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자스시티 로열스 팬들의 초청을 받아 미국에 다녀온 ‘로열스 열혈팬’ 이성우 씨. 이 씨는 메이저리그 구장에서의 시구 모습을 재연하고 현지에서 받은 선물들을 보여주며 꿈 같은 10일간의 기억에 대해 말했다. 구윤성 기자 kysplanet@ilyo.co.kr
그렇게 해서 시작된 것이 20여 년 동안 계속된 로열스 사랑이었다. 이 씨는 단순한 팬심을 넘어 적극적인 방법으로 로열스 팬들과 소통에 나섰다. 20년 전 로열스 팬들이 개설한 팬카페에 가입해 회원들과 대화를 나눴고, SNS 트위터가 생긴 후론 @Koreanfan_KC란 트위터 계정을 개설해 로열스 팬들은 물론 구단, 선수들과도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로열스 커뮤니티에서 이 씨는 이미 유명인사였다. 지구 반대편의 한국인이 20년 넘게 로열스를 지속적으로 응원하고 글을 올리는 데 주목했다.
마침내 트위터를 통해 오랜 인연을 맺은 로열스 팬들이 이 씨를 미국으로 초청하기로 했고, 캔자스시티 로열스 구단에서도 이 씨에게 시구와 방송 출연을 부탁하며 그의 진심어린 로열스 사랑을 널리 알리기 시작했다. 지난 8월 5일 미국으로 출국 후 10일간 한 편의 영화같은 스토리를 만들고 돌아온 이성우 씨를 직접 만나 캔자스시티에서 있었던 ‘한여름 밤의 꿈’을 간접 시청할 수 있었다.
이성우 씨에 대한 스토리는 미국의 언론에서부터 알려졌다. 처음엔 캔자스시티 지역 방송이었고, 나중엔 ESPN 스포츠센터 코너에도 소개될 정도였다. 한국의 기자들은 ESPN에 나온 한국팬의 이야기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뒤늦게 접했다.
8월 5일 이 씨가 캔자스시티로 향한 배경에는 오랫동안 근무했던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회사로 이직하는 과정에서 며칠간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로열스 팬들과 트위터로 자주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그들이 먼저 캔자스시티를 방문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해왔다. 워낙 오랫동안 인연을 맺은 친구들이라 그들의 부탁을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마침 이직을 앞두고 잠시 휴가를 쓸 수 있었고, 이 기회에 그동안 TV로만 봤던 로열스의 카우프만 스타디움을 구경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직접 항공권 구입 후 출국했고, 현지에서의 숙박은 트위터 친구들이 돌아가면서 맡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떠난 캔자스시티였는데, 막상 공항에 도착하니까 트위터에서만 얼굴을 봐오던 친구들과 함께 지역 방송국 팀들이 촬영을 위해 나와 있었다.”
이성우 씨의 캔자스시티 방문에 대해 그곳 지역 방송국이 움직인 가장 큰 이유는 이 씨의 순수한 로열스 사랑이었다. 캔자스시티 로열스는 1985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이래 메이저리그 하위권을 면치 못했다. 이기는 날보다 지는 날이 더 많았던 팀을, 20년 동안 변함없는 애정을 보이며 단 한 번도 로열스 팀 자체나 관계자들에 대해 비난을 남기지 않았던 동양의 한 남자에게 주목했다. 물론 그 다리를 놓은 사람들은 미국의 트위터 친구들이었다.
위에서부터 로열스 카우프만 스타디움에서 시구하는 모습, ‘맞팔’ 친구인 투수 대니 더피, 중계석에 초대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이성우 씨를 미국으로 불러들인 로열스 팬들이자 트위터 친구들은 이 씨가 캔자스시티에 방문하는 것을 지역 전체에 알리기로 결심했다. 결국 로열스 구단을 움직였고 이 씨의 사연을 알게 된 지역 방송국들은 한국에서 오는 로열스 팬에게 초점을 맞추며 프로그램을 준비했다고 한다.
“미국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카우프만 스타디움을 구경하고, 트위터 친구들과 새벽까지 로열스 팀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바비큐를 먹는다는 게 계획의 전부였다. 방송국에서 공항 도착할 때부터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촬영하고 보도를 하게 되면서부터 난 어느새 그곳의 ‘빅스타’가 돼 가고 있었다. 도착한 날, 바로 구단의 초청으로 스타디움을 방문했다. 마침 선수단이 원정 경기 중이라 야구장은 텅텅 비었지만, 로열스 구단에선 나와 트위터 친구들을 위해 야구장을 개방했고, 스타디움의 구석구석을 모두 들여다볼 수 있게끔 배려했다. 대박은 다음날부터 벌어졌다. 홈경기가 펼쳐졌고, 수많은 관중들은 이미 내 존재를 알고 있었다. 전광판을 통해 내 얼굴이 비추면 모든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부르고 박수를 치면서 열광해줬다. 믿기지 않는 현실이었다.”
12일(한국시간)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의 홈경기에 앞서 이 씨는 시구에 나섰다. 시구가 끝난 후에는 캔자스시티의 역사와도 같은 조지 브렛(명예의 전당 헌액자)를 만나는 영광을 얻었다. 조지 브렛은 이 씨에게 통산 3000안타를 친 날짜와 얼굴이 새겨진 기념 주화를 직접 선물하기도 했다.
