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혼자 생각했다. 죽어가는 한 여자를 한 남자가 목숨을 걸고 구조하고 있었다. 호적상 남편은 그 시각 검은 웃음을 흘리며 증거 수집을 하고 있었다. 법은 그 명목상의 남편만을 철저히 보호해야 하는 것인지 법정에서 반문하고 싶었다. 김민희가 살아난 후 남편 조대기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김민희의 남편 조대기는 절대로 이혼은 안 된다고 펄쩍 뛰었다. 오민수 좋은 일을 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한 여자를 가운데 두고 기득권자 조대기와 마음을 가져간 오민수와의 격돌이었다. 김민희가 이혼해야 할 사유는 충분했다. 남편 조대기는 심지어 집에 찾아온 김민희의 친구까지 건드렸다. 그러나 법원은 김민희의 이혼을 허락하지 않았다. 김민희가 오민수와 불륜의 의심이 있다는 것이다. 법은 유책사유가 있는 배우자의 이혼소송은 기각했다. 복도에서 저벅저벅 구두소리가 들렸다. 하얀 와이셔츠에 격자무늬 넥타이를 맨 작달막한 남자가 다가왔다.
“오민수의 변호사시죠?”
“그런데요.”
내가 앉아서 그를 올려다보면서 대답했다.
“저는 조대기의 변호삽니다.”
그가 옆에 앉으면서 말했다. 오민수와 조대기 대신 나와 상대방 변호사가 대신 용병이 되어 출전한 것이다. 내가 상대방 변호사에게 허심탄회한 목소리로 사정했다.
“웬만하면 김민희를 자유롭게 해주시죠. 이미 부부 사이에 남은 건 소유욕과 집착 그리고 미움뿐이잖아요?”
“못 먹는 감 찔러나 보려고 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김민희가 오민수 피디라는 그 남자한테 너무 미쳐 있어요. 그래서 남편 조대기가 둘 사이를 떼려고 그러는 겁니다.”
“이렇게 조대기가 오민수를 해치려고 하면 두 사람이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요? 남편은 아내를 지금도 사랑한답니까?”
내가 물었다.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상대방 변호사가 말했다. 사랑이 증발했다는 의미였다.
“그럼 이 소송은 순전히 보복이거나 해코지 아닙니까?”
“남편 조대기는 그래야 속이 풀릴 것 같대요. 상대방에 대한 열등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확실한 증거를 잡느라고 오랫동안 애써 왔답니다.”
그때 뒤쪽의 회색페인트를 칠한 철문이 슬며시 열리더니 작달막한 남자가 나왔다. 노란 표찰을 가슴에 달고 있었다. 법원 서기였다. 그가 우리 쪽을 보면서 물었다.
“오민수 사건의 양쪽 변호사님들 다 나오셨어요?”
“그렇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그가 손에 들었던 서류판의 한 부분에 연필로 사선을 그으면서 말했다.
“들어오시죠.”
나와 조대기의 변호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준비절차실로 들어갔다. 삭막한 장방형의 방이었다. 중앙에 커다란 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양쪽 끝에 판사와 변호사들이 마주보고 앉게 되어 있었다. 그 옆면에 앉은 서기가 기록을 펼쳐 놓고 판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대기의 변호사가 내가 법원에 써 낸 답변서를 읽고 있었다. 나는 김민희에 대한 남편의 학대와 냉담을 세밀하게 글로 묘사했다. 김민희가 죽음과 정면으로 마주하기까지의 내면의 변화도 적나라하게 썼다. 한 여자를 죽음으로 내몰기까지의 범인은 오민수가 아니라 바로 남편 조대기라고 주장했다. 결국 핵심주제는 조대기에 대한 인간적인 비난이 주류를 이루었다.
때가 묻은 흰 벽에 걸린 둥근 시계의 초침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방은 조용했다. 상대방 변호사는 조대기가 내 글을 보고 미친 듯 분노했다고 전했다. 그는 철저한 비판도 또 다른 자기의 모습인 걸 알 수 없는 인간이었다. 대부분 소송당사자들이 그랬다. 도둑보고 절도범이라고 부르면 모두 싫어했다. 자기는 그냥 가져간 거지 절도범이 아니라고 했다. 사기범들은 자신들이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끝까지 강변했다. 강도들도 마찬가지였다. 강도범으로 불리는 걸 극히 싫어했다.
이윽고 한 줄기의 바람과 함께 단정하게 양복을 입은 판사가 들어왔다. 철사발 같은 머리에 고집스런 길쭉한 얼굴이었다. 그가 탁자 끝자리에 앉더니 들고 온 바인더 안에서 요약지 한 장을 꺼냈다. 빨간 가로줄이 쳐진 사절지였다. 판사들은 아무리 기록이 많아도 한 장의 종이에 압축해서 메모를 했다. 그가 말했다.
“판사로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상대방의 인격을 무참하게 짓밟는 건 옳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물고 늘어지고 공방을 벌이는 건 안 좋아 보입니다.”
조대기는 김민희에게 원색적인 험한 욕을 써서 법원에 제출했다. 행동 이상 말도 글도 거칠었다. 판사는 권투시합 전에 양 선수에게 반칙을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는 심판과 비슷했다. 판사가 메모지를 훑어 내려가면서 중얼거렸다.
“피고 오민수가 김민희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짐으로써 남편 조대기에게 정신적 고통을 가했다. 김민희의 동료기자인 박 미자는 그런 관계를 조장하고 오민수의 처 역시 남편의 부적절한 관계를 적극적으로 만류하지 않는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는 내용이네요.”
