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범죄는 한 개인의 삶을 망가뜨리고 가족이나 가정마저 파괴한다는 점에서 지극히 반인륜적인 범죄라고 할 수 있다. 과연 누가 왜 성폭력범죄를 저지르는 걸까. 혹시 우리 사회의 성폭력범죄를 줄일 만한 묘안은 없는 걸까. 이와 관련해 최근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펴낸 ‘성폭력범죄의 유형과 재범 억제 방향 보고서’는 다시 한 번 되짚어볼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보고서가 성폭력범죄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들을 상대로 한 최초의 조사내용을 담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범죄 유형을 다양하게 분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1997년부터 2006년까지 지난 9년 동안 인구 10만 명당 성폭력범죄 발생 건수는 15.1에서 27.7로 83.4%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1997년부터 성폭력범죄가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다가 2000년에는 1만 건을 넘어섰다고 한다. 2002년에는 9435건으로 일시 감소했으나 2003년 이후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 2006년에는 1만 3573건에 이르고 있다는 것.
특히 이 보고서는 성폭력범죄의 유형을 면밀히 분석해 성폭력이 가장 자주 발생하는 계절, 시간, 장소 등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지적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성폭력범죄는 ‘늦은 가을밤 토요일, 집 안 또는 유흥업소에서 20~30대에 의해’ 일어난 경우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의 특징은 ‘성폭력 범죄를 가해자를 중심으로 분석했다’는 사실이다. 연구를 맡은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전영실 범죄동향연구실장은 “이번 성폭력범죄에 연구결과는 검찰청에서 보관 중인 수사기록 1014건과 성폭력범죄로 보호관찰을 받거나 교도소에 수감 중인 65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동안 성폭력 피해자에 관한 조사는 몇 번 있었으나 가해자에 대한 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성폭력범죄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계절은 과연 언제일까.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노출이 심한 여름일 것 같다. 그런데 결과는 예상과 다르다. 2005년까지는 여름에 가장 많은 성폭력범죄가 일어났으나 2006년에는 가을(29.3%)에 가장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여름(26.3%), 봄(25.2%) 순이었고 겨울(18.8%)에 가장 적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2001년부터 ‘여름’ 발생률이 감소하고 ‘가을’ 발생률은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의 범죄 연구결과에 따르면 범죄 발생은 요일에 따라서 차이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왔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일주일간의 생활주기에 따라 행동패턴이 다르기 때문으로 풀이되는데 성폭력범죄의 양상은 이와 사뭇 다르다. 즉 요일별로 뚜렷한 차이가 없는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는 2006년 기준으로 토요일(14.5%)에 가장 많이 성폭력범죄가 일어난 것으로 나타났는데 가장 적은 목요일(13.9%)과 빈도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반면 일반적인 범죄의 경우는 금요일과 토요일에 가장 많고 일요일과 월요일에 가장 적다고 한다.
성폭력범죄의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가장 조심해야 할 때는 밤(오후 8시~오전 4시)이다. 지난 10년 동안의 추이를 살펴보면 밤(33~40%)에 성폭력범죄가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오전(18~21%), 낮(12~15%) 순이었다. 반면 가장 적게 발생하는 시간대는 아침(2~7%)이었다.
그렇다면 성폭력범죄는 어디서 가장 많이 발생할까. 2006년 기준으로 살펴보면 집 안(27.7%)이다. 이어 숙박 및 유흥업소(23.6%), 노상(16.7%), 교통수단(8.2%), 사무실(2.6%) 순으로 조사됐다. 성폭력범죄가 ‘집 안’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것은 면식범 특히 가까운 사람에 의해 저질러지는 성폭력범죄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성폭력범죄 발생 장소로 ‘교통수단’의 비율이 해마다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1997년에 3.5%였는데 매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전영실 실장은 “자가용, 지하철, 택시, 버스 등 교통수단 내에서의 범죄 발생률이 높아지는 것은 성폭력범죄의 특성 중에 하나인데 특히 자가용 보급률의 증가가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이 같은 현상을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이번 보고서는 성폭력범죄 가해자의 특성도 분석하고 있다. 먼저 연령으로 따지면 가해자 중에 20대와 30대가 가장 많았고 그 뒤를 이어 40대, 10대 순으로 나타났다. 또 지난 10년간에 변화 추이를 보면 성폭력범죄자의 평균연령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회가 점차 고령화되고 있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아동대상 성폭력의 경우 가해자가 60대 이상인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해자의 교육수준은 고등학교 졸업이 가장 많았는데 10년 동안의 증가폭은 대학교 졸업자가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가해자 중 대졸자의 비율이 1997년에는 12.2%였다가 2006년에는 20.9%로 거의 두 배 가까이 상승했다. 반면 ‘고졸자’ 비율은 10년 동안 41.4%에서 34.6%로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범죄자의 경우 ‘고졸자’의 비율이 10년 동안 큰 변동이 없었던 데에 비추어보면 성폭력범죄자의 학력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가해자의 직업은 미취업이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했으며 두 번째로 많은 직업군은 판매직(16~10%), 세 번째가 사무직(11~15%) 순이었다. 또 가해자의 반 이상이 기혼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성폭력범죄의 범행동기를 보면 대다수가 ‘성적 욕구의 충족’이라고 응답했다. 이러한 범행 동기는 청소년과 성인이 차이를 보이는데 청소년들은 ‘호기심’에서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응답한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은 반면 성인들은 ‘술에 취해서’라는 경우가 많았다. 또 청소년 성범죄자들은 공범이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 특징이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는 어떨까. 아동성폭력의 경우 가해자가 낯선 사람인 경우가 가장 많았으나 동네사람 등 안면이 있는 사람도 상대적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또 청소년 성범죄자들의 경우는 피해자가 친구, 동료인 경우가 가장 많았으며 ‘온라인으로 알게 된 사이’가 다음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반면 성인 성범죄자들은 모르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경우가 가장 많았으며 ‘범행 몇 시간 전에 알게 된 사이’, ‘온라인으로 알게 된 사이’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성폭력범죄자들 중 상당수가 인터넷을 통해 범행 대상자를 물색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보고서를 보면 지난 10년 간 성폭력범죄가 꾸준히 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정부는 지난 10년간 강도 높은 성폭력범죄 대응책을 내놓았다. 성폭력특별법과 청소년성보호법의 제정이나 청소년 대상 성범죄자 신상공개제도의 도입 등의 그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노력도 성폭력범죄를 줄이지는 못한 셈이 되고 말았다.
류인홍 기자 ledh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