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노항씨(왼쪽), 김대업씨 | ||
경우는 좀 다르지만 병역비리가 불거질 때마다 등장하는 ‘병역 브로커’들의 경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군 출신이거나 병무청 직원들이 거의 독식했다. 그러나 병역 기피 수법이 진화할수록 브로커의 세태도 바뀌고 있다. 특히 프로야구 선수들이 대거 연루된 이번 병역 비리 사건의 브로커 김아무개씨(29)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프로야구 선수 출신인 그는 자기 ‘안마당’에서 마음껏 활개를 치고 다녔다.
서울의 H고와 지방 W대에서 내야수로 활약한 김씨는 지난 97년 프로야구 신인드래프트에서 2차 7순위로 한화에 지명됐다. 당시 계약금 4천5백만원, 연봉 1천5백만원을 받는 ‘B급’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 또한 프로 입단과 함께 군입대 문제에 봉착해야 했다. 2군서도 그다지 두드러지지 못했던 그의 실력으로 볼 때 3년 이후에는 받아줄 구단이 있을지조차도 불투명했다.
그는 선배들에게 고민을 털어놨고, 한 선배의 소개로 스포츠계와 연예계에서 어느 정도 알려진 브로커 우아무개씨(38)를 만났다. 우씨는 이미 96년에 병역비리 브로커로 활동하다가 발각돼 한 차례 구속된 전력이 있었다. 그는 우씨를 통해 소변에 피와 약물을 섞는 방법으로 면제를 받았다.
그는 상황판단이 빨랐다. 비전 없는 2군 선수 생활보다 브로커 일이 훨씬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 신인 첫해에 그는 미련 없이 야구 글러브를 벗어 던지고 우씨와 손을 잡았다. 선수 출신으로 많은 인맥을 갖고 있는 김씨는 ‘선배’ 우씨보다 훨씬 ‘접근성’이 뛰어난 환경에 있었다. 그는 금세 우씨를 앞질렀지만 수입 분배에선 항상 뒷전이었다. 이에 불만을 품은 그는 2001년부터는 아예 ‘독립’해서 본격적인 프로야구계 병역 브로커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프로야구 선수의 병역 비리는 91년에도 한 차례 크게 불거졌다. 현재 프로야구 대표적 투수로 활약하고 있는 정아무개 선수 등 당시 태평양 소속의 선수 6명이 연루됐다. 당시 브로커는 현직 의사인 박아무개씨와 양아무개씨 등이었다. 이들은 돈을 받고 허위 진단서를 발급해 병무청에 넘겼다. 병무청 몇몇 징집 관계자들과도 연계가 되어 있었다. 브로커 박씨 등은 선수들의 건강을 관리해주면서 친분을 유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병역 브로커’가 본격적으로 회자되기 시작했던 때는 지난 70년대. 1972년 당시 서울병무청장을 포함한 병무청 직원과 영관급 장교 등 약 60명의 군 관련 인사가 병역비리에 연루되어 한꺼번에 입건되는 대형 사건이 터졌다. 이때부터 병역 브로커로는 군 관련 인사가 단골 손님으로 등장했다.
최대 규모의 병역 비리 수사가 이뤄졌던 지난 98~99년의 경우, 당시 56명이나 되는 대규모의 브로커들이 적발되기도 했는데, 이 가운데 병무청 직원이 24명으로 가장 많았고, 그 뒤를 군인 및 군무원, 그리고 군의관이 차지했다.
특히 병무 행정을 직접 담당하는 병무청 직원이 로비의 대상에 그치지 않고 직접 브로커의 세계로 나섰다는 것은 병무 비리의 부패상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였다. 병무청 직원으로 브로커에 나선 상징적인 사례는 지난 92년에 검거된 O씨.
당시 서울병무청 동원과에서 근무했던 O씨는 병무청에 상담을 하러 온 입영대상자 부모들에게 직접 접근하는 방법으로 브로커 노릇을 했다. 그는 부모들에게 “1차 신검에서 이미 현역 또는 방위병 소집 판정을 받았지만, 2차 재신검을 통해 면제받을 수 있다”고 제안해서 면제 대가로 2천만~5천만원, 방위병 변경 대가로 7백만~1천만원을 받아 챙겼다.