판사가 요약한 문제의 핵심이었다.
“그렇습니다.”
조대기의 변호사가 짧게 대답했다. 이번에는 판사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확인하듯 물었다.
“오민수 쪽은 불륜이 아니라고 부인하시는 거죠?”
저쪽의 주장과 이쪽의 주장을 몇 줄로 요약해 놓고 거기에 걸맞은 증거가 있느냐 없느냐가 판사의 요약지 빈칸에 기재되곤 했다. 그것에 의해 대여섯 줄의 판단 결과를 기록하는 게 판결문이었다. 정작 원인이 된 진실한 사랑 그리고 반대편에 있는 칙칙한 소유욕과 집착은 무시되곤 했다. 수많은 아름다운 소설과 영화도 법 앞에서는 간통이라는 하나의 회색 단어로 표현됐다. 판사는 그런 데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저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왜요?”
판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답을 짧게 해 줘야만 요약할 수 있었다.
“조대기가 보낸 답변서의 내용을 보면 아직도 아내를 사랑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아들을 봐서도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고 써 있습니다. 그런 착한 남편이라면 법정에서 아내의 남자에게 판사를 통해 이렇게 불륜을 확인해야 시원할까요?”
“그건 당사자들의 문제고 심리를 하려면 성교행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확정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판사는 내가 엉뚱한 소리를 한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사법연수원에서 우리들은 모두 한 가지만을 한 색깔로 생각하고 결론짓도록 배웠다. 하지만 20년간의 경험으로 보면 현실은 너무 여러 종류의 변화하는 빛깔로 구성되어 있었다. 법은 마치 파란 크레용 하나로 산을 온통 색칠하는 초등학생 같기도 했다. 내가 공들여 자세하게 묘사한 김민희의 자살과 모든 걸 내어던진 오민수의 구조작업은 판사의 요약지에 없었다. 춘향이를 구출하는 이몽룡의 행위를 판사보고 요약하라면 직권남용이라고 간단히 결론지을 것이다. 나의 주장은 진실한 사랑이 누구에게 있느냐였다. 그리고 법은 그 사랑에 한번쯤 진지한 시선을 던져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아내의 죽음을 예견하면서도 컴컴한 방안에서 아내의 이메일을 해킹하고 승리의 미소를 짓는 조대기는 법상 남편이지만 진짜 남편은 아니었다.
“판사님은 이 사건에서 핵심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판사에게 물었다.
“민법상 주어진 남편 조대기의 혼인법상의 권리죠.”
판사가 즉답을 했다.
“저는 좀 더 관점을 넓혀주셨으면 하고 희망합니다.”
내가 부탁했다. 판사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변호사님이 핵심이라고 다르게 생각하는 게 뭔데요?”
판사가 내게 되물었다.
“아내가 죽음에 이르는 순간 냉랭한 웃음을 흘리면서 증거를 확보하는 민법상 남편이 그렇게 보호대상일까요? 그런 남편이면 이미 법이 보호할 가치가 희박해진 거 아닙니까?”
내가 역질문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거야….”
판사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판사에게 물었다.
‘만약 당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한강 물에 뛰어내리려고 할 때 판사 당신은 법복을 벗을 각오를 하고 여자를 구할 용기가 없을 거야, 어때?’
판사가 내면으로 이렇게 대답하는 것 같았다.
‘어떻게 힘들게 차지한 자린데 한 여자 때문에 인생을 망쳐? 증거를 남긴 놈이 병신이지. 죽을 때 모른 척했거나 걸리지 말았어야 해. 변호사란 놈이 내가 바쁜 걸 알면서 자꾸 쓸데없는 소리만 하고 있어.’
더 말하면 판사의 자존심을 해칠 것 같았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판사가 이렇게 계속했다.
“이메일을 볼 때 육체적인 관계가 있었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그러나 사건의 내용이나 정황상으로 볼 때 오민수의 부적절한 행동이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어떻습니까? 오민수는 방송사 간부라는 사회적 위치도 있는데 적정선에서 돈을 내고 사건을 종료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판사는 대충 타협하고 좋게 넘어가라고 하고 있었다. 중간적 입장에서 권할 수 있는 일반적 방안이었다.
“지금 부적절한 행동이 원인이 됐다고 판사님이 단정하셨는데 아내를 매일 밤 잠 안 재우고 괴롭히고 아내가 죽어가는 순간 아내의 이메일을 해킹하는 남편의 행동은 더 부적절한 것 아닌가요?”
나는 판사의 관점을 이동시키려고 무진장 애쓰고 있었다.
“지금 이 사건의 논점을 아시면서 자꾸 그럽니까?”
간통이냐 아니냐, 증거가 있느냐 없느냐만을 따지는 판사는 짜증스런 어조로 쏘아붙였다. 판사가 계속했다.
“법은 형식적 혼인관계라도 그걸 먼저 보호하고 있습니다. 이메일을 볼 때 의심받을 만한 상황이 충분합니다. 어떻습니까? 판사인 제가 판결문에 두 사람 사이의 불륜관계를 굳이 써서 사회생활에 지장을 주는 게 좋겠어요? 아니면 적당한 선에서 위자료를 주고 타협하겠어요? 알아서 하십쇼. 또 계속 다른 소리를 하시면 김민희를 법정에 증인으로 불러 진술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건 더 좋지 않은 일이겠죠.”
판사는 강권하고 있었다.
(계속)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