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박종철 군의 아버지 박정기 씨는 현 정부가 민주화 정신을 계승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6·29 선언’으로 국민들이 승리하는 과정에서 희생된 대표적인 두 젊은이. 바로 고 박종철 군과 고 이한열 군이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서 등장한 “탁 치니 억 하고 죽더라”는 역사적인 거짓말은 항쟁의 불씨가 되었다. 또 안전수칙을 어기고 발사된 최루탄에 맞은 연세대 학생의 죽음은 전 국민적 민주화운동을 이끌어냈다.
박종철 군의 아버지 박정기 씨(81)와 이한열 군의 어머니 배은심 씨(70)의 인생은 아들을 잃고 완전히 바뀌었다. 공무원이었던 박 씨는 ‘투사’가 되었고 주부였던 배 씨 역시 ‘열혈 운동권’이 되었다.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회원들의 안식처인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작은 한옥집 ‘한울삶’에서 두 사람의 근황과 최근의 시위를 바라보는 입장을 들어보았다.
고 박종철 군의 아버지 박정기 씨와 고 이한열 군의 어머니 배은심 씨가 바라보는 최근의 시위 현장 모습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87년 민주화과정에서 고문과 강경진압으로 아들을 잃은 터라 부상자가 속출하는 촛불시위 장면을 볼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또 한번의 불행한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다.
배은심 씨는 당시 연세대 경영학과 학생이었던 아들에게 “남자가 옳은 일을 하는 건 괜찮지만 앞에 나서지 말라”고 아침저녁으로 당부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들은 맨 앞에서 시위를 벌이다 최루탄에 맞아 숨졌다. 배 씨는 요즘 시위를 하는 젊은이들에게도 아들에게 했던 말을 똑같이 해주고 싶단다.
평범한 주부였던 배 씨는 불행한 일을 겪은 후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집회와 시위 현장을 다니면서 가장 열성적인 ‘운동권’으로 활동했다. 배 씨는 “아들이 목숨까지 바쳐가며 원했던 바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고 말한다. 또 그는 “아들의 죽음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덧붙였다.
배 씨를 비롯한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회원들은 1989년 십시일반 돈을 모아 ‘한울삶’을 만들었다. 전남 광주가 집인 배 씨는 서울에 올라오면 늘 이곳에서 묵는다. 지방에 거주하는 다른 회원들도 마찬가지. 그래서 한울삶은 민주화과정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소중한 쉼터가 되고 있다.
배 씨는 슬하에 5남매를 두었다. 이한열 군의 누나들인 딸 셋은 현재 교사로 재직 중이고 막내 아들은 강원대 물리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남편은 95년에 아들을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화병으로 숨졌다고 한다.
가족들이 모두 모이면 먼저 간 아들이 많이 생각난다고 한다. 배 씨는 “1년 내내 아들 생각을 하면서 사는데, 특히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생일이나 명절이면 장남의 자리가 비어 있는 게 무척 안타깝다”고 전한다.
배 씨는 최근의 촛불집회를 보면서 시간이 거꾸로 흘러간 느낌이라고 말한다. 그는 “그때는 최루탄이 국민의 입을 막았다면 이제는 물대포가 막고 있는 꼴”이라고 개탄했다.
▲ 고 이한열 군의 어머니 배은심 씨는 촛불시위를 강경 진압하는 정부의 모습에 개탄해 했다. | ||
또 1997년 겨울 전두환 전 대통령이 안양교도소에서 출소하던 당시, 현장에 달려가서 경호원들과 몸싸움을 벌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박 씨는 “전두환의 머리를 잡고 차 앞 유리에 처박을 생각으로 뛰어들었는데 경찰과 경호원들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또 그는 “지금이라도 만나서 한 방 날리고 싶은데 기회가 없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박 씨는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는데 자녀들은 모두 장성해서 회사원과 주부로 살고 있다고 한다. 현재는 아내와 서울 마포의 큰아들 집에서 살고 있다고.
박 씨 역시 최근의 시위 현장을 보면서 분개했다고 한다. 특히 그는 경찰이 여학생을 짓밟는 동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그렇게 밟는 건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지금도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제발 우리 아들과 같은 불행한 일이 또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힘주어 말했다.
특히 그는 이명박 정부에 대해 강도 높은 쓴소리를 토해냈다. 박 씨는 “이명박 정부에게는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현 정부와 80년대 민주화운동과는 어떤 접점도 없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배은심 씨와 박정기 씨는 아들을 잃은 뒤부터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이 많았다. 모든 생업을 뒤로 하고 민주화운동 현장을 누비고 다녔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나온 보상금은 모두 두 아들의 이름을 딴 기념관을 설립하는 데 사용했다. 다른 자녀들의 도움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하루 빨리 아들이 국가유공자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배 씨와 박 씨는 “5·18 희생자들까지만 국가유공자로 예우받고 있는 상황인데, 민주화운동에서 희생된 많은 사람들 역시 국가유공자로 인정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배 씨와 박 씨를 비롯한 100여 명의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회원들은 최근에는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과거사위원회 통폐합’ 철회 운동을 펼치고 있다.
류인홍 기자 ledhong@li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