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희 씨는 자신의 주소지인 이촌동과 남편의 주소지인 회기동 집(오른쪽)에 얼씬도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왼쪽은 1992년 김 씨의 모습. | ||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당사자인 김 씨는 이후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 국정원 측 역시 “김 씨는 현재 국내에 있다”는 말만 했을 뿐, 다른 어떤 추가 해명이나 해외 보도에 대한 반박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하루 만에 단순 해프닝으로 끝나버린 ‘김현희 망명설’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위원장 송기인)는 지난 7월 11일 ‘KAL 858기 폭파 사건’에 대한 조사 개시를 발표했다. 진실화해위 측은 “국정원 과거사위가 이 사건을 조사하면서 핵심인물인 김현희 씨와 안기부 간부들을 조사에서 제외하는 바람에 의혹을 완전히 해소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김 씨의 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과 함께 김 씨에 대한 조사 의지를 분명히 한 셈이다.
그렇다면 진실화해위 측은 김 씨의 현재 근황을 파악하고 있을까. 진실화해위의 KAL 858기 폭파 사건 담당자는 “조사 개시만 결정했을 뿐 아직 구체적인 활동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김 씨의 소재지 역시 확인하지 못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망명설에 대한 입장에 대해서도 “국정원 측이 아니라고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이상을 확인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당초 ‘망명설’을 최초 보도했던 <주간문춘> 측을 접촉해봤다. 담당 기자는 흥분한 목소리로 국내 언론의 ‘망명설 해프닝’ 보도에 대해 섭섭함을 드러냈다. 그는 “모든 한국의 언론들이 별도의 확인 취재도 거치지 않은 채 국정원 측의 입장만 듣고는 내 기사를 오보로 단정지었다”고 불쾌해 했다. 그는 “내 기사가 오보로 판정 나는 것은 기자로서 평생의 치욕이다. 당시 내가 접촉한 취재원에 대한 믿음은 확고하며 그 점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도 현재 추가 취재 중이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미국 측 관계자뿐만 아니라 국내 정보기관 주변의 관계자들에게도 직접 사실 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것. 그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몇 가지의 추가된 사실을 귀띔하기도 했다.
그는 “내가 (취재원으로부터) 정확히 들은 워딩 그대로는 ‘가족과 함께’였다. 그 가족이 누구누구인지, 또 몇 명인지는 정확히 말하지 않았다”면서 “장소는 워싱턴 근처를 암시했다”고 밝혔다. 그는 “김 씨는 이미 몇 년 전부터 해외 망명을 꾸준히 요청했으며 최근에는 자신이 도저히 국내에서는 살 수가 없다는 점을 거의 최후통첩 식으로 통보했기에 (국정원이) 더 이상 김 씨를 그대로 방치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실제 전직 국내 정보기관의 관계자는 얼마 전 김 씨의 신변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언론사와 과거사위에서 너무 김 씨를 압박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우려를 표하면서 “국정원이 현재 가장 두려워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김 씨가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취하는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그는 “김 씨를 살려둔 이유는 KAL 858기의 유일한 산 증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신변에 만약에 어떤 심각한 이상이라도 생긴다면 가뜩이나 가라앉지 않고 있는 의혹이 더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의 말대로라면 현재 국정원으로서는 김 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못하도록 최대한 달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김 씨의 근황을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는 루트는 아주 한정돼 있다. 유일한 친인척은 경주의 시댁뿐이다. 그나마 2003년 10월 시아버지가 작고한 이후로는 발걸음을 뚝 끊었다는 전언이다. 김 씨와 그녀의 남편 주소지로 돼 있던 서울 이촌동과 회기동 집 역시 김 씨 가족은 얼씬도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1월 <일요신문> 취재진이 방문했을 때만 해도 김 씨 부부의 이름으로 된 우편물이 배달되는 등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일요신문> 715호 참조).
김 씨가 완전히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잠적하기 전까지 국내에서 그나마 비교적 자주 왕래하며 친하게 지냈던 변호사 A 씨 역시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김 씨와 만나기는커녕 소식조차 못 들은 지 꽤 오래 됐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법상 인명을 115명이나 살상시킨 폭파범을 미국 정부에서 망명자로 받아들일 수 있겠나”라며 망명설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는 “현재 그녀의 거취를 알고 있는 것은 국정원뿐일 것”이라며 “내가 알기론 큰애가 이제 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됐는데 아마 그 때문이라도 김 씨는 더욱 힘들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 김 씨의 자녀들은 아들이 2000년생이고, 딸은 2002년생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김 씨의 아들은 올해 한국 나이로 8세가 되며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나이인 셈이다. 전직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내년이면 김 씨의 아들이 초등학교 입학 시기가 되기 때문에 김 씨가 갖는 부담감은 더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김 씨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일부 언론사에서는 김 씨 아들을 찾아 해당 학교에 갈 수도 있다. 김 씨 부부로서는 가장 염려되는 부분일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실제 김 씨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 과정을 일부 언론사에서 은밀히 추적했으나 아직까지 입학 사실을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이 김 씨 가족의 망명설을 더 부추기기도 했다. 국정원 과거사위의 한 관계자는 “김 씨 부부는 우리의 면담 요구에 강력히 반발하면서 ‘정 이렇게 나오면 우리 가족은 모두 자폭할 수밖에 없다’는 말까지 했다”고 기자에게 밝히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지켜보는 눈이 많은 만큼 김 씨 부부가 직접 외국으로 나가는 것보다는 최소한 자녀들만이라도 외국에서 공부시키기 위해 유학 보냈을 가능성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또 “김 씨 가족 입장에서는 국내에서 지내기가 정말 끔찍할 정도로 싫을 수도 있다. 누가 보더라도 국정원 측에게 외국에 나가서 조용히 살게 해달라고 요구할 법한 일이다. 그런 요구가 망명설로 와전된 것일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결국 시선은 진실화해위의 향후 조사활동에 맞춰질 수밖에 없게 됐다. 비록 조사 개시 결정 이후 한 달이 다 되어 가도록 아직 시작조차 못하고 있다는 진실화해위이지만 김 씨에 대한 조사 의지에 따라서 망명설의 실체는 어느 정도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