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이름난 요정의 주인들은 하나같이 뛰어난 경영수완을 지니고 있는 여장부였다고 한다. 방 회장은 1975년 처음으로 요정이란 곳을 구경하게 됐는데 그곳이 청운각이었다. 청운각의 ‘아마이’는 함경도 출신으로 뛰어난 서비스로 손님들을 잘 다루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당시 요정 입장에서는 돈은 별로 없으면서 험하게 노는 기자들이 탐탁한 손님이 아니었던지라 ‘수습기생’들을 기자들 술자리에 들여보내곤 했는데 이에 기자들이 나름의 꾀를 냈다고 한다. 방 회장 일행은 방에 촛불만 켜놓고 ‘아이고 아이고’ 곡을 했는데 그러면 옆방 손님들이 재수 없다고 나가버렸고 방 회장이 있는 방에도 일급기생들이 들어왔다는 것.
황해도 출신의 마담 김복희가 있던 대하에는 같은 황해도 출신인 김형욱 중정부장이 자주 드나들었다고 한다. 5·16 후 민정 이양을 앞두고 ‘혁명’ 주체인 김형욱, 이후락 등이 언론사 발행인들과 이곳에서 모인 적이 있었는데 분위기가 상당히 어색했다고 한다. 이때 김 마담은 ‘혁명이 무엇인가 했더니 대접받는 사람들은 그냥 남아 있는데 술 사는 사람이 바뀐 것이군요’라는 재치 있는 말로 분위기를 바꾸는 센스를 보이기도 했다는 것.
기생들의 응원 4파전에 얽힌 얘기도 재미있다. 1958년 송인상 씨가 재무장관에 취임하면서 1년에 한 번씩 경제부처 출입기자단 축구 대항전을 열었는데 이날이 오면 중앙청 광장에선 때 아닌 기생들의 열띤 응원전이 펼쳐졌다고 한다. 청운각 기생 20여 명이 몰려와 재무부팀을 응원하자 상공부는 청운각 대하의 기생들을 동원했으며 농림부는 은벽장, 부흥부는 장원에서 기생들이 나와 자연스레 응원 4파전이 벌어졌다는 것. 당시 청운각의 키 큰 기생이 재무부팀 골키퍼로 기용돼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는데 대회가 끝나면 장관들이 주는 격려금으로 각 부처 단골 요정으로 몰려가곤 했다고 한다.
또 기자들은 돈은 없어도 의리가 있어 기생들의 어려운 사정을 잘 도와줬는데 선운각에서 나온 기생들이 분점을 낼 때 후원금을 모아 도와주기도 했던, 낭만이 있던 시절이었다는 게 방 회장의 술회다. 이런 인연으로 후에 50대를 넘긴 왕년의 기생들과 재무부 출입기자 출신 모임인 재우회 멤버들이 친목회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만나기도 했다고 한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