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이준석 선장이 지난 17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릴 두번째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눈을 감은 채 구치감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앞서 지난 10일 열린 첫 재판에서 유가족들은 꾹꾹 눌러 담았던 울분을 폭발시킨 바 있다. 유가족 중 일부는 ‘네 놈들이 사람이냐’, ‘짐승보다 못한 놈들. 금수’라는 피켓을 들고 법원 건물에 들어서려다 법원 직원에게 제지를 당했다. “피켓을 들고 법정에 들어설 수 없습니다”라는 직원의 단호한 말에 한동안 실랑이가 벌어졌다. 재판이 열린 201호 법정에서는 이준석 선장(69) 등 선원 15명이 차례차례 모습을 드러내자 “뻔뻔한 얼굴 똑바로 보여라”, “이 살인자야. 밥은 잘 들어가느냐”라는 고성이 이어지기도 했다. 1차 재판에서 이준석 선장 측은 “사고 직후 조타실로 이동해 1등 항해사, 2등 항해사와 함께 상황을 파악하고 배의 수평을 잡기 위해 노력했으며 퇴선 방송을 수차례 했다”며 “사고 초기부터 종합적으로 모니터링한 해경에 의해 (승객들에 대한) 구조가 이뤄지는 게 합당하다”고 살인 혐의를 전면 부인해 유가족들의 비판을 한 몸에 받았다.
1차 재판과는 달리 2차 재판은 차분하게 진행되는 모습이었다. 재판 시작 시간인 오전 10시가 되자 유가족들은 차례차례 법정으로 입장했다. 201호 법정에 들어가지 못한 유가족들은 204호 보조법정으로 이동했다. 보조법정은 영상을 통해 실시간 재판 중계를 볼 수 있도록 마련됐다. 그렇게 재판은 시작됐다.
법원 앞에서 세월호 선장, 선원들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피고인 측 변호인은 “책임을 통감하고 응분의 책임을 질 각오를 하고 있다”면서도 “당시 세월호가 갑자기 전복돼 급속히 침몰하는 과정에서 피고인들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바닷물이 3층 기관부 선원실 복도와 갑판까지 차오르는 등 생명이 위험한 긴박한 상황에서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졌다”며 당시 상황이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변호인은 이어 “대형 페리호인 세월호가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1시간 30분 만에 완전히 침몰된 점을 살펴보면 피고들이 구조 활동을 다 했어도 전원이 무사히 구조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구조 활동 포기로 과연 수많은 피해자들의 사망·상해 결과가 발생했을지 의문”이라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변호인의 발언 중간 중간 유가족들의 한숨 소리가 퍼져나갔다.
“승객을 버리고 탈출한 사실을 인정합니다.”
이 와중에 1등 기관사 손 씨는 다른 선원들과는 다르게 자신의 혐의를 모두 인정해 눈길을 모았다. 손 씨의 변호인은 “순식간에 배가 기울어 승객들을 구조하지 못했다는 변명이나 선장의 지시가 없었으니 무죄라는 주장도 하지 않겠다”며 “무리한 개조로 복원성을 상실하게 하고 세월호를 시한폭탄으로 만들어 결국 침몰하게 만든 관련자들의 처벌이 적절하게 이뤄지기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선원들이 처벌받아도 제2, 제3의 세월호 사건은 또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호소했다.
한편 손 씨는 세월호에서 구조된 후 투숙 중인 모텔에서 자살을 시도한 부분이 재판에서 언급되기도 했다. 지난 4월 21일 전남 목포시 죽교동의 한 모텔에서 투숙했던 손 씨는 모텔 객실 문을 닫고 내부에 보관돼 있는 비상용 로프를 이용해 목을 매려다 주변인들이 말려 자살에 실패했다. 앞서의 변호인은 “양형 과정에 있어 미안함과 죄스러움, 자괴감에 시달려 왔던 손 씨의 사정을 고려해 달라”고 말했다. 묵묵히 듣고 있던 손 씨가 고개를 떨구었다.
법정 한 편에 모여 대화를 나누는 세월호 유가족들.
