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중앙지법(위) 서울중앙지검(아래) | ||
이번 갈등은 검찰이 배임 혐의를 받고 있는 판사 출신 변호사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을 법원이 두 차례나 기각하면서 비롯됐다.
불과 석 달 전인 지난 6월 초에도 알선료를 지급한 혐의를 받고 있는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에 대해 청구된 사전구속영장이 영장실질심사 현장에서 기각돼, 법원-검찰은 이미 심각한 갈등을 빚은 바 있다. 이번이 법원-검찰 간 갈등의 제2라운드인 셈이다.
이를 바라보는 법조인들은 법원-검찰이 자존심을 앞세운 감정싸움을 한다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겉보기에는 개별적인 사건에 대한 법리논쟁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법원이나 검찰 모두 서로의 모호한 기소 및 구속 판단 기준을 못마땅해하고 있다는 것. 법원은 검찰의 기소가 자의적이라고 보는 반면, 검찰은 법원의 구속 기준이 들쭉날쭉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번에 문제가 된 사건은 어떤 것일까. 사건의 발단은 지난달 판사 출신 변호사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비롯됐다.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는 지난달 30일 부동산 개발업체로부터 토지구입비 등 명목으로 10억원을 받은 뒤 업체가 아닌 본인 명의로 구입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으로 국회의원을 역임한 판사 출신 변호사 A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에 의해 기각됐다. 검찰 수사팀은 앞서 A씨에 대해 청구한 영장이 한 차례 기각된 바 있어 자존심이 상해있던 터였다.
검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1월 경기 광명시 일대 1천5백여 평의 토지를 15억원에 매수하기로 땅주인과 합의했음에도 토지 매수를 의뢰한 H사에게 “토지를 28억원에 매입해 주겠다”면서 10억원을 받은 후 자신의 명의로 땅을 산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A씨는 땅을 H사에 넘길 예정이라고 주장하지만 당초 토지에 있는 46세대의 철거 및 세입자 처리 비용 등을 매도인이 부담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기로 하고 매매를 위임받은 후 실제로는 매수인이 부담하는 조건의 계약을 맺은 사실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법을 잘 아는 A씨가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고 있어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높다고 보고 있다. 때문에 검찰은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피의자가 판사 출신이고 국회의원을 지낸 변호사인 만큼 더 엄중한 처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법원은 끝내 영장을 기각했다. 결국 검찰은 A씨를 불구속기소해야만 했다.
하지만 법원은 영장을 기각한 사유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법원은 “A씨가 H사로부터 10억원을 받아 토지 매수자금의 일부로 사용했고 사업추진에 필요한 토지사용 허가서 등을 제공한 사실 등으로 미루어 A씨에 대해 배임 혐의의 고의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A씨가 28억원에 토지를 매입해주겠다고 H사와 계약한 뒤 실제로는 토지를 10억원에 구입한 것은 전적으로 A씨의 수완에 따른 것이라고 판단했다. 28억원보다 적은 금액으로 구입할 때 발생하는 차익은 A씨의 몫이라는 계약이 있었다는 것이다. 또 A씨가 이 토지를 자신의 명의로 한 것은 H사측이 실물을 잘 몰라 우선 자신이 토지를 매입한 뒤 나중에 H사측에 되파는 형식으로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특히 법원은 “피의자가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방어권을 보장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법원-검찰 간 이상기류는 기각된 이후 서로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다. 검찰은 지난번 법조비리 수사과정에서 유독 판사 출신에게만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과 이번 영장기각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A씨처럼 피의자가 자신의 혐의를 부인할 때 법원이 방어권 보장 차원에서 구속영장을 기각한다면 구속될 피의자가 어디 있겠느냐면서 법원의 결정에 도저히 승복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이 같은 영장기각 사례가 직접적인 이유는 아니겠지만 법무부는 법원의 영장기각에 불복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영장 준항고제도를 도입할 뜻을 밝혔다.
반면 법원은 영장을 기각한 것이 마치 부당한 결정인 것처럼 검찰이 언론사에 흘리는 것 아니냐고 해석하는 눈치다. 실제로 법원은 A씨에 대한 영장기각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 법원은 법무부가 추진하고 있는 영장 준항고제도에 대해서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법원-검찰은 긴급체포한 뒤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그간 특수수사의 관행을 놓고도 대립하고 있다. 법원은 앞으로 긴급체포 사안이 아닌데도 피의자를 긴급체포한 뒤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기각하겠다는 뜻을 직접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 같은 취지로 법원은 최근 군인공제회가 시행한 서울 한남동 H아파트 신축사업과 관련, 편의를 봐달라는 청탁과 함께 시공사인 J건설사 대표로부터 각각 1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군인공제회 아무개 간부 등에 대해 청구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법원은 “체포영장을 받을 시간 여유가 충분했는데도 긴급체포한 것은 위법”이라며 “이에 기반한 구속영장 역시 기각돼야 마땅하다”고 밝혔다. 피의자를 우연히 발견한 경우와 같이 체포영장을 받을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경우에 한해 긴급체포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는 현행 형사소송법을 엄격히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특수수사를 전혀 모르는 처사라고 반박하고 있다. 검찰은 뇌물수수를 예로 들었다. 검찰의 경우 뇌물을 건넨 업체 관계자로부터 관련 진술을 확보하면 곧바로 뇌물을 받은 공직자에 대한 소환조사에 착수하는 것이 상례다. 이때 검찰은 공직자를 검찰청사로 소환해 조사하거나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검거한 뒤 조사할 수 있다.
검찰은 이중 통상 공직자를 소환하는 방법을 쓴다. 체포영장을 발부받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릴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수사내용이 새어나갈 수 있기 때문에 우선 공직자를 소환조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이 공직자를 소환한 뒤 일정 시간 동안 조사하다가 긴급체포하지 않으면 공직자가 수사 도중 귀가하겠다고 하더라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귀가시키면 검찰의 수사 내용을 공직자가 다 알고 있는데 수사가 제대로 되겠느냐는 것이다. 때문에 검찰은 어느 정도 수사가 진행되면 48시간 동안 강제수사를 할 수 있는 긴급체포를 하게 된다.
물론 긴급체포는 검찰에 의해 남발될 수 있다는 점을 검찰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법무부는 이를 감안해 앞으로는 긴급체포 후 곧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도록 형사소송법 개정을 추진중이다.
그러나 검찰이 문제삼는 것은 왜 이 시점에서 법원이 긴급체포를 문제 삼고 나섰느냐는 것이다. 검찰이 긴급체포 뒤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도 굳이 이번에 문제를 제기한 것은 모두 법조비리 수사과정에서 비롯된 법원-검찰간 갈등의 연장선상이라는 것이다.
법원-검찰은 로스쿨 도입이나 배심제·참심제 도입 등 사법개혁위원회의 개혁과제를 놓고도 이견을 보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같은 법원-검찰 간 갈등이나 법리논쟁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에 있다. 분명한 것은 양쪽 모두 진정으로 일반 국민들의 인권존중을 위해서 이 같은 감정싸움을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이진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