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음악 명문 대학을 졸업한 이씨는 조선업계의 유명인사였던 부친의 후광으로 피아니스트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후 S그룹 아무개 전 회장과 백년가약을 맺고 한동안 내조에 충실했지만 타고난 외향적 성격은 이씨를 대문 밖으로 이끌었다.
지난 90년대 초반 이씨는 음악 관련 모 협회 이사직을 맡았는데 그후부터 갖가지 대외 활동을 하며 빚이 급격하게 늘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95년 9월 자신이 적극 유치해 서울에서 열리게 된 국제○○총회 준비 및 해외 한국관 건립과 국제 축제 등의 사업을 추진하면서 상당한 돈을 여기저기서 끌어 썼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뒤로도 이씨는 친척의 후원을 촉매제로 삼아 각종 문화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했으며 특히 외국의 저명한 예술계 인사들과의 인맥을 넓히기 위해 상당한 ‘노력’도 기울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빚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면서 남편인 S그룹 회장과도 93년부터 사실상 별거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급기야 98년에는 남편이 가정법원에 이혼 소송을 냈으며 이씨 또한 남편을 상대로 3백억원의 재산 분할과 자녀 1인당 월 5백만원씩의 양육비를 청구했으나 모두 기각당했다. 재판 과정에서 재벌회장인 남편이 약속 어음 남발 등으로 이씨가 진 빚 99억5천만원을 대신 갚아준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지난 96년 종적을 감춘 이씨는 이혼 소송도 변호사에게 일임한 채 외부와의 접촉을 모두 끊고 수사망을 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혼 후 서울 강남 논현동 단독주택에서 잠시 머무른 것으로 전해졌으나 얼마 후부터는 일정한 주거지 없이 타인 명의 휴대폰을 사용하며 은신해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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