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면담록 기록자는 “김 위원장은 실용주의 국가로 과학이 많이 발전했다고 미국을 예찬했다. 그는 일본을 더 낮게 평가했다. 모방만 할 뿐 철학과 근본이 없다는 것이었다. 서울이 도쿄보다 더 낫다는 얘기도 했다. 특히 그는 미국의 의술이 뛰어나다고 했다. 그는 ‘남한에서 이인모 노인이 왔을 때에도 내가 무조건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지금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 미국 의사가 살렸다’고 말했다. 따라서 명예회장님도 미국에 가서 치료를 하면 고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의 권유에 몽헌 회장님은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명예회장님이 건강을 되찾아야 한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고 말했다.
정 명예회장은 92년 대선 실패 이후에도 권력과 명예에 대한 대단한 집념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왕회장과 가까운 한 인사는 “사석에서 명예회장이 ‘노벨평화상을 제(DJ) 목에 먼저 걸치나 내 목에 먼저 걸치나 두고 봐라’라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왕회장은 대북사업을 시작하면서 자신을 ‘장사꾼’이라고 자처했지만 그는 노벨평화상까지 노린 것이다.
왕회장은 1997년 대통령선거에도 출마하려고 했다. 아들 MJ는 “아버님이 대선에서 패배한 뒤 재판을 받고 이미지가 많이 손상됐다. 그때 건강을 많이 상하셨다. 연세가 많아지셔서도 그랬고. 그런데 97년에 대선에 한 번 더 나가볼까 그러셨다. 사실 92년 출마 때도 가족들은 말렸다. 그분의 일은 주위 누구도 말리지 못한다. 그래서 나하고 삼촌 두 분이 점심 때 찾아갔다. 내가 아버지의 건강을 걱정했더니 ‘너희들은 하고 싶은 일을 하니까 건강하잖냐, 나도 하고 싶은 일을 해야 건강해질 것 아니냐’라고 하셨다”고 밝히기도 했다.
현대그룹이 한진그룹과 사이가 안좋아 경영진이 주로 대한항공 대신 아시아나항공을 이용했다는 비화도 소개됐다. MH 측근은 “왕회장은 전경련 회장을 그만두면서 후임을 물색하던 중, 때마침 한진그룹측에서 이를 맡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러나 왕회장은 5대그룹에서 회장을 맡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단순히 그런 이유로 그가 배제됐다. 결국 후임 회장은 LG의 구자경 회장이 취임했다. 이후 현대그룹과 대한항공은 보이지 않는 불편한 관계가 한동안 계속됐다. 이런 사정을 알고 있던 MH도 가능하면 대한항공을 피하고 아시아나항공을 이용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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