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정원 내에 이명박 TF팀이 과연 존재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한나라당은 김승규 전 국정원장과 이상업 전 국내담당 2차장(사진)을 검찰에 수사의뢰했다. | ||
과연 국정원 내에 ‘이명박 TF’ 팀은 존재했을까. 그리고 ‘이명박 X파일’의 실체는 있는 것일까. 국정원 주변에서는 전자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을, 후자에 대해서는 가능성이 크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의 ‘TF’ 팀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이번 파문이 불거진 이후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된 바에 따르면 TF 팀이 만들어진 시기는 2004년 5월이라고 한다. 2차장 산하의 국내부서국 현안지원과 소속이었다. 당시는 고영구 원장과 박정삼 2차장 체제였다.
TF 팀은 복수로 운용됐는데 주로 고위공직자 비리 및 부패 척결을 위한 조사와 ‘제이유 사건’이나 ‘바다이야기’ 파문 등과 같이 민생경제를 침해하는 주요 사건에 대한 비리 등을 사안별로 다룬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까지는 국정원이나 한나라당이나 주장하는 바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확연히 달라진다.
한나라당은 “국정원이 2005년부터 기존의 2개 TF 팀을 8개 팀으로 확대 개편했고, 2006년에는 소위 ‘이명박 TF’ 팀을 운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주장에 따르면 당초 고위공직자와 정치인의 비리를 조사하기 위한 목적으로 3~4명에 의해 2개의 TF 팀이 운용되다가 이상업 2차장이 취임한 이후인 2005년 6월 2개 과에 각 4개 팀씩 총 8개 팀으로 확대했다는 것. 이재오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국정원 내 국내정치 담당 책임자인 L 씨 산하에 이명박 TF 팀이 구성됐고, 그 활동기간은 지난해 3월부터 9월까지였다”고 주장했다. 당시는 김승규 원장과 이상업 2차장 체제였다. 따라서 한나라당은 검찰에 김 전 원장과 이 전 차장을 수사의뢰했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소위 이명박 TF 팀에서 파고든 것은 크게 두 갈래였다. 처음에는 이 전 차장의 지시대로 청계천 사업 등 서울시장 재임 때의 비리 캐기였고, 그것에서 더 나아가서 이 전 시장과 그 친인척의 부동산을 뒤지기 시작한 것 같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이 전 시장 측 부동산 자료의 경우 부동산 가격 폭등의 원인인 기획부동산 투기 활동 조사를 위해 만들어진 TF 팀에서 제보를 입수해서 자료를 수집하던 도중 특별한 혐의가 없어 중단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즉 TF 팀 운용 과정에서 이 전 시장에 대한 제보도 접수됐을 수는 있지만 따로 ‘이명박 TF’ 팀을 운용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여기서 주목받는 인물은 이 전 차장이다. 그는 참여정부의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냈고, 이후 집권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당의장을 지낼 만큼 현 정권의 실세로 알려진 문희상 의원의 매제다.
경남 창원 출신인 이 전 차장은 73년 행정고시 합격 이후 경찰계에 입문했다. 그는 참여정부의 첫 경찰청장 후보가 유력한 것으로 하마평에 오르내렸으나 경찰대학장에 오르는 것에 그쳤다. 소식통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당시 인사추천위원회에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에게 올린 보고서에는 ‘경찰총장 1순위 최기문, 2순위 이상업’로 기재돼 있었다는 것. 이를 안 이 전 차장이 크게 실망했던 것으로 알려질 정도로 그는 정치적 야심도 제법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권력 실세의 친인척이라는 점이 오히려 역차별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아무튼 그는 최 전 청장이 2004년 12월 조기 사퇴 의사를 밝히자 또 다시 후임 청장 후보로 오르내렸으나 같은 차관급인 국정원 2차장으로 영전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이미 이 씨는 2004년 초부터 경찰대학장을 끝으로 옷을 벗고 국정원으로 옮길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당시 이 전 차장의 국정원 국내담당 차장 임명은 정가에 예사롭지 않은 일로 다가왔다. 경찰 출신이라는 점과 정권 실세의 친인척이라는 점 때문에 야당 일각에선 ‘정치 사찰’의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왔다.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16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005년 청계천 복원 사업과 관련, 이명박 후보 홍보 기사가 많이 나오자 이 전 차장이 ‘청계천 홍보하는 데 시 예산을 과다하게 쓴다. 이런 걸 왜 조사하지 않느냐’고 자주 화를 냈다. 정치적 중립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었으나 차장이 관심을 갖는 사업이라 정보 수집 팀을 가동해야 했다. 이 전 차장은 (차장으로) 오게 된 배경부터 정치권과 연관이 있다 보니 (정치권에) 좀 신경을 썼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 한나라당 의원들과 뉴라이트전국연합 회원들의 ‘국정원 공작정치’ 규탄 시위 모습. 국회사진기자단 | ||
이에 대해 이 전 차장은 이번 사안이 불거진 지난 13일 일부 언론의 질문에 “이명박 TF 팀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고, 관심 사항도 아니었다. 허무맹랑한 정치공세”라고 일축한 것을 끝으로 전혀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있다. 그는 이후 찾아오는 기자들을 피해 서초동 집과 역삼동 개인사무실을 떠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의 주장에 따르면 이 전 차장이 본격적으로 TF 팀을 독려하던 시기는 김승규 전 원장 시절이다. 그렇다면 김 전 원장은 TF 팀의 정보 수집 활동을 구체적으로 보고받았을까. 김 전 원장 또한 파문이 불거진 이후 무겁게 침묵하고 있다. “재임 기간 중 있었던 일은 밝힐 수 없다”는 것이 그의 기본 입장이다. 이 전 차장의 전임 국내담당 차장으로 처음 TF 팀을 만들었다고 알려진 박정삼 그랜드코리아레저 사장의 경우 “20일 현재 해외 출장 중”이라고 회사 비서진이 알려왔다.
