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범죄수법상 과연 이 사건이 거액을 받기로 한 전문적인 청부살인형태인지 보겠습니다. 사건 현장은 양면에 도로를 끼고 있는 26평의 단층 양옥입니다. 대문 앞에도 농가가 두 채나 있고 주변은 전형적인 시골집들이 산재해 있었습니다. 계획적인 살인이라면 목격자의 가능성이 없는 밤 시간을 선택해야 맞습니다. 특히 그 마을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장영두는 꼭 그렇게 했어야 합니다. 장영두는 타고 가는 차도 바꾸었어야 맞습니다. 마을 교회에 다니면서 자신의 스타렉스로 주민들을 태우고 다녔기 때문입니다. 사건 당일 낮에 장영두는 번호판이 달린 자신의 스타렉스를 죽은 하 영감의 집 문 앞에 세워뒀습니다. 살인의 고의를 가진 채 그 집에 들어갔다면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요? 그 집을 나올 때도 대문 앞에 있는 초록색 양철지붕집에 사는 남자에게 목격되기도 했습니다. 검찰의 주장대로 사전 치밀한 정찰과 함께 사체 처리까지 계획한 살인이라는 것과는 도무지 맞지 않는 행동입니다. 게다가 한 걸음 더 나아가 장영두는 죽은 영감에게 가져가기 위해 마을 슈퍼에서 백세주를 샀습니다. 몰래 죽이러 가는 길이었다면 왜 미련하게 그 가게 주인에게 자신을 노출시킨 것일까요?”
다음은 살인도구에 관한 의문점이었다.
“혼자 살던 죽은 영감님은 망원경이 부착된 스웨덴제 공기총을 안방의 장롱 옆에 비치하고 있었습니다. 항상 납탄이 장전되어 있었습니다. 가까이에 재장전을 위한 공기펌프도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유사시 방어무기가 될 수 있는 기다란 전정가위, 톱, 칼이 있었습니다. 장영두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검찰은 장영두가 비닐봉지와 테이프를 가지고 들어간 걸 보면 살의가 분명히 느껴진다고 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런 도구를 청부살인의 도구라고 할 수 있을까요? 더구나 죽은 영감은 평소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으로 사십대 못지않은 체력을 가지고 있는 건강한 남자였습니다.”
청부살인이 아니라는 허점은 곳곳에 적나라하게 있었다.
“랭가의 진술을 보면 거실로 들어갔는데 장영두가 뒤에서 죽이라고 등을 찔러서 주먹으로 할아버지를 한 대 깠고 다음으로 계속 죽이라고 밀어서 할 수 없이 할아버지의 목을 졸랐다고 이해할 수 없는 유치한 변명 같은 진술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 자체만 해도 거액을 받기로 하고 살인을 맡은 행위가 아닌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 상황은 대낮에 그 집 옆 도로를 지나가는 마을주민에 의해 내부가 들여다보일 위험이 다분했습니다. 살인의 고의를 가지고 들어갔다면 번개같이 영감을 해치우고 나가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었습니다. 그 집에는 총, 칼, 시신의 훼손이 가능한 톱도 있었습니다. 탁자 위에 놋쇠 황소상도 둔기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인데도 랭가는 주먹으로 때리고 영감과 바닥에 함께 엎어져 뒹굴며 목을 졸랐다고 하고 있습니다.”
복잡해 보이는 범죄도 하나하나 분리해서 그 편린을 해석해 보면 다른 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다. 우발적이고 단순한 싸움결과로 나온 죽음으로밖에 볼 수 없었다. 다음은 그들의 도주 형태였다. 내가 계속했다.
“현장은 영감이 죽고 당황한 상황에서 미처 제대로 정리도 못한 채 장영두와 랭가가 ‘날 살려라’ 하면서 꽁지가 빠지게 도망한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시체는 회색바지와 미색내복을 입고 있는 상태로 그대로 거실에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훼손한 흔적도 전혀 없었습니다. 사건 현장은 과수원이었습니다. 바로 인근 밭에 포크레인으로 판 구덩이도 있고 뒤는 야산이었습니다. 거실에 있던 톱으로 시신을 훼손해서 집 뒤 과수원 구덩이나 야산에 매장하면 영구미제의 사건이 되기 충분한 상황이었습니다. 찾아오는 사람도 없는 집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시체는 일주일 이상 그대로 방치되어 부패되기 시작하고 악취가 나면서 발견됐습니다.”
