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포털사이트의 토론 서비스 공간. 이곳은 네티즌들이 주로 사회적 이슈에 대해 토론을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평소 사회 주요 현안에 대한 식견 있는 게시물들이 종종 올라오기 때문에 주요 언론에서도 이곳의 반응을 간혹 인용할 정도로 네티즌들의 수준이 높은 곳이다.
그러나 밤 10시만 넘어가면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사진 게시물을 올릴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이곳 게시판에는 낯뜨거운 사진이 담긴 게시물이 초 단위로 올라와 순식간에 수백 건이 된다.
이때 올라오는 게시물은 하나같이 일반 포르노사이트에서나 볼 법한 야한 사진들이지만 이에 대해서 누구하나 비난하는 사람도 없다.
만약 누군가 답글을 통해 이러한 상황에 대해 비난하려고 해도 해당 게시물은 빠르면 수초 이내에 늦어도 1분 이내에 모두 삭제된다. 운영자들이 실시간으로 게시물을 확인하고 운영원칙에 위배될 경우 통보 없이 삭제해 버리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네티즌과 운영자 사이에 공방전이 벌어지는 것. 문제는 이곳 게시판 운영자들이 운영 기준에 맞지 않는 음란성 게시물을 삭제하는 속도보다 네티즌 여럿이 순식간에 집중해서 올리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것이다.
이들의 활동은 매우 조직적이다. 우선 이들은 야간 특정시간대에 집중해서 게시물을 올린다. 일단 한 네티즌이 다른 네티즌들에게 달릴 것을 제안한다. 이 게시물을 본 다른 네티즌들 역시 자신의 컴퓨터에 소장하고 있는 사진들을 알아서 올리기 시작하고, 순식간에 수백 건의 음란성 사진들이 올라오는 것이다.
이들은 종종 음란 수위를 아슬아슬하게 조절해 일종의 지연작전까지 구사해 운영자들을 더욱 당혹케 한다. 일반적인 연예인 사진이나 다소 노출이 있지만 가슴과 같은 중요부위를 아슬아슬하게 가리고 있는 레이싱걸 사진들은 게시판 운영 원칙상 삭제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운영자들은 이를 구별해내기 위해 게시물들을 일일이 확인하게 되고, 결국 게시물 삭제는 더욱 늦어지는 것이다.
또한 네티즌들은 운영자들을 혼란시키기 위해 위장전법도 사용한다. 게시물 목록에 작게 뜨는 대표 사진에는 일부러 평범한 만화 캐릭터나 아무 의미 없는 사진을 올리는 것. 따라서 운영자는 해당 게시물을 직접 클릭하지 않는 한 사진목록만 보고는 음란성 게시물인지 구분해 낼 방법이 없다.
만약 삭제 기준에 위배되지 않는 게시물이 삭제될 경우 네티즌들은 “영자(운영자의 줄임말)야, 이것도 자르나 보자”며 더욱 흥분해서 음란성 게시물을 올리기 때문에 무작정 삭제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 이곳 게시판 운영자들의 전언이다.
특히 밤 시간에는 일부 당직 운영자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퇴근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관리 인력이 비교적 부족한 상황. 포털 사이트 한 관계자는 “정책상 구체적인 관리 인원을 밝힐 수는 없지만 낮에 비해 배치인력이 적은 것은 사실”이라며 “만약 음란성 게시물을 올릴 경우 최소 1주일에서 수위나 전과(?)에 따라 길게는 아이디가 영구 정지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네티즌들이 알아서 자제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러한 게릴라 놀이를 즐기는 네티즌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
▲ 한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올라온 야한 사진. | ||
이러한 게릴라 놀이는 디지털카메라 커뮤니티로 시작해 지금은 하루에도 수십만 유저가 찾는 B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처음 유래됐다. 이곳 사이트는 회원가입 없이도 간단한 절차만 거치면 누구나 게시물을 작성할 수 있어 초창기 수많은 네티즌들의 놀이터로 자리 잡으며 큰 인기를 모았다.
특히 이곳에는 주제에 따라 수많은 게시판이 존재하는데 그중에서도 여자친구 갤러리와 레이싱걸 갤러리(게시판을 지칭하는 용어)가 타깃이 됐다. 이러한 현상이 2~3년째 계속 벌어지자 이곳 사이트에서는 아예 야한 사진만을 전문적으로 올리는 ‘은꼴사(은근히 꼴리는 사진의 줄임말)’ 게시판을 만든 뒤 성인인증을 통해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자 이곳 네티즌들은 대부분 이곳을 통해 야한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고 게릴라 놀이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성인인증 절차를 귀찮게 여긴 대부분의 네티즌들이 또 다른 공공사이트인 D 포털의 토론공간으로 이동하게 된 것이다.
계정을 정지시키는 강력한 제재에도 불구하고 네티즌들이 이러한 게릴라 놀이를 즐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곳 네티즌 대부분은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 게릴라전 자체가 재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야한 사진 공유도 목적이긴 하지만 단지 ‘운영자들을 골려주는 것이 재미있어서 그런다’는 네티즌도 있었고 ‘아무 이유 없이 남들이 하니까 따라한다’는 유저들도 있었다. 이들이 올리는 게시물 역시 정치적이나 상업적인 색깔을 지니고 있지는 않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낮에는 직장과 학교를 다니는 평범한 이들이 익명을 보장하는 사이트에서만큼은 평소 틀에 박힌 규칙을 깨고 제도에 반항하고 싶은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즉, 평소 일탈을 꿈꾸지만 실행에 옮기기 어려운 사람들이 주로 이곳을 찾아 자신의 욕구를 마음껏 발산한다는 것이다.
이곳 사이트에서 가장 강력한 제재는 계정정지 정도가 고작이다. 포털사이트에서도 이들에 대해 사이버수사대에 수사를 의뢰하는 등의 강력한 제재는 하지 않고 있다. 비록 게시판 운영원칙에는 어긋나지만 하루에도 수백만 명이 찾는 인기 서비스이기 때문에 이들이 만들어내는 트래픽(통신의 양을 지칭)이 상당한 것이다. 트래픽이 곧 광고 단가로 이어지는 이들 사이트로서는 이들 게릴라 네티즌들의 방문이 결코 싫지만은 않은 이유다.
따라서 이처럼 암묵적으로 합의된(?) 게릴라 전쟁은 지금도 어김없이 벌어지고 있으며 향후에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봉성창 경향게임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