그런데 국정원 주변에서는 김 전 원장과 이 전 차장이 그렇게 호흡이 잘 맞는 편은 아니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TF 팀 운용의 세밀한 부분에 대해 김 전 원장이 잘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실제 김 전 원장은 지난해 11월 퇴임 무렵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후임 원장에 내부의 일부 코드인사가 뛴다.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들이 임명되면 안 된다”고 일침을 가한 바 있다. 그가 언급한 ‘내부 인사’ 가운데 한 명이 이 전 차장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또 다른 관심의 초점은 과연 국정원 내에 ‘이명박 X파일’이 존재하느냐 하는 문제다. 이에 대해 몇몇 국정원 출신 관계자들은 “이명박 TF 팀이 실제 운용됐을지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지만 X파일은 존재할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국가 정보기관의 고위 간부 출신인 A 씨는 “이 전 시장은 지금 당장 대통령 후보라서가 아니라 이미 80년대 대기업의 중역 시절부터 정보기관의 존안자료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존안자료란 국정원 내의 영구 보관 문서를 말하는 것으로 정부문서와는 달리 국정원의 기밀문서는 정부문서보관소에 이관하지 않고 국정원에서 자체 관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특정인에 대한 X파일은 이 존안자료를 통해 작성된다는 것. 그는 “국정원장이 새로 임명되면 전직 원장 측이 새 원장의 존안자료 파일을 외부로 뺀다. 못 보게 하기 위해서다. 그가 물러나면 다시 들여온다. 자신에 대한 존안자료는 대통령도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존안자료는 크게 인물별 사건별로 분류되는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X파일이 바로 인물 존안자료다. 사회의 저명인사들이 모두 대상인 이 인물카드에는 기본적인 개인 프로필 외에도 가족 사항, 범죄경력, 재산형성 과정, 인물평까지 들어가 있다고 한다. 또한 여성 문제와 같은 다소 낯 뜨거운 사생활도 포함된다고 한다. 실제 과거 중앙정보부에서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최태민 씨 파일’에는 여성들과의 관계가 구체적이고 노골적으로 담겨 있기도 했다. 대개 첩보 수집 과정에서 모인 정보들 가운데 보관의 필요성이 판단되는 주요 정보들은 바로 이 존안자료를 만드는 부서로 넘어간다고 한다.
A 씨는 “존안자료의 인물파일이 꼭 정치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기업인 학계 언론계 예술계까지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저명인사라면 대부분 해당되는데 재벌기업 회장을 지냈고 국회의원에 서울시장까지 지낸 양반의 존안자료가 없다면 오히려 그런 한심한 정보기관이 무슨 존재 가치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문제는 그런 자료들을 정치적인 목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빼내서 유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비단 이 전 시장뿐이겠나. 박근혜 전 대표, 손학규 전 지사, 정동영 전 의장까지도 다 포함된다. 그들의 파일에 불특정 명칭을 가리키는 ‘X’를 갖다 붙이면 다 ‘X파일’이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정원 출신의 B 씨는 “국정원 내부 직제상 국내담당 차장이 개인적인 관심이나 특정 목적으로 별도의 요원을 차출해서 과거 미림 팀과 같은 식으로 특정인이나 특정 사안에 대해 조사를 해보라고 지시할 수는 있지만 공식적인 직제하에서 이름까지 ‘이명박 TF’ 팀 식으로 박아놓고 움직일 수는 없다. 다만 믿을 만한 부하 한두 명에게 은밀히 ‘이 전 시장을 주목해서 살피라’는 지시를 했을 수는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일부에서는 국정원의 전산화 작업이 최근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미 지난 70년대부터 내부적으로 전산화 작업이 이뤄졌다. 그런 전산화 작업이 아니라면 YS나 DJ의 자료는 한 트럭분도 모자랄 것이다. 이 자료들은 파일에 들어 있다고 해서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전 시장에 대해서 최근 나오는 내용들이 만약 국정원에서 나온 게 맞다면 이는 이미 축적된 존안자료에 모두 있는 내용이라기보다는 특정 목적으로 새롭게 수집한 최신 정보일 가능성이 많다”는 견해를 밝혔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