재판은 오전을 지나 어느덧 오후로 넘어갔다. 차분하게 진행되던 재판에서 단원고 한 여학생의 어머니가 판사에게 발언 요청을 했다. “퇴선명령을 내렸다”는 피고인 측의 주장을 듣고 나서다. 어머니는 “우리 아이와 사고 당일 오전 10시 11분부터 5분 동안 통화를 했는데 ‘엄마 울지마, 금방 구조돼서 나갈게’라는 말과 함께 전화가 끊긴 뒤로 6일 만에 물속에서 올라왔다”며 “우리 아이는 구명조끼를 입고 선내에서 지시대로 기다리고 있다고 연락을 해왔다. 승무원들이 왜 아이들에게 빨리 나가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자기들만 나왔는지, 왜 퇴선 방송이 안 된다고 거짓말을 했는지! 그거 하나만 밝혀 달라”며 눈물로 호소했다. 발언을 듣고 있던 유가족들 역시 참고 있던 눈물을 터트렸다. 법정 안은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렇게 재판은 6시간가량 진행됐다. 길고 긴 재판에서 유가족들은 종종 밖으로 나와 마음을 달랬다. 밖에 나와서도 대화의 주제는 참사가 발생한 그날로 돌아갔다. 한 유가족은 “우리 아들에게 연락이 온 게 오전 10시 7분이다. 아직도 메시지를 지우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증거가 뚜렷하게 남았는데 왜 이렇게 거짓말을 하는지, 재판 중에 졸고 있는 거 봐라. 하다못해 반성도 제대로 안 하는 것 같다. 이 재판을 끝까지 지켜볼 것이다”라고 울분을 토했다. 실제로 몇몇 선원들은 오후 재판 도중 고개를 숙이다 졸고 있는 모습을 들켜 유가족들의 강력한 항의를 받기도 했다.
한편 이날 검찰은 1차 재판에서 재판부에 제출한 1929개 증거를 포함해 626개의 증거를 추가 제출했다. 뿐만 아니라 아직 접촉하기 어려운 생존 학생들의 진술 및 영상자료 등을 또 다시 추가로 제출할 예정이다. 선원들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공방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된 셈이다. 유가족 측의 변호를 맡고 있는 한 변호인은 “현재 선장, 선원 등 피고인 15명 중 1명을 제외한 14명이 갖가지 이유로 자신을 방어하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다음 재판에는 단원고 생존 학생들이 직접 증인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여론의 관심이 집중된 만큼 최선을 다해 재판에 임하겠다”라고 전했다. 다음 재판은 6월 24일 오후 2시 광주지법에서 열린다.
광주=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향후 재판 일정 어떻게 되나 학생들 증인으로 나선다 세월호 참사 재판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공판도 빠르게 진행될 예정이다. 광주지법 형사11부는 오는 6월 24일 오전에 3회 공판준비기일에서 검찰이 추가로 신청한 증거 620여 건에 대한 변호인들의 인부(동의 또는 부동의)가 이뤄지면 곧바로 당일 오후에 본 재판에 들어간다는 것. 특히 이 과정에서 세월호 침몰 당시의 상황 등을 담은 동영상(CD) 등이 법정에서 상영될지 주목된다. 배 안에 있던 학생들이 휴대전화로 촬영한 동영상이 재판부에 제출될지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또한 재판부는 오는 30일 세월호와 ‘쌍둥이배’로 알려진 오하마나호에서 증거조사 차원의 현장검증을 실시한다. 오하마나호에 대한 현장검증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은 배 안 상황에 대한 피고인들의 진술이 많았기 때문이다. 재판부가 현 단계에서 배 구조를 한 번 봐야 여러가지 증거 조사 절차를 보다 풍성하고 충실하게 진행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현장검증은 실제 증거조사이기 때문에 공판준비기일이 종료된 다음에 진행한다. 다음달 22일부터는 증인신문기일이 운영된다. 신문기일에는 해양경찰, 구조에 참여 했던 관계자 등이 다양한 방법과 함께 증인석에 오른다. 세월호에 탑승했다 구조된 단원고 학생들의 경우 심리상태 등을 감안, 증인 채택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