지난 99년 군검찰 수사 당시 일약 ‘병무청 브로커 3인방’으로 유명세를 탔던 정아무개씨, 최아무개씨, 정아무개씨 등은 모두 6~7급에 해당하는 주사급임에도 실무진이라는 신분을 활용, 억대가 넘는 돈을 챙긴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현역 군인 및 군무원 브로커 중에는 기무요원과 헌병요원이 특히 많았다. 대표적인 이가 지난 98년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박노항 원사였다. 27년간이나 헌병으로 근무한 그는 누구보다 군 내부 정보에 밝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역시 헌병 준위 출신의 유명한 병역 브로커였던 변아무개씨도 군 내부에서는 박 원사와 더불어 상당히 유명했다. 두 사람은 당시 병무청과 수도통합병원 파견 연락관을 번갈아 맡으면서 장성급도 함부로 대하지 못할 정도의 막강한 위세를 과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소속의 병무청 모병연락관이었던 원용수 준위는 박 원사와 영관급 장교, 신검 군의관, 지정병원 의사, 병무청 직원 등을 총체적으로 거느리는 대규모 ‘피라미드 브로커 조직’을 구축하기도 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병무청 모병연락관 보직을 유지하기 위해 장성들에게도 로비를 펼친 것으로 전해졌다.
군의관들마저 로비 대상에 이어 브로커로 나선 것도 자못 충격이었다. 군검찰 출신의 유아무개 변호사는 “브로커 역할을 하는 40~50대의 부사관들은 의과대학을 갓 졸업한 나이 어린 군의관에게 회식자리를 자주 만들며 자연스럽게 조직을 관리한다. 뭐가 뭔지도 모르고 군의관들은 자연스럽게 그런 관행에 빠져든다”고 밝혔다.
대개의 경우 현역 군의관 시절 비리를 눈감아주는 소극적인 방법으로 알선료를 챙기지만, 복무를 마친 뒤에는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브로커에 나서는 이도 상당수 발견됐다. 99년 병역비리가 불거졌던 인기가수 김아무개씨의 경우에도 국군수도병원 과장(중령) 출신의 나아무개씨를 통해서 ‘작업’이 이뤄진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 가운데는 김대업씨처럼 자신의 브로커 경험을 수사진에 모두 털어놓아 정보를 제공하는 방법으로 죄를 씻고자 하는 이들도 있었다. 기무사 군무원 출신의 김아무개씨가 대표적인 예.
유 변호사는 “당시 김씨는 액수도 그리 많지 않았지만,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브로커의 내부 세계에 대한 정보를 세세히 그림으로 그려가며 수사에 아주 많은 도움을 주기도 했다”고 전했다. 대구에 머물고 있는 김씨는 현재 “과거의 일은 충분히 반성했고, 이제 모든 것을 잊고 싶다”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90년대 들어 유학 및 해외 이주를 통한 병역 기피 방법이 활개를 치자 군 출신이 아닌 신종 브로커가 강남에서 생겨나기도 했다. 당시 강남에서 ‘병무해결사’ 최아무개씨가 유명세를 탔던 것. 그는 구청의 병사계장으로 유학생 부모를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또한 강남에 위치한 유학상담원 운영자들이 브로커 역할로 나서기도 했는데, 99년 검거된 S유학원의 Y씨가 대표적인 사례였다. 이들은 이민 관련 서류를 위조해주는 방법으로 병역 브로커 노릇을 했다.
2000년대 들어 신종 기법의 질병 사례가 드러나면서 그 진원지로 의료계가 의심받기도 했다. “의학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이 생각하기 힘든 엽기적 방법이 동원되고 있다”는 의심이 그것. 또한 대학병원 관계자들이 병역 브로커와 밀접한 연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드러나기도 했고, 박노항 원사 주변에는 50대 여자 의사가 브로커로 활약한 정황도 포착되었다.
최근에는 군면제 경험이 있는 일반인들이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군에 안 가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며 징집 기피 대상자를 유혹하는 신종 온라인 방법까지 동원되고 있다. 브로커 세계가 ‘조직’에서 ‘1인 군단’으로 분화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