“경기 끝나고 야구장을 빠져나가는 데만 1시간이 넘게 걸렸다.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와서 사진을 찍자고 청했고, 악수를 나눴으며, 사인을 요청했다. 내가 마치 록스타라도 된 기분이 들 만큼 로열스 팬들은 진심으로 날 따뜻하게 맞이해줬다. 동양의 한 야구팬의 꿈이 이뤄지는 걸 보는 즐거움이 그들한테 존재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성우 씨의 시구로 ‘드라마’가 종영됐다면, 그의 스토리는 쉽게 잊힐 수 있는 부분이었다. 후반기 들어 상승세를 타고 있던 로열스는 이성우 씨가 캔자스시티에 도착한 이후로 8연승을 내달렸다. 더욱이 이 씨가 시구를 한 날에는 캔자스시티가 디트로이트를 제치고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 단독 1위에 오르는 기쁨을 맛봤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 씨가 관중석에 있었던 첫 경기에서 5회 초까지 양 팀 모두 점수가 나지 않았다가 야구장 전광판에 이 씨의 얼굴이 비춘 직후 5회말 선두타자가 홈런 치고 나가며 로열스는 그 경기에서 5-0 승리를 거뒀다. 당시 선발투수였던 제임스 실즈는 로얄수 투수로 첫 번째 완봉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 다음날 경기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전에서는 로열스가 7-4로 승리했고, 이 씨를 응원했던 로열스의 투수인 대니 더피는 시즌 2승을 챙겼다. 대니 더피는 6월 이후로 승수를 챙기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일련의 일들로 인해 이 씨의 이름 앞에는 어울리지 않는(?) 수식어가 붙었다. 바로 ‘승리의 요정’이다. 로열스 팬들은 이 씨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여권을 압수해야 한다느니, 이 씨를 시즌이 끝날 때까지 붙잡아둬야 한다느니 하는 말로 이 씨에 대해 열광했다.
“마치 꿈을 꾸는 듯했던 시간들이었다. 행여 나로 인해 선수단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까봐 행동하는 데 굉장히 조심했다. 시구하러 내려가서도 몇몇 선수들 외에는 인사도 나누지 않았다. 선수들이 사용하는 라커룸을 구경하고 싶었지만, 그 또한 자제했다. 난 내가 유명하거나 얼굴이 알려지길 바라지 않았다. 무조건 로열스가 승리하는 걸 원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성우 기념티’를 입고 있는 로열스의 팬.
“로열스가 70~80년대에는 뉴욕 양키스와 1~2등을 다퉜던 팀이다. 당시의 구단주가 사망하면서 침체기를 겪었고, 지금의 단장이 오기 전까지 ‘스몰마켓’을 표방하는 바람에 좋은 선수들을 데려오지 못했다. 지금은 유망주들을 영입 후 성장시키는 과정에 있고, 그 젊은 선수들이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드디어 포텐이 터지고 있는 셈이다.”
이성우 씨의 캔자스시티 드라마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수많은 SNS의 유저들은 이 씨에게 부러움 섞인 메시지들을 날렸다. 더욱이 메이저리그의 마니아들이라면 캔자스시티 ‘승리의 요정’으로 부각된 이 씨의 모습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로열스의 투수 대니 더피가 트위터로 ‘맞팔’을 맺은 이후로 종종 메시지를 주고받았었다. 로열스 팬카페나 커뮤니티를 통해 익히 내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 그때 더피 선수가 방송국과의 인터뷰 중에 내 이름을 거론하면서 ‘성우 리’를 캔자스시티로 초대하고 싶다는 제의를 했었다. 당시엔 직장인이고 미국에 갈 엄두도 나지 않아 선수의 호의로만 받아들였는데, 이번에 내가 직접 가니까 더피 선수가 날 알아봐줬고 내가 시구할 때 많은 도움을 줬었다. 메이저리그 팬들이라면 이런 내 모습이 무척 신기했을 것이다. 나도 캔자스시티에서 보낸 시간들이 믿기지 않을 정도이니까. 정말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안고 돌아왔다.”
이 씨는 미국에 있는 동안 로열스의 마이너리그 팀들 중 더블 A팀까지 방문했다. 로열스의 자랑인 유망주들의 성장 과정을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거기에선 감독이 직접 이 씨를 데리고 라커룸으로 가 선수들과 인사를 시켜줬단다.
이제 새로운 직장에 출근을 앞두고 있는 이성우 씨. 다시 캔자스시티로 방문할 날이 있을까. 그는 간단하게 대답한다. “내가 그곳을 가든, 못가든, 내 마음 속에는 항상 로열스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어디에 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라고.
로열스 팬이라는 사실 하나로 뭉친 캔자스시티의 친구들과 이성우 씨가 보낸 10일간의 여행은 그들을 지켜보는 메이저리그 팬들에게 아름다운 감동과 깨달음을 안겨줬다. 진실한 팬심이 인간의 진심을 깨닫게 해준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