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퍼 엘리트’ 신정아 교수의 학력 위조 사실이 드러나면서 미술계가 충격에 빠졌다. 사진은 지난 4일 광주 비엔날레 공동 예술감독으로 선임됐던 당시. 연합뉴스 | ||
사실 신 씨는 동아시아 최대의 순수미술 행사로 평가받아온 광주비엔날레의 예술감독으로 선정되기 전부터 화려한 프로필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온 인물이다. 미국의 유명 대학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슈퍼엘리트’로 귀국한 신 씨는 국내 미술계에서도 ‘혜성처럼 나타난 젊은 실력자’로 통했다. 신 씨는 그동안 자신이 서울대 미대 동양학과를 중퇴한 뒤 1994년 미국 캔자스 대학에서 서양화와 판화를 복수전공해 학사학위(BFA)를, 1995년에는 경영학 석사(MBA)학위를, 그리고 2005년에는 예일대에서 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소개해왔다.
신 씨는 휘황찬란한 학위를 발판으로 금호미술관 수석큐레이터, 성곡미술관 학예연구실 실장, 동국대 조교수 등 요직을 맡으며 미술계 역사상 유례없는 ‘수직 상승’을 거듭해왔다.
그러나 그간 알려져 있던 신 씨의 학력이 대부분 거짓이라는 사실이 하나씩 나타나면서 신 씨는 날개 없이 추락하는 신세가 됐다. 그의 석·박사 학위는 물론이고 서울대 중퇴라는 학력조차 거짓으로 드러난 것이다.
신 씨를 조교수로 임용했던 동국대는 지난 11일 기자회견을 통해 신 씨의 학위가 허위임을 공식 확인했다고 밝혔다. 신 씨는 캔자스 대학에서 1992년 봄 학기부터 1996년 가을학기까지 5년을 다니긴 했지만 3학년을 끝으로 학부를 그만뒀으며 그간 신 씨의 프로필 한켠을 장식했던 서울대, 캔자스주립대 경영대학원, 예일대에는 입학한 사실조차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지금까지 확인될 수 있는 그녀의 최종 학력은 캔자스대 중퇴인 셈이다.
신 씨의 학력위조 의혹은 2005년 9월 동국대 교수 임용 당시부터 미술계 인사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나돌던 얘기였다. 당시 신 씨의 ‘위조 학력’ 의혹이 일게 된 것은 예일대 출신 중 그 누구도 예일대에서 그녀를 본 적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부터였다.
잘나가는 ‘미술계 신데렐라’를 겨냥한 음해라는 우호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신 씨의 학위를 둘러싼 일각의 의혹은 그 뒤로도 좀처럼 끊이지 않았다. 화려한 학력과 경력을 자랑하던 신 씨가 역대 최연소로 광주비엔날레 공동 감독에 선정됐다는 소식에 상당수 미술계 인사들이 의아한 반응을 보였던 것도 그간 신 씨를 둘러싸온 석연치 않은 의혹들과도 무관치 않았다.
일부에서는 ‘신 씨가 윗사람들에게 너무 잘했다’든가 ‘재계 인사의 입김이 작용해 왔다’든가 하는 소리도 들려온다. 그러나 실제로 가정환경을 비롯해 신 씨에 대한 것은 하나도 확인된 것이 없다. 신씨 부모와 관련해서도 아버지가 재계인사라느니 전직 대학총장이라느니 주유소경영을 하는 사람이니 하는 소문만 무성할 뿐 확인된 것은 없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시 매몰됐었다는 부분조차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12일 비밀리 귀국한 것으로 알려진 신 씨는 한 언론과의 전화통화에서 모든 의혹을 전면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을 뿐 아직까지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는 상태다.
2005년 5월 당시 한 언론은 ‘국내 큐레이터로는 미술 관련 외국박사 1호’ ‘예일대의 첫 한국인 서양미술사 박사’라는 화려한 타이틀 아래 신 씨 인터뷰 기사를 내보냈다. 당시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그의 박사학위를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일 정도다.
이 인터뷰에서 신 씨는 “1998년부터 박사과정을 준비하면서 어려운 일도 많았다. 미국을 왔다갔다 하는 항공료는 논외로 치더라도 논문작성과 전시기획이 겹치는 때에는 몸이 두 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렇게 힘들게 박사학위를 따야 하는 것에 대한 회의감에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며 그동안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신 씨는 또 “미술관 근무경력을 인정받아 일부 과목을 면제받기도 했지만 현지 수업에 빠지지 않고 참가했으며 논문은 최근 1년간 밤잠을 자지 않고 이메일을 통해 첨삭을 받는 방식으로 지도교수의 지도를 받았다”는 등 박사학위를 따기까지의 힘겨운 노력을 구체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뒤늦게 확인된 신 씨의 학력 문제와 관련해 광주비엔날레 조직위원회는 신 씨의 총감독 선임을 철회하겠다고 밝혔지만 미술계는 충격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나아가 교수 임용과 행사 책임자 선정 과정에서 특혜 및 비리가 자행돼왔을 가능성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동국대 정책위원회는 최근 대학 홈페이지에 사과의 글을 게재하고 이번 사태의 진상을 철저히 조사해 인사검증시스템을 재정비하는 계기로 삼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현재 미술계와 학계의 눈과 귀는 온통 신 씨의 입에 집중되어 있다. 신 씨 본인의 속 시원한 해명이 있어야만 이번 사태의 핵심 즉 동국대 측에서 한때 신 씨를 ‘비호’한 이유와 임용절차 당시 동국대로 접수된 예일대 공문의 실체, 석연치 않은 비엔날레 감독 발탁 과정 등에 대한 의혹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