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회사원 권 아무개 씨(46)는 한 장애인협회로부터 비누세트를 샀다. “불우이웃 성금 마련을 위해 장애인이 만든 제품을 팔고 있으니 도와달라”며 ‘A 장애인협회’에서 몇 번씩 전화를 걸어와 마지못해 선물세트를 구입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집에 배달된 물품은 다 뭉개져 있어 도저히 사용하기 힘든 상태였을 뿐만 아니라 상품 자체도 인근 지역의 장애인이 만든 것이 아니라 ‘made in china’가 버젓이 박혀 있는 중국산이었다. 권 씨는 이 사실을 따지기 위해 해당 협회에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는 이미 불통이었고 얼마 후엔 아예 결번이 돼있었다. 권 씨는 장애인협회를 빙자해 물건을 판매한 후 잠적하는 전문 사기단에게 속았던 것이었다.
지난 6월 25일 대전 중부경찰서에서는 기업형으로 모금활동을 해온 B 장애인협회 대표 백 아무개 씨(47)를 사기혐의로 구속 기소하고 강 아무개 씨(48)를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한 시민의 신고로 검거된 이들은 대전과 공주에 가짜 장애인협회 사무실을 차려놓고 4명의 텔레마케터를 고용해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후원금을 모아온 것으로 밝혀졌다. 백 씨 일당이 검거됐을 당시 드러난 피해자만 해도 무려 1만여 명(피해액은 2억여 원)에 달했다.
충남 공주에서는 지난해 8월 5년 동안이나 정체를 숨긴 채 사기행각을 벌여온 또다른 가짜 장애인협회의 단체장이 구속된 적이 있다. 조사결과 이들 역시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모두 15억 8000만여 원을 사취해 모두 사적인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장애인을 위해 사용된 것은 단 1원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직원 중에도 장애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 같은 가짜 장애인단체들의 사기 모금 행각은 최근 들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경찰은 최근 장애인단체라고 자신들을 소개하며 전화로 물건을 강매하거나 후원금을 모으는 단체들은 장애인과는 전혀 상관없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대부분 사무실만 차려놓고 모금행위를 하는 가짜들이라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특정 지역에서만 보이던 이 같은 장애인협회 사칭 사기사건은 최근 들어 다른 지역에서도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크고 작은 피해사례들이 전국적으로 발생하고 있는데 문제는 이로 인해 정작 후원금을 받아야 할 진짜 장애인협회들이 오히려 ‘가짜’로 의심받는 경우도 벌어지고 있다는 것. 그 여파로 장애인들을 위한 모금활동도 위축되고 있는 실정이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