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가운데 서울의 몇몇 중소 종합병원은 요즘 의료사고에 대한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 법안통과에 적극적인 시민단체들의 이야기다. 입원 중인 환자들과 이 병원을 이용했던 퇴원 환자들 사이에서 의료사고로 의심되는 사례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는 얘기가 핵심인데 최근엔 의료사고 때문에 병원 매각까지 추진 중인 병원도 있다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병원 측 관계자들은 “치료에 불만을 품는 환자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라며 이런 소문들을 일축하고 있다. 그러나 취재결과 환자들의 단순 불만이나 소문으로만 돌리기에는 석연찮은 부분도 적지 않았다.
몇 해 전 서울 도심에 위치한 A 병원은 이름을 B 병원으로 바꿨다. 이 병원 관계자는 “예전 병원을 인수했지만 현재 병원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병원 인근의 주민들이 전하는 얘기는 달랐다. A 병원의 의료진은 예전 그대로인데 이름만 바꿨을 뿐이라는 것. 이 병원 사정을 잘 아는 주변 사람들은 병원 이름을 바꾼 것은 거듭된 의료사고로 이미지가 나빠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병원의 의료사고로 회자되는 것 중 대표적인 사례는 담석환자가 들어왔는데 이를 오판, 맹장수술을 했다는 것이다. 배가 아파 병원을 찾은 환자에게 맹장수술을 시켰는데 수술 후에도 계속 아파 다른 병원에 가서 진료를 해봤더니 맹장과 비슷한 부위에 담석이 있는 상태였다는 것. A 병원에서 담석을 놔두고 환자의 멀쩡한 맹장을 도려냈던 것이다.
한편 서울시 한 지역의 C 종합병원은 요즘 병원을 매각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거래를 했다는 부동산 이름까지 언급돼 등기부등본을 확인해 봤지만 결과는 사실무근. 그렇다면 이 병원의 매각설이 나돌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A 병원이 ‘이름 바꾸기’를 했던 사유와 비슷한 내막이 숨어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C 병원은 현재 경기도 한 지역에 대형병원을 건축 중이다. 그런데 C 병원이 지난 몇 년간 알게 모르게 의료사고 시비에 자주 휘말렸는데 이런 의료사고와 관련된 얘기들이 환자와 환자 가족들의 입을 통해 퍼지고 있다고 한다. 새로 짓는 대형병원의 이미지에 이런 소문들이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새 병원을 개원하기 전에 기존 병원을 매각해버렸다는 얘기다.
이 병원에 장기입원 중인 한 환자는 “2년 전쯤 왼쪽 다리에 종기가 나 찾아온 환자를 국부마취가 아닌 하반신마취를 통해 치료했다”고 말문을 뗀 뒤 “떨어지는 TV에 손가락을 찧어 병원에 실려 왔던 아이가 손가락에 핀을 꼽는 수술을 받았는데 손이 썩자 다른 병원 의사가 새벽에 몰래 와 수술을 했다”는 얘기까지 들려줬다. 환자들 사이에선 알려진 얘기지만 너무 오래된 얘기라 확인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런 소문들 외에 의료사고로 의심되는 피해자들을 실제로 만나보는 것도 어렵지는 않았다.
정경식 씨(가명)는 2년 전인 지난 2006년 2월 5일 병원에 입원했다. 정 씨는 교통사고로 왼쪽 무릎 부분을 다쳤는데 병원은 관절경 수술을 했다. 정 씨는 수술시 병원으로부터 “구멍을 뚫어서 관절에 차 있는 고름을 제거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고 수술 후에는 “잘됐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수술 후에도 정 씨의 무릎통증은 멈추지 않았고 걷기는 더욱 힘들었다. 정 씨는 한 달이 지나도록 상황이 호전되지 않자 병원에 “이러다 장애가 생기는 것 아니냐”고 묻기까지 했었다고 한다. 당시 병원에서는 “치료는 잘 됐고 장애진단이 나올 상태는 아니다”라고 대답해 줬다고 한다.
그러나 불안해진 정 씨는 결국 다른 병원으로 옮겼다. 그런데 정 씨는 옮긴 병원에서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상태가 이 지경인데 보조기구도 차지 않고 걸어 다니느냐”며 “다친 무릎을 너무 오래 방치해서 상태가 좋지 않다. 애초 부분 파열 수술을 받았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 상태가 더욱 악화됐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후 정 씨는 ‘장애 4급’ 진단을 받았다.
