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라크 건설 현장 파견된 삼성 직원 사망사건 둘러싼 갖가지 미스터리 증폭
- 사고 현장 출동한 현지 경찰 의사 진단 없이 사망 결론 6시간 후 병원 이송
- 1000억대 경호비 지원받는 현지 경호업체에 삼성 ‘에스원’ 참여 뒷말 무성
- 유가족, 사건 축소․은폐 의혹에 진실 규명 호소 소극적인 보상 협상 ‘울분’
- 삼성 측 “은폐할 이유 없다” “보상문제 유가족 입장에서 최대한 지원” 해명
사진=삼성엔지니어링 홈피 캡쳐
내전이 장기화되면서 치안이 극도로 불안한 이라크 건설 현장에 파견된 국내 건설사 직원의 사망사건을 둘러싼 갖가지 의혹이 증폭되면서 적잖은 후폭풍이 감지되고 있다.
삼성엔지니어링 관리직 직원인 차 아무개 씨는 지난 8월 초 이라크 현지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차 씨 사망사고 경과보고서에 따르면 차 씨와 그 일행은 이라크 석유부 장관과 현장근로자 비자 건을 논의하기 위해 3일 밤 20:50분 경(현지시간) 바그다드로 출발했다. 차량에는 현지인인 운전사와 경호원이 앞 자석에, 차 씨아 김 아무개 소장은 2열, 최 아무개 수석은 3열에 각각 탑승했다.
이후 22시 45분 경 현장에서 약 120㎞ 거리의 Al Hafriea 인근 도로를 시속 80㎞로 주행 중 도로포장 불량 구간에서 우 측 앞쪽 타이어가 파손됐다. 차량이 5~6바퀴 회전하는 순간 좌측 2열 문이 열려 차 씨가 차량 외부로 튕겨 나가 현장에서 사망했다. 현지 경찰은 차 씨의 사인을 ‘골절 및 타박상으로 인한 과다출혈’로 잠정 결론냈다.
차 씨를 비롯한 탑승자들은 탑승시 안전벨트를 모두 착용했으나 중간 휴식후 다시 착용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고서는 적시하고 있다. 또한 차 씨 외에 탑승자는 가벼운 부상(찰과상)을 입었다고 적시돼 있다. 하지만 유가족 측은 차 씨 일행이 중간에 휴식하지 않았고, 안전벨트도 모두 착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보고서 내용에 강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현지 경찰과 삼성 측은 차 씨 사망을 단순 교통사고로 결론짓고 사후 처리를 진행하고 있지만 차 씨 사망을 둘러싼 의혹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특히 이라크 내전이 장기화되고 있고 미국의 IS(이슬람국가) 공습으로 중동지역 내 불안감이 고조되면서 현지 교민들은 물론 국내에서 파견된 건설 근로자들의 안전에도 비상이 걸리고 있다는 점에서 차 씨 사망사건을 둘러싼 또 다른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라크 장관과의 미팅은 8월 4일 09:00(현지시각)로 예정돼 있었는데 왜 차 씨 일행이 위험을 무릅스고 전날(3일) 저녁에 이동했는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실제로 이라크는 내전 등으로 치안이 불안해 저녁 시간대에는 이동을 자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이라크는 비포장 등 도로 상황이 매우 열악하고, 곳곳에서 검문검색이 이뤄져 도로 주행 시간이 일정치 않다. 특히 4일 오전에 이라크 장관과의 중요한 미팅을 앞두고 있었던 만큼 전날 미리 출발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해명했다.
사고 후 대응 및 사후 처리 과정에서도 갖가지 의문점이 남는다. 우선 차량 사고(22:45분) 후 6시간 15분 후에서야 차 씨의 시신이 이라크 알 쿳 병원에 안치됐다. 단순 교통사고였다면 응급조치 후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최대한 빨리 환자를 이송해야 하는데도 차 씨 일행은 사고 후 인근 경찰서에서 3시간 가량 조사를 받았다. 차 씨의 사인이 과다 출혈인 만큼 응급조치를 소홀히 해 현장에서 사망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사고 후 5㎞ 인근에 있던 현지 경찰이 출동했고, 차 씨에 대해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으로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의사의 진단도 없이 경찰이 사망 판단을 내릴 수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삼성 측은 “이라크는 의료시스템 및 교통사고 프로세스 등이 우리나라와 매우 다르다. 현지 규정에 따라 경찰이 사후 처리를 지휘했고, 경호업체나 차 씨 일행은 이에 따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라고 답했다.
사고 후 ‘증거 보전’ 차원에서 사고 현장을 그대로 유지하는 게 상식인데 전복된 차량을 곧바로 일으켜 세운 것도 의문점으로 남는다.(사고차량 사진 참조) 이에 대해 삼성 측은 “차량 전복후 탑승자들이 모두 차량 밖으로 나온 만큼 현지 경찰과 주민들이 차량을 일으켜 세운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또한 현지 경찰이 지휘한 것으로 보고받았다”고 해명했다.
사진= 차 씨 일행이 탑승한 사고 차량.
현지 경호업체의 역할 및 책임 문제와 관련한 궁금증도 증폭되고 있다. 이라크 내무부는 분쟁지역인 이라크 내에서 사업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경호 요원을 대동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라크 건설 사업 입찰에 참가하는 건설사나 전문건설업체 등은 반드시 입찰 서류에 ‘Security Plan’을 제출해야만 한다.
