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일파 재산의 국가 귀속 조치를 전후해 후손들의 관련 소송이 줄을 잇고 있다. 왼쪽부터 이해승 민영휘 민병석. | ||
또한 이들 중 상당수는 특별법 시행 이후 해당 부동산이 국가에 환수될 것을 우려, ‘국가귀속’ 혹은 ‘조사개시’가 결정되기 전에 부동산을 팔아넘겨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일요신문>은 창간 16주년 특별기획으로 포기할 줄 모르는 친일파 후손들이 벌이는 법적 분쟁과 그들이 서둘러 처분한 ‘친일재산’이라는 독배를 마신 억울한 피해자들의 사례를 추적해봤다.
친일파들 후손들의 ‘불복’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사례는 일제로부터 후작의 작위를 받았던 이해승 후손의 소송. 이해승의 손자인 이 아무개 씨(69)는 지난 2월 28일 ‘재산조사위’를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면서 자신의 조상은 ‘친일파’가 아니라는 주장을 했다. 이 씨가 ‘국가귀속 취소’를 요구한 땅은 서울 홍은동, 홍제동, 응암동 및 경기 포천 일대 192필지 192만 5238㎡(약 58만 평)로 공시지가로 따져도 114억여 원(시가로는 318억여 원)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다.
이 씨 측은 소장에서 “이해승이 일제로부터 작위를 수여받은 것은 한일합병 등 친일행위의 공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일제가 식민지 통치의 명분을 얻기 위해 조선왕실의 종친을 이용한 결과였다”며 “조선 왕실의 종친이라는 이해승의 신분을 참작하지 않고 단지 일제로부터 후작의 지위를 받았다는 ‘외형’만으로 이해승을 특별법상의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보는 것은 위법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재산조사위는 이 씨의 주장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이해승은 한일합병의 공으로 후작을 받아 일제강점기에 조선귀족회 회장,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평의원 등을 지낸 인물로 친일반민족행위자가 확실하다는 것. 조선귀족회는 차치하고라도 국민정신총동원연맹은 중일전쟁 중 전시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조직된 후에 국민총력조선연맹으로 이름을 바꿔 ‘일본제국주의 정책협력’을 목표로 삼아 학도병 지원, 일본어 학습 강요 등 반민족 친일행위를 일삼았던 친일단체가 분명하다고 밝혔다.
이렇게 재산조사위를 상대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의 후손들이 제기한 소송은 한두 건이 아니다. 민영휘, 민병석 등의 후손들을 필두로 현재 진행 중이거나 소장이 접수된 소송만 13건이나 된다. 이 중 민영휘의 자손들 28인은 재산조사위에 집단으로 ‘국가귀속 결정 취소’를 청구한 상태다. 이들이 반환을 요구하고 있는 땅은 충북 청주시의 48필지 31만 7632㎡(9만 6200여 평)의 임야와 경기도 용인시의 12필지 7899㎡(2300여 평)의 토지로 시가 약 70억 원(공시지가 약 50억)의 가치가 있는 곳이다.
이들이 펴는 논리도 앞서 이해승 손자의 경우와 비슷하다. 이들이 법원에 낸 소장에는 “민영휘는 ‘휘문의숙’을 설립하는 등 인재 양성에 힘쓰고 국내 및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후원하였는 바 결코 특별법상의 ‘재산이 국가에 귀속되는 대상인 친일반민족행위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적혀 있다.
갑신정변 때 청군을 불러들여 친일세력을 구축하고 1910년 한일합병의 공으로 자작 작위를 받았던 민영휘를 그의 후손들은 ‘독립운동가’라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친일반민족행위 진상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의 한 관계자는 “민영휘의 후손 일가는 민영휘가 친일반민족행위 조사자로 선정됐을 때는 소송을 제기했다가 확정된 후에는 소를 취하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의 말대로라면 진상조사위의 결정엔 침묵을 지켜 놓고 바통을 넘겨받은 재산조사위의 결정에 뒤늦게 불복하는 셈이라는 지적이다.
한편 재산조사위는 제3자에 의해 걸려있는 소송도 11건에 이른다. 모두 친일반민족행위자 후손에게 특별법 시행 이후 땅을 구입했다가 낭패를 본 피해자들이 낸 소송이다. 특별법이 시행된 후 친일파 후손들은 국가에 귀속될 것을 우려해 선조로부터 상속받은 땅을 제3자에게 팔아버린 경우가 많았는데 그 과정에서 이런 피해 사례가 발생한 것이다. 재산조사위의 한 관계자는 “(조사 결과) 보통 시세보다 헐값에 땅을 서둘러 넘긴 경우도 상당히 많다”고 말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고희경 민병석 송병준 한창수의 후손 등 특별법 시행 이후부터 국가귀속되기 직전까지 땅을 제3자에게 판매한 사례가 현재까지 드러난 것만 15건이다.
