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이브로 무상체험 이벤트 광고 | ||
지난 3월 10일 이서현 씨(가명·여·25·대학생)는 생각지도 못한 ‘독촉장’을 받고 충격을 받았다. “고객님께서 이용 중인 상품 요금 ‘6만 1730원’이 미납됐다”며 “여러 차례 알려 드렸으나(사실은 처음 받은 독촉장이라고 함) 현재까지 납부되지 않아 다시 한 번 알려드린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미납요금을 납부하지 않을 경우에는 모든 통신회사 서비스의 신규가입 불가와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신용불량자 조치)는 살벌한 문구도 들어있었다.
발신자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 KT였다. 청구된 요금은 이 씨가 지난해 9월 신청했던 ‘KT 와이브로(이하 와이브로)’ 서비스 이용료였다. ‘와이브로’는 노트북 USB에 소형단말기를 꽂아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다. 이 씨가 이 와이브로 서비스에 가입했던 것은 지난해 9월 자신의 학교 앞에서 열린 이벤트를 통해서였다.
당시 이벤트 조건은 와이브로 서비스를 계약할 경우 16만~18만 원짜리 단말기를 무상으로 지급하고 이용요금도 3개월 동안 무료로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이 씨는 와이브로 계약을 할 때 이벤트 업체로부터 “3개월 뒤 KT 측에서 전화가 올 것인데 연장을 요구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해지가 된다”고 공지를 받았다. 그런데 그동안 전화도 한번 없던 KT가 난데없이 ‘계속 납부하지 않으면 신용불량이 될 수도 있다’는 살벌한 독촉장을 보내온 것.
또 다른 이벤트 행사에서 와이브로를 개통했던 김재훈 씨(가명·남·30·대학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3개월 무료 사용 후 자동해지’ 조건으로 무상기간 동안만 와이브로 서비스를 이용하고 직접 해지까지 했던 김 씨에게 지난 3월 초 미납 요금 독촉장이 온 것. 김 씨에게 청구된 요금은 가입한 달인 12월치를 제외한 1~2월치를 합산한 액수였다. 애초에 조건은 ‘3개월 무료사용’이었지만 1개월밖에 무료가 적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들은 독촉장을 받고 당연히 KT 측에 이의를 제기하며 따졌다. 그러나 KT 측에서는 “우리는 모르는 일이고 책임이 없다”며 “(와이브로를 개통한) 대리점에서 알아서 한 일이다”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KT라는 대기업 이름을 믿고 서비스에 가입했던 이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KT는 왜 책임이 없다고 하는 것일까.
▲ KT 와이브로 사용요금 독촉장. | ||
이 관계자는 또 “당시엔 이벤트를 대행하는 KT 위탁점이나 대리점에 한 건당 6만 원의 법정 보조금을 지불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같은 행사를 벌였다면 (개통점들이) 자체적으로 벌였을 것”이라며 “우리는 3개월 무료 이벤트를 전혀 알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KT 측의 이벤트를 주최했던 업체들은 어떤 입장일까. 이들도 책임을 ‘아래’ 쪽에 떠넘기기는 마찬가지였다. 와이브로 3개월 무료 이벤트를 벌여 상당히 많은 피해자를 낳은 한 업체의 관계자는 “요새 자동해지가 어딨냐. 그건 알아서 해지했어야지 우리보고 어쩌라는 것이냐”며 오히려 목청을 높인 뒤 이번 피해는 전부 “판매자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판매자는 현재 어딘가로 ‘잠행’을 한 상태.
이에 대해 해당 위탁업체의 한 인사는 “우리도 판매자를 고발했다. 앞으로 이 사람을 잡게 되면 소비자들에게 피해보상을 (판매자가 직접) 해주도록 하겠다”며 “만약 판매자를 못 잡을 경우엔 KT에서 부담하지 않는 이상 우리도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렇게 되면 소비자가 직접 그 판매자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피해자들의 난처한 상황을 전하자 KT 측에서는 “3개월 무료 이벤트는 우리가 전혀 모르는 일이었고 본사 차원에서 이에 대한 지침도 내려와 있지 않다”며 “불만사례가 많이 접수됐으면 우리가 해결책을 강구했을 것인데 우리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런 피해사례가 많지는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자가 확인해본 결과 KT 측의 해명은 사실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KT는 지난해 12월 와이브로 피해와 관련해 집단으로 항의를 받은 적도 있었다. 서울 H 대학교 학생 130여 명이 와이브로 사용 요금 납부 독촉장을 받자 집단으로 KT 측에 이의제기를 했다고 한다. “불만사례 접수가 적어 해결책을 강구하지 않았다”는 KT 측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었던 것.
지난해 9월 H 대 학생복지위원회에서는 KT의 한 위탁업체와 함께 대대적인 와이브로 가입 이벤트를 벌였다. 조건은 이번에 문제가 된 ‘3개월 무료 사용 후 자동해지’였다. 그런데 4개월 후인 지난해 12월 와이브로에 가입했던 130여 명의 학생에게 미납금 독촉장이 날아들었다. 당시 H 대 학생들이 항의하자 KT 측에서는 역시 “우리와는 상관없으니 개통한 대리점과 해결해라”라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이벤트를 벌였던 해당 위탁업체와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행사를 주최했던 학생복지위원회가 직접 나서 KT 측에 “학교 차원에서 단체로 고소하겠다”고 강하게 항의했고 다급해진 KT가 적극적으로 나서 해당 업체와 ‘다리’를 놔줬다. 그래서 간신히 행사 담당자와 연락이 닿은 것은 올해 2월 말. 피해 소비자들이 보상을 받은 것은 불과 며칠 전인 4월 초의 일이다.
당시 H 대 학생복지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허 아무개 씨(여·대학생)는 “KT라는 대기업을 믿었기 때문에 학생 복지를 위한 행사를 공동으로 벌였던 것인데 개통을 담당하는 업체가 자신의 교류업체들이 벌인 일을 놓고 자신들과 상관이 없다고 하는 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분개했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 KT 측에서는 “그런 사례들이 있다면 우리가 파악을 해보긴 해야 될 것 같은데…”라며 여전히 소극적인 입장을 보였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