이라크에서 건설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건설업체들이 전체 수주 금액 중 5~10%에 달하는 금액을 경호 비용으로 지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이라크 바그다드 남동쪽에 위치한 바스라와 바드라 지역에 사업장을 두고 있는데 전체 공사 수주액은 21억5000만 달러(한화 약 2조 3000억원) 정도다. 5%로 추산할 경우 삼성은 대략 1억750만 달러(한화 약 1153억원)를 경호 비용으로 지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경호 사업이 호황이다 보니 이라크 내에는 200여 개의 민간 경호업체가 난립하고 있고 상당한 이권이 개입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여기에는 영국과 미국계는 물론 한국 경호업체도 현지 및 외국계 회사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하고 있다.
삼성엔지니어링의 경우 현지업체인 A 사와 경호 계약을 체결했고, 여기에는 삼성 계열사인 경호업체 ‘에스원’이 컨소시엄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구체적인 경호 비용은 대외비인 만큼 공개할 수 없다”고 전제한 뒤 “A 사는 이라크 현지에서 유망한 경호업체로 대외적인 경호 업무를 총괄하고 있고, 에스원은 보안이나 경비 분야를 맡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호 업무가 큰 이권 사업인 만큼 과실이나 중과실을 야기한 경호업체는 의뢰인 측에 상당한 위약금을 지급하는 동시에 현지에서 사업 규제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경호업체들이 사고 발생시 사건을 축소․은폐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차 씨 사망건과 관련한 경호업체의 책임론에 대해 삼성 측은 “이라크 경찰이 경호업체의 과실 여부 및 형사처벌 수위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위약금에 대한 구체적인 계약 내용은 밝힐 순 없지만 경호업체의 과실 여부와 맞물려 내부적으로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 차 씨 사망사건 경과보고서에 적시된 사고 현장 지도.
유가족 측과의 보상문제도 난항을 겪고 있다. 지난 2007년에 삼성엔지니어링에 입사한 차 씨는 2012년 5월 1년 6개월 일정으로 이라크 사업장에 파견됐다. 올해 32세인 차 씨는 부인과 슬하에 세 살배기 자녀를 두고 있다. 차 씨 부인 입장에선 차 씨의 사망은 그야말로 청천벽력이나 마찬가지다. 하루아침에 이국만리 타국에서 가장과 아들을 잃은 차 씨의 부인과 부모님은 그야말로 공황상태에 빠져있다.
특히 유가족들은 삼성 측과 경호업체가 사건을 축소 은폐하고 있다는 강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고, 보상 문제와 관련해서도 유가족이 요청하는 각종 서류를 적극적으로 제공하지 않는 등 삼성 측이 소극적이고 안일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며 강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최근 기자와 만난 차 씨의 아버지는 “전쟁위험 국가에서 위급상황이 언제 어떻게 발생할지 모르는데도 삼성 측은 현지 경찰서 및 병원 전화번호를 모르고 있는 등 사고대처 프로세스가 전혀 없었다”며 “사고 후에도 정확한 사고 경위, 사망 시간, 경호업체 및 운전자 과실 등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데 주력하지 않고 사건을 조기에 수습하는데만 열을 올렸다”고 울분을 토했다.
보험 문제와 관련해서도 아버지는 “회사 측은 산재는 국내법에만 적용되는 만큼 해외파견 근로자의 경우 가입 대상이 안 돼 유사한 근재 보상으로 대체하고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며 “보상 문제를 전담하는 간부도 고압적이고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사건을 축소 은폐할 이유가 전혀 없고 이라크 사법당국에 정확한 사고 경위 및 책임자 처벌을 주문하고 있다”며 “보상 문제 또한 유가족 입장에서 회사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특히 보험금은 보험 계약에 따라 보험회사에서 지급하는 만큼 회사가 숨기거나 소극적으로 임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자와 통화한 손해사정인은 “20여년 손해사정 업무를 맡아 왔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사 측은 노동자의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 서류 등을 유가족이 원할 경우 언제든 공개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삼성엔지니어링 측이 응하지 않아 노동청에 민원을 제기해서야 관련 서류를 제출받을 수 있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제출받은 서류가 알맹이를 뺀 껍데기 뿐이라는 사실이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삼성이 왜 차 씨 관련 자료와 정보를 숨기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고, 삼성의 이같은 태도가 유가족을 두 번 울리는 동시에 차 씨 사망과 관련한 의혹을 부추기고 있는 것 같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기자와 통화한 민주노총의 한 관계자는 “‘무노조’를 고수하고 있는 삼성의 경영 문화가 그대로 반영된 단적인 사례인 것 같다”며 “삼성 측이 이 사건을 축소・은폐하려할수록 유가족과 노동자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과연 차 씨 사망사건을 둘러싼 갖가지 의혹 및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무엇일까. 해외에 파견된 근로자들, 특히 분쟁국가 등 위험지역에 파견된 근로자들은 해당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당국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제2, 제3의 해외 근로자 사망사건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차 씨 사망사건과 관련한 갖가지 의혹들을 철저히 규명하는 동시에 책임자 처벌 및 위험지역 근로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단계별 안전대책 매뉴얼을 체계적으로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