판사들의 얼굴에서 얼마간의 납득하는 빛이 보였다. 나는 랭가 진술의 모순점들을 계속 제시해 갔다. 그러나 수사기록을 보면 마치 어떤 추리소설에서 인용한 듯 시신 처리 계획에 대해서도 써 있었다. 그 부분을 지적했다.
“공범인 랭가의 진술조서를 보면 시체에 50㎏의 무거운 쇠를 달아 저수지에 빠뜨리기로 계획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과수원 내에 흙구덩이가 여럿 있는데도 시신을 차에 따로 싣고 나중에 저수지에 가서 빠뜨리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수사관의 상상을 겁먹은 외국인 노동자 랭가의 입을 통해 말하게 하고 기록한 것 같았다.
“랭가는 살인을 청부한 사람은 빚이 많고 장영두와 친한 죽은 영감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빚이 있는 것은 큰아들입니다. 상속으로 이익을 본 것은 둘째아들입니다. 장영두는 죽은 하 영감의 아들들 누구와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 큰아들 하봉식은 처음 경찰에서 장영두를 수사해 달라고 했습니다. 교활한 추리소설 속의 주인공이 아닌 한 현실에서 살인을 부탁한 사람을 찍어서 수사해 달라고 하기는 쉽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둘째아들은 형사나 검사실의 말을 듣고 청부살인이 틀림없다고 확신하고 형을 범인으로 찍었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수백억대 땅부자인 영감이 살해되자 서로 의심하고 상호 최면된 결과 나온 게 청부살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상상과 최면이 랭가의 입을 통해 진짜인 것처럼 만들어진 것입니다.”
“검사는 이 사건이 청부살인이라고 강력히 주장하고 무기징역까지 구형하면서도 사실은 수사를 한 적이 없습니다. 수사기록 중에는 검사가 죽은 하 영감의 아들들을 추궁한 조서가 전혀 없었습니다. 변호인이 죽은 영감의 아들을 증인으로 신문할 때 검사는 그를 보면서 ‘살인교사범이 아니지요’라고 공식적인 면죄부를 주었습니다. 또 큰아들에 대해서는 소환하려는 노력조차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검사의 이중적인 행동패턴을 보면 결국 청부살인이 아닌 걸 알면서도 외형적으로는 다른 행동을 하고 있다는 의심이 듭니다.”
방청객과 법대 위의 판사들에게서 납득의 빛이 얼핏 비치는 것 같았다. 청부살인이 아니라면 다음은 강도살인의 혐의였다. 변호사인 나는 그 부분에 대해 변론을 시작했다.
“공범인 랭가는 장영두가 땅문서를 찾기 위해 죽은 영감님의 장롱을 뒤졌다고 하고 있습니다. 부자 영감을 죽인 다음에 문서를 가져다 그 땅을 팔자고 했다는 것입니다.”
랭가의 조서에는 그렇게 진술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나는 시체 발견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청 담당자가 작성한 현장출동보고서를 꺼내어 재판장에게 보이면서 계속했다.
“과학수사계 손 경위의 보고서를 보면 살해된 영감이 살던 장롱 문이 열려져 있으나 그 아래 바닥의 먼지는 그대로 쌓여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걸 보고 경찰은 죽은 하 영감이 평상시 장롱 문을 열어두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랭가는 문서를 찾기 위해 장롱을 뒤졌다고 하고 있습니다. 영감의 장롱을 뒤졌었다는 랭가의 말은 명확한 거짓말이었습니다.”
랭가의 그 진술로 장영두에게 강도살인의 죄명이 붙었다. 나는 강도가 아니라는 결정적인 증언을 이렇게 들이댔다.