강병석 씨(가명·50)는 병원에서 수술한 후 얼마 전 괴사로 다리를 절단해야 될지도 모를 상황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강 씨가 이 병원에 입원해 다리 수술을 받게 된 것은 지난 2006년 10월 22일. 전시회장에서 일을 하던 강 씨는 2층 높이에서 시멘트 바닥으로 추락하는 사고를 당했다. 진단결과는 왼쪽 발바닥부터 발목뼈까지 복합골절인 상태. 강 씨는 발바닥 등 골절된 부위에 핀을 박아 고정시키는 대수술을 받았다. 병원에서 말해 준 수술 결과는 역시 ‘대성공’. 그러나 강 씨의 발은 날이 갈수록 검은색으로 변해갔고 급기야 발목뼈에 괴사가 찾아왔다고 한다.
▲ 수술의 한 장면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음. | ||
드디어 핀 제거 수술을 하는 날. 강 씨는 의사에게 날벼락 같은 황당한 소리를 들었다. 핀 제거 수술을 하려고 다리 부위를 개복해 보니 뼈를 심었던 자리에 뼈가 없더라는 것. 제거 수술 전까지만 해도 병원에서는 강 씨에게 “X-ray 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고 뼈가 자리를 제대로 잡고 있다”고 했다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강 씨는 나중에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X-Ray가 아닌 MRI 촬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강 씨에게 MRI를 찍어보자는 말을 단 한번도 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결국 병원을 믿지 못한 강 씨는 인근의 한 대학병원에서 네 번째 수술을 받았고 이때부터 다리는 호전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당사자인 강 씨가 가장 의심스러웠던 것은 골절수술을 했는데 발에 괴사가 찾아올 수가 있느냐는 것. 강 씨는 자신의 수술을 집도한 담당의에게 ‘애초에 수술을 잘못한 것이 아니냐’고 물었지만 의사는 “수술은 아주 잘 됐지만 발목 부위는 혈액순환이 잘 안 돼 염증이 올 수 있고 염증은 괴사로 이어질 수 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30년 동안 정형외과를 운영해 온 윤 아무개 전문의는 “발목 부위가 혈액순환이 잘 안 된다는 것은 맞지만 수술이 잘 됐고 문제가 없었다면 그것은 회복속도에 영향을 미칠 뿐이지 뼈를 괴사직전까지 악화시킬 만큼 치명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이 병원에서는 이 외에도 치료 후에 멀쩡했던 다리를 절게 됐다고 주장하는 환자와 팔목수술을 했는데 팔꿈치가 움직이지 않았다는 환자 등 많은 유사사례가 있었다. 그런데 충격적인 것은 이처럼 의료사고로 의심되는 환자들 상당수가 모두 같은 의사에게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 기자는 해당 의사에 인터뷰 요청을 했지만 그는 한사코 거절했다.
병원의 다른 관계자들도 ‘의료사고가 아니냐’는 질문에 “그런 사실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아니다”라는 답변으로 일관하고 있다. 또한 이 병원 관계자들은 “의료사고 소송에서 패소한 적이 없는 만큼 의료사고가 아직 일어난 것은 아니다”고 말하고 있다. 병원 원무과의 한 관계자는 “과거에 소송이 걸린 적은 몇 번 있지만 단 한번도 패소한 적이 없다”며 “현재는 걸려있는 소송조차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병원은 어떻게 소송을 피하고, 또 이미 벌어졌던 소송에서 모두 승소할 수 있었을까. 이 병원에 흠집이 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피해자들이 처음부터 혹은 중간에 소송 자체를 포기하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기자가 만난 피해자들도 하나같이 “의료사고가 10%의 승률밖에 없다는데 이 얘기를 듣고 누가 소송을 진행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수술 후 다리 절단 직전까지 갔었다는 강 씨는 “수술을 받은 후 ‘수술이 잘못된 게 아니냐’고 몇 차례 의문을 제기했지만 그때마다 ‘잘됐다’고 하고는 결국 수술을 세 번이나 했다”며 “내 운명이라고 해야 할지 의사를 잘못 만났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소송을 할 생각은 없다”고 체념어린 말을 했다.
의료소비자시민연대(이하 의시연)에 따르면 2007년 5월부터 12월까지 조사한 우리나라 의료사고 상담횟수는 전화, 인터넷, 방문을 합쳐 총 2600여 건. 이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위에서 언급한 정형외과 의료사고로 전체 건수 중 18.3%에 달했다. 하지만 의시연에 따르면 2008년 현재까지 의료사고 소송에서 일부승소까지 합치더라도 승소율은 22%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실련의 김태현 국장은 “17대 국회에서 의료사고 피해 발생시 이것을 입증하는 책임을 의사에게 두는 법안을 통과시키려 했지만 무산돼 아직도 국회 계류 중이다. 하지만 이번 17대 마지막 임시국회가 끝나면 자동 폐기되므로 사실상 법안통과는 불가능한 실정”이라며 “환자의 입장에서 의료사고의 진실을 밝히기가 거의 불가능한 만큼 입증책임을 의사에게 두는 법안은 18대에 꼭 추진해야 할 시급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