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참 판·검사들이 최근 임관한 신세대 판·검사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법이라는 잣대야 과거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겠지만 이를 적용하고 운용하는 판·검사들의 직업관이나 생활상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승진이 보장되는 자리라도 힘들고 고생스러운 자리는 마다하는 분위기다. 전형적인 신세대들의 가치관이다. 회식문화도 많이 바뀌었다. 법원이나 검찰은 모두 동류의식이 매우 강하다. 때문에 그들만의 독특한 회식문화는 서로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또다른 연결고리였다. 그러나 지금의 젊은 판·검사들은 불필요한 회식은 가급적 피한다고 한다. 개인적인 선약이 우선시되는 탓이다.
검찰의 전통적인 선호부서는 특수부·공안부였다. 우수한 검사들이 특수부·공안부를 선호할 뿐 아니라 인사에서도 특수부·공안부 출신 검사들이 상대적으로 혜택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고생한 만큼 배려한다는 원칙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옛날 얘기다. 최근의 젊은 검사들은 가치관이 달라지면서 선호부서도 달라졌다. 아무리 검사라는 직업을 택했다고 하더라도 자기 일도 하면서 적당히 즐기는 삶을 선택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수도권에 있는 30대 중반의 한 검사는 “내 또래 연수원 동기들은 밤늦게까지 야근을 해야하는 특수부나 공안부 근무를 꺼리는 경향이 강하다”면서 “실적 경쟁을 해야하는 인지부서보다는 출퇴근 시간이 나름대로 일정한 공판부나 형사부 등을 원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특히 결혼까지 한 검사라면 부인의 강요(?)에 못이겨서라도 한가한 부서를 찾게 된다는 것이 이 검사의 설명이다.
과거에는 언론에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떠들썩한 수사를 통해 이름을 날리고 싶어하는 검사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반대다. 다른 소장검사는 “언론이 주목하는 대형사건을 처리하다가 오히려 그 사건때문에 좌천되는 경우도 많지 않았느냐”면서 “남들이 알아주거나 말거나 조용조용히 자기 일을 처리하는 것을 더 바란다”고 말했다. 의대생들이 의료사고가 날 수 있는 외과 전문의보다 의료사고가 많지 않은 내과·피부과 전문의를 선호하는 경향과 같다는 것이다.
법원도 힘든 부서를 피하는 경향은 마찬가지다. 과거 젊은 판사들의 경우 형사합의부 배석판사를 선호했었다. 비록 일은 힘들지만 중요하면서도 다양한 사건을 접해 일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민사합의부나 행정법원 합의부 배석판사를 선호한다. 구속사건처럼 언제까지는 반드시 끝내야하는 재판 시한도 없고, 비교적 일도 힘들지 않다는 것이 젊은 판사들이 선호하는 이유다. 40대 후반의 한 부장판사는 “내가 판사로 임관했을 때만 해도 일을 배우기 위해서라면 매일 야근하는 재판부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야근도 마다하지 않았던 때와는 사뭇 다르다”고 말했다.
회식문화도 달라졌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가 털어놓는 하소연을 들어보면 회식문화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갑작스럽게 부원들과 저녁 회식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점심을 먹으면서 부원들에게 오늘 저녁에 약속이 있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임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두 명의 젊은 검사가 선약이 있다고 그러더라.”
결국 이 부장검사는 회식을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내가 초임 검사 때만 해도 부장검사가 저녁 약속이 있냐고 물으면 일단 없다고 한 뒤 친구들과의 선약은 취소하고 부장검사와의 회식에 참석했다”고 털어놨다.
술도 더 이상 강권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술보다는 대화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필수코스였던 2차 술자리는 선택코스로 바뀐 지 오래다.
특히 과거와 달라진 것이 승진이나 출세에 대한 욕심이 사라졌다. 욕심이 사라졌다기보다는 어쩌면 현실에 순응한다는 표현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한 소장검사는 검사라면 누구나 욕심을 내는 자리인 검사장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한다. 검사로 임관하기 전 학창시절에는 수석을 도맡아하는 등 누구에게도 지는 것을 싫어하는 그였지만 군법무관 생활을 포함해 6년 동안 검사 생활을 하면서 검사장 승진을 염두에 두고 검사생활을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검사로 임관한 동기생들이 80여 명이지만 이중에 검사장으로 승진하는 동기생은 불과 6∼7명에 불과하다”면서 “10대1이 넘는 경쟁을 의식해 평생 치열한 삶을 사는 것보다는 비록 승진은 하지 못하더라도 적당히 여가생활도 즐기는 쪽을 선택했다”고 털어놨다. 이 같은 생각은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연수원 동기생들도 비슷한 생각이라는 것이다.
법원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수도권에서 예비판사로 있는 한 판사는 나름대로 우수한 성적이었기 때문에 지방법원으로 가지 않고 수도권에서 첫 근무를 시작했다는 자부심이 있다. 하지만 이 판사도 고법부장 승진 등은 개의치 않는다고 한다.
다음은 한 지방법원 합의부 배석판사가 털어놓은 경험담.
“연수원 성적이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할 때까지 인사를 좌우하는 법원에서는 항상 서열에 대한 강박관념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우스갯소리로 동기생들이 길을 걷거나 밥을 먹을 때도 성적순으로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고법부장 승진에서 탈락한 한 지법 부장판사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얼마나 서열과 승진에 연연했으면 그랬을까 싶다. 지금부터라도 인사 보직 승진 등에는 얽매이고 싶지 않다.”
2∼3년을 주기로 수도권과 지방을 전전해야 하는 판·검사 인사패턴에 대한 생각도 많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법을 다루는 공직자로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때문에 지방근무을 반드시 해야하는 점 때문에 젊고 유능한 판·검사들이 옷을 벗는 사례가 과거보다 훨씬 늘었다. 특히 맞벌이 판·검사들이 늘어나면서 이 같은 경향이 심해진다고 한다.
서울 본사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부인을 둔 한 검사는 “아내는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한 서울에서 근무해야하지만 나는 2∼3년마다 수도권과 지방을 전전해야 한다”면서 “아내와 아들만 서울에 두고 혼자만 지방에 내려가 근무하는 생활을 오래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는 자식이 학교에 들어갈 때쯤이면 변호사로 개업할 것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
법원은 지방근무로 인해 우수한 법관들이 빠져나가는 점을 감안, 지역법관제의 확대를 심각하게 고려중이다. 검찰도 이 같은 인사정책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법조계에 이처럼 신세대식 사고를 하는 젊은 판·검사들이 늘고 있지만 사건처리에 대한 공정성이나 업무처리 능력, 전문성 등은 과거보다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하니 다행이다. 현재의 신세대 판·검사들이 부장판사나 부장검사로 승진한 뒤 판·검사로 막 임관한 후배 법조인들을 바라보면서도 세대차이를 느낄지가 궁금해진다.
이진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