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 갬블러들에 따르면 포커는 스타 크래프트를 했다고 해서 유리한 점이 없다며 전업에 신중을 기하라고 조언한다. | ||
하지만 정작 갬블러로 전업을 하는 이들은 “스타 크래프트와 텍사스 홀덤은 승부를 통해 수익을 얻는다는 점에서 크게 다를 바 없다”고 항변한다.
e스포츠업계와 포커업계 전문가, 그리고 전업을 시도하고 있는 전직 프로 게이머의 이야기를 다각도로 들어보았다.
프로 게이머들이 주로 즐기는 포커 게임은 ‘텍사스 홀덤’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성행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면서 승부를 거는 게임 스타일이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인 ‘스타 크래프트’와 유사한 점이 많기 때문. 또 스타 크래프트에서 세계 최고의 게이머로 명성이 자자했던 캐나다 선수인 기욤 패트리가 텍사스 홀덤 플레이어로 전향을 한 것도 프로 게이머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은퇴한 프로 게이머 장 아무개 씨(27) 역시 기욤 패트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최근 프로 갬블러에게 텍사스 홀덤을 배우고 있다. 얼마 전부터 서울 강남의 트럼프방에서 텍사스 홀덤을 즐겨왔는데 최근에는 아예 전업을 할 생각으로 전문가에게 집중적으로 트레이닝을 받고 있다는 것.
장 씨는 자신뿐 아니라 적지 않은 프로 게이머들이 현재 텍사스 홀덤을 즐기고 있고 전업을 생각 중이라고 전했다. 그는 “e스포츠 업계의 시장이 예전보다 안정적이 된 건 사실이지만 상금을 탈 수 있는 군소대회는 많이 줄었다”며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도 수익을 챙기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는 상황이라 텍사스 홀덤으로 옮겨가는 이들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 씨는 “스타 크래프트나 텍사스 홀덤이나 게임을 통해 승부를 내 수익을 얻는 건 똑같다”며 “전략과 전술을 통해 적절한 시점에 승부를 거는 스타일이 두 가지 게임의 공통점이다”고 덧붙였다.
프로 게이머들이 텍사스 홀덤을 하는 것은 사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재작년부터 게이머들이 도박에 빠지는 일이 종종 일어나면서 e스포츠 업계는 우려를 하고 있었다.
게이머들의 특성상 이들은 처음엔 주로 온라인 포커게임으로 시작한다. 이곳에서 재능을 보이는 이들은 한 달에 최소 500만 원 정도는 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일단 이런 정도 수입을 얻게 되면 굳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는 게임을 할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된다고 한다. 또한 이들은 온라인에서 포커를 즐기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오프라인으로 진출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트럼프방을 드나들게 되고 나중에는 거액이 베팅되는 사설 도박장까지 진출하게 된다는 것이다.
대기업이 후원하는 모 프로 게임단의 한 코치는 선수들까지 데리고 다니며 도박을 해 퇴출당하기도 했다. 또 현재도 왕성하게 활동 중인 억대 연봉의 프로 게이머가 게임대회에서 탄 상금을 도박으로 모두 날리고 다닌다는 소문은 업계에서는 널리 알려진 얘기.
프로 게이머들이 도박에 빠지는 등 무절제한 생활을 한다고 알려진 것은 한 유명 선수의 절도행각 때문이었다. 큰 대회에서 우승까지 했던 전직 프로 게이머 이 아무개 씨(25)는 2006년 서울 반포의 한 빈집 아파트의 유리창을 깨고 물건을 훔치다 붙잡힌 적이 있었다. 대회에서 얻은 상금을 도박 등으로 다 날린 이 씨가 범죄까지 저지른 사건이었다.
e스포츠 한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그 선수는 소속 게임단의 단체 생활에 전혀 적응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며 “보통 프로 게이머들은 10대 중·후반의 어린 나이에 게임만 하다 대회에 우승하고 거액의 상금을 받는 경우가 많아 단체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자기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덧붙였다.
스타 크래프트 해설자로 유명한 엄재경 씨(40)는 “자기 관리를 못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나쁜 일에 빠질 수 있는 것 아니냐”라며 꼭 e스포츠계가 도박에 잘 빠지는 것처럼 생각진 말아달라고 주문했다.
프로 갬블러 이태혁 씨(35)는 프로 게이머들이 텍사스 홀덤 플레이어로 전업하는 일에 대해 신중을 기할 것을 권유한다. 그는 “텍사스 홀덤을 비롯한 도박은 1~2년 정도 해서 성과를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스타 크래프트보다 시간과 노력을 덜 투자해도 수익을 챙길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이도 10년 정도는 갈고 닦아야 어느 정도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전했다. 또 그는 “몇몇 게이머들이 온라인 게임으로 짭짤한 수익을 올리면서 전업을 생각하고 나를 찾아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신중하게 생각하라며 적극적으로 말린다”고 하면서 “포커는 스타 크래프트를 했다고 해서 유리한 점은 없으며 타고 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류인홍 기자 ledh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