옥.
실제로 LG전자는 지난해 대만의 4개 디스플레이 업체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AUO, 치메이 이노룩스디스플레이, 한스타 디스플레이, 대만 액정표시장치(LCD), 컴퓨터용 컬러모니터 브라운관(CDT) 제조사들이 그 상대다. 소송가액은 9억 900만 원이다. 이들 업체는 지난 2011년 LCD 패널 등의 담합 혐의로 공정위로부터 과징금을 부과받은 곳이다.
LG전자 측은 “패널 업체들의 가격 담합에 따라 모니터 TV 등의 수출 경쟁력에 타격을 입어 소송을 제기했던 것”이라며 “재판과정에서 손해액 산정이 이뤄지면 청구금액이 수백억 원대로 늘어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당국이 아닌 민간기업들도 불공정거래관행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풍토를 만들겠다는 것이 기본적인 입장이라는 뜻이다.
이 같은 LG의 행보는 대기업들의 거래에 부정적이었던 경제관련 시민단체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경제개혁시민연대는 LG그룹의 잇따른 소송제기에 대해 “담합사건이 중대한 위법행위임에도 담합으로 얻는 이득이 공정위 과징금을 상쇄하고도 남기 때문에 근절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면서 “최근 담합 피해 기업들이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부쩍 늘어나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담합소송은 위법성을 입증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워 피해자 측이 소송전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정위가 먼저 담합 혐의 조사를 벌이고 그에 대한 판단을 내려주기 때문이다. 피해 기업들은 이를 근거로 소송을 제기하면 그만이다. 손해액 산정도 어렵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설령 담합을 먼저 자백한 업체에 과징금을 감면해주는 ‘리니언시 제도’가 있다고 해도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는 ‘열외’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항공화물운임 담합 사건에서도 대한항공이 리니언시 제도의 혜택을 봤지만, LG그룹 4개사는 대한항공도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대상에 넣었다.
항공사 담합으로 LG전자와 같은 손해를 입었을 기업들의 대응도 관심이다. 만약 재판부가 LG 측의 손을 들어주면 다른 수출업체들도 잇따라 항공사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특히 항공화물이 더 많을 것으로 보이는 삼성전자의 움직임이 관건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현안을 파악해보고 적절한 대응조처를 취하겠다”는 답변만 내놓고 있는데, LG그룹의 재판결과에 따라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다만, 이건희 회장의 입원 이후 원활한 경영권승계 작업을 위해 각종 대외 이슈에 대해 신중한 행보 속에 ‘적을 만들지 말라’는 분위기여서 당장 구체적인 조치에 나설 공산은 크지 않아 보인다. 여기에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국내 항공업계 맞수의 ‘공동대응’ 여부도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박웅채 언론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