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수도 전 제이유 회장. 연합뉴스 | ||
주 씨의 로비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지난해까지 제이유그룹 계열사 사외이사와 비상근 이사를 지낸 이 아무개 씨(56)와 주 씨 사이의 돈 거래 여부를 추적하다가 뜻밖의 놀랄 만한 사실을 발견했다.
이 씨는 ‘공무원고시’ 전문학원가에서 행정법 및 헌법학 강사로 명성을 날리던 인물. 주변에는 서울대 법학과 출신으로 박사과정까지 수료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주 씨는 이런 이 씨가 법조계 저명인사들과 친분이 두텁다고 믿고 계열사 간부로 영입한 뒤 로비 명목으로 자신 명의의 현금카드까지 내줬다. 이 씨는 제이유와 주 씨의 대한 경찰의 내사 및 조사 무마 명목으로 7억 원 가까이를 주 씨 카드에서 뽑아서 썼다.
그러나 이 씨는 주 씨의 카드에서 수십 차례 이상 인출한 돈을 고스란히 자신의 가족 재산 불리기에 사용했다. 주 씨가 방문판매법 위반 등의 혐의로 수사와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로비에 쓴 돈은 한 푼도 없었다. 게다가 서울대 법학과와 같은 대학원 박사 과정까지 수료했다는 이 씨의 학력은 모두 거짓으로 실제로는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였던 것.
업계에서는 이른바 ‘눈치 100단’, ‘처세술의 달인’으로 불리는 주 씨까지도 감쪽같이 속일 수 있었던 이 씨의 ‘내공’에 혀를 내두르고 있다. 과연 이 씨의 ‘화려한 경력’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검찰에 따르면 이 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나이가 들면서 줄곧 고시 공부를 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학벌에 제한이 없는 고시에만 20년 넘게 매달려 왔지만 정작 고시에 합격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이후 고시학원 주변을 전전하다 90년대 초부터 공무원시험 학원 강사로 전향했고 타고난 달변으로 수강생들을 끌어모으며 인지도를 높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때쯤 이 씨는 행정법, 헌법 등 법 관련 서적들도 펴내기 시작했다. 90년대 초 H 출판사를 통해 <행정법> 서적을 펴낸 이 씨는 이후에도 <민법총칙>, <부동산등기법>, 그리고 <신체계 헌법> <최신 헌법> 등 다수의 법 관련 서적 저자로 이름을 알렸다. 특히 <행정법>의 경우엔 10여 차례 이상 일부 개정판과 전면 개정판이 출시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서점가에 출시된 이 씨의 책을 확인한 결과, 책 마지막 페이지에는 이 씨가 서울 경복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학과와 연세대 행정대학원을 거쳐 서울대 법학과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까지 수료한 것으로 소개돼 있었다. 기자가 서울대 법과대학 동창회에 직접 문의한 결과, 법대 졸업생 명부에 이 씨의 이름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씨가 자신의 책 <행정법> 머리말에서 몇몇 법조인 이름을 언급한 부분도 눈에 띈다. 이 씨가 지난 91년 10월 초판 발행을 앞두고 쓴 이 글에는 K 변호사와 P 검사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는 문구가 나오는데 이 가운데 P라는 검사의 이름은 현재 검사나 판사, 변호사 등 법조인으로 등록되지 않은 가공의 인물로 확인됐다.
검찰에 따르면 이 씨가 제이유와 관계를 맺은 건 지난 2001년 9월이다. 제이유 계열사 대표이자 주 씨의 조카인 H 씨가 법조계 저명인사라며 이 씨를 주 씨에게 소개한 것.
주 씨는 그해 10월 이 씨를 이 계열사 이사로 취임시켰고 이 씨는 지난해까지 사외이사와 비상근 이사직을 지냈다. 이 계열사의 지난 2005년 상반기 분기보고서에도 회사 사외이사인 이 씨의 경력란에 ‘서울대 법대 졸’이라고 기재돼 있다.
주 씨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얻은 이 씨는 계열사 이사진 중 유일하게 보수를 받았으며 주 씨와 주 씨 비서실장 명의로 된 2장의 현금카드를 받은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지난해 4월까지 카드에서 빼낸 것으로 밝혀진 액수는 6억 2700만 원. 이와는 별도로 이 씨는 경찰의 내사 및 공정위의 조사 무마 명목으로 제이 유 측에서 7000만 원을 더 받아냈다. 검찰은 이 씨가 받아낸 돈 가운데 4억 원을 정기예금에 넣고 나머지는 캐나다에 있는 두 자녀들의 유학자금과 부인의 사업자금으로 사용한 것으로 전했다.
이 씨 측 변호인은 이 씨의 학력, 주 씨로부터 받은 돈의 액수와 성격 등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검찰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부분에 대해 변호인이 구체적으로 확인해줄 이유는 없다”며 언급을 피했다. 뒤늦게 이 씨의 실체를 전해듣게 된 주 씨는 과연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유재영 기자 elegan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