“증인으로 나온 죽은 영감님의 아들 하교식은 아버지가 절대 집에 현찰을 두고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또 땅문서 관리도 철저히 해서 누구도 아버지의 땅을 함부로 할 수 없다고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그 지역은 토지거래허가지역이고 과수원 부지는 아무나 쉽게 살 수 없는 넓은 땅입니다. 피고인 장영두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장영두에게 부동산을 팔아먹기 위해서 영감님을 죽였다는 강도의 혐의는 거의 실현 불가능한 것입니다. 죽은 하 영감의 가족들 모두 장영두가 아버지의 부동산을 중간에서 처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수사기관에서 전체적인 구상을 하고 랭가나 장영두를 회유해서 한 편의 추리소설같이 만든 면이 있다고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어리석은 장영두는 계속 정신없이 휘둘린 흔적이 역력했다. 그 점을 지적했다.
“장영두는 처음 경찰에 와서 우발적 동기로 랭가가 죽였다고 말한 것으로 조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살인의 동기는 죽은 하 영감이 함께 간 방글라데시인 랭가에게 깜둥이새끼라고 말하자 이에 격분한 랭가의 손에 죽은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살인의 동기를 더 추궁해 갔습니다. 장영두에 대한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강도로 몰기 위해 묻는 부분이 이렇게 나오고 있습니다.
‘하 영감을 살해하면 랭가에게 금원을 주기로 하고 사전 공모를 한 것은 아닌가요?’
담당 형사가 우발범이 아니고 계획적인 살인을 한 것으로 생각하고 한 단계 더 추궁해 들어간 것입니다. 장영두는 어떤 이유인지 거기에도 이렇게 긍정하는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전에 차 안에서 랭가와 영감님을 죽이고 도장을 훔쳐 가지고 나와 토지를 팔기로 했습니다. 랭가에게는 1억 원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장영두는 조서상 전혀 엉뚱한 자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담당형사는 이렇게 문답식으로 조서의 결론을 짓고 있습니다.
‘결국 금원을 강취하러 들어가 살인했다는 것이네요?’
‘예.’
신종 강도가 탄생한 것입니다. 그런데 경찰에서 아무리 살펴봐도 장영두의 강도 결과나 증거가 없었습니다. 그냥 강도로 엮어버리기에는 석연치 않았을 것입니다. 경찰은 다시 사건의 성격을 바꾸고 있습니다. 그게 청부살인의 혐의입니다.
잡혀온 랭가는 단번에 청부살인을 자백하고 기자회견을 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보통 잡범이라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버티다가 자백을 하는데 조서를 통해 보이는 랭가는 특이합니다. 이어서 경찰과 검사가 작성하고 장영두와 랭가가 등장하는 여러 조서들은 청부살인 쪽으로 톱니바퀴같이 맞아 들어가고 있습니다.”
장영두는 상황에 따라 적당히 끌려가는 성격 같았다. 검찰에 송치돼서도 유사한 형태가 되풀이됐다.
“검찰의 조서들을 보면 장영두의 비슷한 행동이 반복됩니다. 검찰청은 다른 줄 알고 장영두는 다시 살인의 동기가 우발적인 것이었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강도를 하려고 그랬다고 말을 바꾸고 있습니다. 마지막에는 검사의 인격에 감복되어 청부살인을 자백한 것처럼 조서는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4월 4일 검사는 장영두에 대해 피의자 신문조서를 작성합니다. 이때 장영두의 조서를 보면 저녁식사 후 고민하다가 검사에게 청부살인의 모든 걸 털어놓은 것처럼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질문에 ‘예, 그렇습니다’로 일관합니다. 검사는 장영두가 청부살인을 인정했지만 배후는 부인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소설가가 쓴 글은 피해가 거의 없다. 그러나 검사나 형사가 혐의를 두고 소설을 쓰면 인간의 생명이 위태롭다. 그들이야 말로 조서살인을 범할 수 있었다. 나는 서서히 이 사건의 본질에 다가가고 있었다.
(계속)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