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이 참모진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논란을 부르고 있다. 박 대통령이 4월 17일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을 방문해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을 격려하는 모습. 사진제공=청와대
조 의원은 “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밖 외부 행사가 없어 줄곧 청와대 경내에 머물며 20~30분 간격으로 21회에 걸쳐 유선 또는 서면 보고를 받고 필요한 지시를 했다. 박 대통령은 사고 초동대응 단계에서 현장 지휘와 구조 활동이 회의 개최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며 박 대통령이 당일 긴급회의 한 번 열지 않은 이유에 대한 청와대의 입장을 전달했다.
조 의원은 “박 대통령이 당일 청와대에 있었다, 없었다는 문제는 밝혀진 것”이라며 “더 이상 논란을 없애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취지에서 회견을 열었다”고 설명했다. 조 의원은 세월호 특위 간사인 동시에 TK(대구·경북) 지역의 대표적인 친박계다. 그가 사실상 청와대를 대리해 소위 박 대통령의 ‘의문의 7시간’을 둘러싼 논란 진화에 나선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했다. 야당이 박 대통령의 당일 행적 규명을 위해 김기춘 비서실장, 정호성 제1부속실 비서관 등을 청문회장으로 불러내려 하는 상황에서 청와대가 선공을 감행했다는 인상도 강했다.
하지만 이날 조 의원의 회견 내용은 “이미 다 확인했던 사항일 뿐 새로운 내용은 없다”는 야당의 1차 반응에서 알 수 있듯, 박 대통령의 7시간을 둘러싼 논란을 불식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박 대통령이 21차례나 되는 보고를 ‘어디서’ 받았느냐는 핵심 의문에 대해 “청와대 경내”라는 두루뭉술한 답이 나왔을 뿐이고, 왜 그 많은 보고가 대면보고가 아니라 서면 또는 유선보고로 이뤄졌는지에 대해선 아예 아무런 설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 대통령의 7시간을 둘러싼 설왕설래는 조 의원의 회견 이후에도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우선 당일 박 대통령의 소재와 관련, ‘청와대 경내’가 어디냐를 두고 여권 내에서조차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의 한 고참 보좌진은 “청와대의 자료 공개를 통해 밝혀진 것은 박 대통령이 최소한 청와대 밖에 있지는 않았다는 사실뿐”이라고 조 의원의 회견 내용을 평가절하했다. 이번 회견이 박 대통령이 문제의 7시간 동안 청와대 밖에 있었다는 루머가 사실이 아님을 확인하는 수준에 그쳤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이 루머에 대해서는 야권 인사들조차 “굳이 해명할 필요도 없는 낭설”이라고 일축했다. 청와대 근무 경험이 있는 전직 야당 의원은 “대통령의 청와대 외부 동선은 대통령 자신이 아니라 청와대 경호실이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경호팀이 모든 동선에 대해 사전 답사를 한 뒤 ‘경호를 위한 상황 통제가 가능하다’고 판단해야 비로소 대통령의 청와대 밖 출타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7월 10일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 참석한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의원들의 질문을 받던 중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이 의원은 “대통령이 한 번 움직이면 경호실뿐 아니라 대통령이 머무는 곳, 심지어 지나가는 곳의 경찰 조직에까지 비상이 걸린다”며 “최소 수백 명이 동원되기 때문에 대통령의 청와대 밖 사생활이란 애초에 성립 불가능한 얘기”라고 보탰다. 다른 야당 관계자도 “소탈하기로 유명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과거 추억이 서린 한 식당에서 지인들을 만나려다 뜻을 접은 적이 있었다”며 “경호상 문제가 있을 수 있는 데다 대통령이 방문할 경우 그 식당이 며칠 동안 영업에 방해를 받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고 전했다.
이런 여러 정황에 박 대통령이 참사 당일 청와대 내 ‘관저’에 머무르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당일 공식 일정이 없었던 박 대통령이 본관 집무실이 아닌 관저에 머무르다 세월호 참사 관련 보고를 받았던 것 아니냐는 얘기다. 박 대통령이 줄곧 본관 집무실에 머물렀다면 청와대가 굳이 구체적인 소재지를 밝히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 청와대 출입기자는 “각종 기록과 증언을 통해 확인된 바로는 청와대가 세월호 참사의 심각성을 인지한 시점은 당일 오후 2시 50분을 전후한 시기”라며 “그때까지 잘못된 보고만 받은 박 대통령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조원진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봐도 당일 오후 2시 50분 이후에야 청와대가 급박하게 돌아갔음을 알 수 있다. 오후 2시 50분 국가안보실은 대통령에게 유선을 통해 세월호 탑승객 370명이 구조됐다는 기존 보고가 잘못됐음을 보고했다. 이어 오후 3시 30분 비서실은 서면 보고를 통해 구조인원이 166명이라고 다시 정정했다.
오후 4시 10분에는 김기춘 실장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가 소집됐고, 오후 5시 15분 박 대통령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했다. 앞서의 출입기자는 “만약 대통령이 관저에 머물렀다면 참사 발생 6시간이 넘도록 청와대가 허송세월했다는 의미인 만큼 청와대로서는 그 사실을 시인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의문의 7시간’ 행적이 일본 산께이신문의 가십거리로 전락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박 대통령은 평소에도 공식 일정이 없을 때 본관 집무실이 아닌 관저에서 업무를 보는 일이 잦은 것으로 전해진다. 박 대통령은 퇴근 시간 후에도 관저에서 밤늦게까지 밀린 보고서를 읽거나 인터넷을 통해 기사를 읽고 댓글까지 점검하곤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와대 경내는 모두 대통령의 집무실”이라는 청와대의 설명이 허언이 아닌 셈이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공식 일정이 없는 경우 박 대통령은 본관 집무실과 관저를 오가며 업무를 본다”며 “식사도 공식 오찬, 만찬 일정이 아니라면 관저에서 혼자 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청와대 인근 안가에 머무르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관저와 본관 집무실, 직원들이 일하는 위민관 등은 천천히 걸어도 5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데 박 대통령이 회의 한 번 주재하지 않고 줄곧 서면과 유선보고만 받은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한 여권 인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걸핏하면 ‘지하벙커’로 불리는 청와대 위기관리센터로 달려갔던 점을 거론하면서 “상식적으로 답답해서라도 21차례나 되는 보고를 서면이나 유선을 통해서만 받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박 대통령이 엄밀한 의미의 ‘청와대 경내’가 아닌 안가에 있었던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외부인의 청와대 방문은 모두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역대 대통령들도 필요한 경우 안가에서 사람들을 만나곤 했다”며 “대통령의 가족이나 여당 내 핵심 측근 등을 불러 식사를 하는 것도 대부분 안가에서 이뤄지곤 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이처럼 박 대통령의 7시간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 원인을 청와대 참모진들의 안이한 대응에서 찾고 있다. 애초에 합리적인 수준의 의문이 제기됐을 때 신속하고 투명하게 답을 내놨다면 불필요한 오해나 억측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또 근거 없는 루머가 언론지상에 오르내리기 시작했을 때라도 제대로 설명하고 대응했다면 박 대통령의 행적이 일본 극우지의 가십거리로 전락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새누리당 비박계의 한 의원은 “국민들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오로지 대통령 심기경호에만 신경을 쓰는 참모진들이 문제를 더 키운 측면이 있다”며 “쓸데없는 논란으로 인한 국론분열을 막기 위해서라도 청와대가 국민들의 질문에 성실하고 투명하게 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