특별법은 특별법 시행일 이전에 땅을 매입한 사람에 대해선 ‘선의의 제3자’로 보고 소유권을 인정해주고 있다. 이들이 매입한 땅은 국가귀속 결정을 하지 않는 것. 문제는 특별법 시행 이후에 친일파 재산인 줄 모르고 부동산을 매입한 경우다. 피해자들은 “우리들 역시 선의의 제3자로 적용돼야 한다”며 재산조사위를 상대로 국가귀속 또는 조사개시 취소를 요구하고 있다.
이해승 손자의 경우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경기 포천시의 땅 188만 5000㎡(약 57만 1200평)를 제3자에게 팔았다가 문제가 된 전력도 있다. 재산조사위에서는 지난 2007년 1월 이 땅에 대해 ‘조사개시 결정’을 내렸다. 재산조사위의 한 관계자는 “조사개시 결정에 들어가면 법원에 부동산 매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기 때문에 매매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지역은 조사개시 전인 지난 2006년 6월 이미 포천 지역의 A 사에 팔려있던 상태. 특별법이 시행된 지 6개월 만에 이 씨가 자신의 땅을 제3자에게 팔아버린 것이다.
A 사의 사장 김 아무개 씨에 따르면 이 땅은 아직까지도 국가귀속 결정은 나지 않았고 여전히 조사개시 지역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김 씨는 이 땅에 대해 국가귀속 결정이 나면 재산조사위를 상대로 행정 소송을 진행하겠다고 했다. 김 씨가 이 땅을 매입하면서 치른 대금은 220억여 원. 김 씨는 “땅을 매매한 후 골프장을 짓기 위해 100억 원가량을 이미 투자했기 때문에 이 씨에게 돈을 돌려받아도 손실이 너무 커 직접 매각대금 반환을 요구하지는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씨 역시 잠재적인 피해자인 셈.
이해승 손자는 또 2006년 1월 6일에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일대의 25필지 3253㎡(980여 평)의 땅도 D 건축회사에 매각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이 부동산이 거래된 가격은 12억 5000만 원. 특별법 시행 이후 6일 만에 이뤄진 거래였다. 그러나 이 땅을 매입한 D 사 측에서는 “2004년 첫 거래가 이뤄졌고 2006년 1월 6일은 잔금을 치른 날짜”라고 주장했다. D 사의 주장대로 2004년에 거래가 성립됐다면 D 사는 선의의 제3자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만약 2006년 1월 이후에 거래가 됐다면 보호대상이 아니다. 확실한 날짜를 알아보기 위해 이 씨 측에 연락을 했지만 이 씨의 비서관은 “지금 장기 출장 중이다”라며 “우리는 개인에 대한 것은 모른다”고 답했다.
이처럼 친일파 후손들의 재산처분 행위에 대해 선의의 피해자가 늘고 있지만 이들을 법적으로 보호해줘야 한다는 주장은 아직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재산조사위의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이뤄진 것보다 앞으로 조사를 해야 할 친일파의 수가 더 많다”며 “특별법 시행 이후 부동산을 매매한 사람까지 선의의 피해자로 인정하도록 법을 개정한다면 이를 악용하는 친일파 후손들이 늘어날 위험이 크다”고 우려감을 표했다.
그에 따르면 지금까지 국가귀속이 이뤄진 친일파의 수는 29명. 조사대상자 451명 중 조사가 이뤄진 반민족친일행위자는 135명뿐이다. 재산조사위는 앞으로 더 많은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선별해야 할 입장이다. “그런데 특별법 시행 이후 거래자들까지 선의의 피해자로 인정해준다면 조사도 들어가기 전에 친일파 후손들이 앞다퉈 땅을 팔아버릴 것임은 너무도 뻔한 일”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재산조사위의 장완익 사무처장은 “4월 말에서 5월 초쯤에 친일부동산 관련 소송에 대한 초석이 될 아주 중요한 판결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제3자와의 거래는 매매한 당사자들끼리 되도록 빨리 해결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친일반민족행위자의 후손들은 거래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들에게 “행정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달라”는 입장을 대부분 고수하고 있다. 멋도 모르고 코가 꿰인 친일재산 매입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친일파들은 민족을 울린 뒤 재산을 쌓았고 후손들은 독이 든 그 재산을 팔아 ‘선량한 백성’들을 또다시 울리고 있는 셈이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