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시위 참가자들. | ||
그러나 문화제가 끝나고 본격적인 거리 시위가 시작되면 다소 심각해지기는 한다. 경찰이 아스팔트에 방패를 두드리며 접근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시위를 즐긴다지만 절도 있는 군홧발 소리를 들으면 긴장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경찰에 연행되는 일마저도 ‘닭장 투어’라는 이름으로 패러디하는 등 과거 시위와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즐기는 시위’에는 남녀노소 구분이 없다. 촛불문화제 초기에는 중·고생들이 많이 보였는데, 최근에는 20~30대의 수가 더 많아졌다. 그렇다고 젊은이들만 있는 건 아니다. 청소년들은 여전히 곳곳에 있고 아이와 함께 나온 주부에서부터 노년의 신사들까지, 시위대의 연령구성은 그야말로 전 계층을 아우른다.
경찰관계자는 “27일 밤과 28일 새벽 거리시위에 나선 시위 참가자를 체포했는데 이들을 직업별로 구분해 보면 대학생 21명, 무직 11명, 회사원 7명, 고교생 4명, 자영업자 2명, 재수생 2명 등이었다”고 밝혔다. 시위 구성원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파악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지금도 대학생이 많지만 거의 모두가 대학생이던 80년대 시위대 구성원과는 사뭇 다르다.
참가자들의 인원구성이 이렇게 다양하기 때문에 사실 문화제에서 함께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함께 부르는 노래는 ‘아리랑’이나 ‘애국가’로 한정되어 있다. 촛불문화제가 민족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모두 아는 노래’가 그것밖에 없어서라는 것이 한 참가자의 설명이다. 참가자의 주축을 이루는 20대는 ‘아침이슬’이나 ‘광야에서’ 같은 80년대 시위 현장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불린 노래조차 모른다. 간혹 주최측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부르지만 많은 20대 참가자들은 “처음 듣는 노래”라는 반응.
그러나 축제 성격이 짙었던 촛불문화제는 최근에 들어서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가두 시위가 계속되면서 점점 과격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
지난 5월 31일 낮부터 시작해 다음날 아침까지 계속된 시위는 이전의 문화제 성격의 시위와는 많이 달랐다. 시위대가 경찰 저지선을 뚫고 청와대 앞까지 진출한 것. 시위대는 사다리를 이용해 행진을 막고 있던 경찰 호송차를 넘어 가기도 했다.
또한 시위대가 여기저기서 경찰이 예상하지 못한 행동을 하고 있기도 하다. 5월 31일에는 문화제가 열리는 동안 200여 명의 시위대가 청와대 앞 청운동에서 기습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시위대의 공세에 청와대 앞까지 밀린 경찰도 다급해졌다. 강경 진압에 대한 비난 여론 때문에 수세적인 자세를 취했던 경찰이 이날은 물대포와 소화기를 뿌리며 강경진압에 나선 것. 마지막 저지선까지 뚫리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동안 체포를 자제하던 경찰은 이날 200여 명의 시위 참가자를 연행했다고 한다.
시위대의 구호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반정부’적인 내용으로 점점 과격해지고 있다. 촛불문화제 초기에는 “쇠고기 재협상” 등이 주요 구호였고 ‘장관 고시’ 이후에는 “고시 철회”를 외쳤다. 구체적인 사안을 주장했던 시위대였지만 최근에는 “대통령 탄핵”, “이명박 정부 퇴진” 등의 구호가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경찰의 강경 진압이 시작되면서 구호는 더욱 더 거칠어지고 있는데, 청와대 앞까지 진출해서는 “이명박 나와라”고 외치는 시위대였다.
마지막 저지선을 사수하기 위한 경찰의 강경 진압은 다시 시위대를 자극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시위 참가자들은 경찰 진압 과정 사진을 인터넷에 올렸고 이를 본 많은 네티즌들이 또 한 번 ‘분노’하고 있는 것.
사태가 이렇게 번지자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또 앞으로 많은 단체들이 시위에 적극 참여할 예정이며 이렇게 되면 ‘반정부’의 색채는 더욱 짙어지게 된다. 상징적인 의미로 등장한 ‘대통령 탄핵 운동’이 실질적인 ‘정권 퇴진 운동’으로 이어지며 경찰과 대치하는 시위대의 행동도 더욱 거칠어질지 모른다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류인홍 기자 ledh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