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린우리당의 당비 대납 수사에서 촉발된 검찰과 문석호 의원과의 갈등이 계속 커지고 있다. 문 의원측은 “검찰이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며 전의를 다지고 있다. | ||
정치권에서는 “문 의원이 벌집을 쑤셔 놨다. 검찰 수사망에 제대로 걸린 것 같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검찰을 상대로 무모한 도전을 하는 게 아니냐”는 걱정스런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압수수색에 대해서도 대부분의 언론은 “정당한 법집행에 대해 (문 의원이) 좀 오버하는 것 같다”는 시각이 많다. 그러나 변호사 출신의 문 의원도 ‘검찰의 폭거’, ‘보복수사’등을 거론하며 쉽게 물러나지는 않을 전망이어서 “결과는 속단하기 이르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당비 대납 문제와 관련 자신의 사무실이 압수수색 당한 다음날인 1월27일 열린우리당 문석호 의원은 즉각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성명에서 “압수수색은 법리적으로나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검찰의 폭거”라고 주장했다. 또 “깨끗한 정치를 생명처럼 여겨 온 ‘정치인 문석호’의 명예와 자존심을 무참히 난도질하고 유린한 범죄행위”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한 검찰의 답변은 단순했다. “입당원서와 대납한 당비가 모이는 곳이 문 의원 사무실인 만큼 증거확보를 위해 압수수색은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천정배 법무장관은 “당비 대납 사건과 관련해 증거 자료가 문 의원 사무실에 있다고 해서 압수수색을 실시한 것 뿐이다. 오해가 있었다면 유감이다”고 중간 입장에 섰다.
천 장관의 사과발언으로 잠잠해진 듯 보였던 이 사건은 문 의원이 압수수색을 실시한 남기춘 서산지청장과 정상명 검찰총장에 대해 1백 건이 넘는 수사자료과 신상자료을 검찰측에 요구하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게다가 문 의원이 요구한 자료에는 △남 지청장의 직계존비속 등 가족사항, 병역, 재산 명세 △서산지청의 업무추진비 사용 명세 △정상명 검찰 총장의 검사 임관(1977년) 이후 학력과 경력 및 재산변동 내용 일체 △정 총장의 형제자매 8명의 인적사항 및 거주지 내용 △군 복무 시절의 상세 배치지역 및 임무 등 검찰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사생활 관련 자료’가 다수 포함됐다. 게다가 문 의원은 지난 8일 보도자료를 통해 “정 총장은 법조 브로커 윤상림과 잘 아는 막역한 사이인데도 ‘일면식도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며 “정 총장이 군 복무(단기사병) 중 무슨 수로 사법시험에 합격했는지에 대해서도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 문석호 의원의 반발에 검찰은 사건 담당 후임으로 ‘특수통’을 앉히면서 수사의 고삐를 풀지 않고 있다. 사진은 정상명 검찰총장. 청와대사진기자단 | ||
검찰의 ‘유감’은 즉각 행동으로 나타났다. 당비대납 문제를 수사하고 있는 대전지검 서산지청이 지난 14일 “문 의원측에 모 기업의 정치자금이 불법적으로 전달된 정황을 포착”했다며 서울 여의도에 있는 에스오일 본사를 압수수색한 것이다. 검찰은 “이 기업 직원들 5백 명 이상이 지난해 문 의원측에 1인당 10만원씩 수천만원의 정치자금을 낸 정황을 포착했다”며 “직원들이 낸 것으로 파악된 돈이 기업 자금인지 여부와 그 성격을 캐고 있다”고 밝혔다.
문 의원측은 즉각 반발했다. 문 의원은 이 소식이 알려진 다음날 즉각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달 서산 사무실 압수수색 후 검찰총장 사퇴 등을 요구하며 비난한 데 대한 보복수사”라며 “서산시 공무원의 당비대납 수사에서 나와의 연관성을 찾을 수 없자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으려는 검찰의 만행”이라고 주장했다. “조직폭력배와도 같은 검찰의 폭거”라는 표현도 등장했다.
때 아닌 유탄을 맞은 에스오일측은 “일부 직원들이 연말정산 때 돌려받을 돈이라고 판단해 자발적으로 모여 기부한 것으로 안다”며 “울산이나 서산에 공장 신설을 검토중이어서 기부금이 해당 지역 의원들에게 집중됐다”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 직원 2천여명 중 5백 명 이상이 한 명의 정치인에게 후원금을 냈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와 관련, 문 의원측의 한 관계자는 “공식 후원회 계좌로 들어온 소액 정치자금을 문제 삼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지금까지 우리가 제기했던 검찰 관련 의혹은 반드시 확인할 생각이다. 나중에 (검찰이) 후회할 일이 반드시 생길 것이다”고 강조했다.
대검 중수부 과장 시절 박지원 전 장관을 뇌물 혐의로,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 시절 열린우리당 김희선 의원을 불법정치자금 혐의로 기소한 바 있는 남기춘 지청장은 검찰에서도 독종으로 불린다. 그는 이번 검차 인사에서 청주지검 차장으로 옮긴다. 그렇다고 문 의원이 마음을 놓을 일은 아니다. 후임으로 역시 ‘특수통’인 이득홍 수원지검 특수부장이 배치됐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 문제를 흐지부지 덮을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한 인사인 지도 모른다.
칼을 빼든 검찰과 변호사 출신 재선의원으로 열린우리당 제3정책조정위원장인 문의원의 죽기 살기 식의 싸움이 어떻게 끝날지 예상하기는 더더욱 어려워졌다.
한상진 기자 sjin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