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1일 오후 서울 시흥동 수입육 직판장 에이미트 본점.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이러한 판이한 생각 차이에 대해 미국산 쇠고기 자신은 어떻게 생각할까. 미국산 쇠고기를 1인칭으로 가정해 일련의 사태를 바라보았다. 최대한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하긴 했지만 상상력도 일부 가미되었다. 미국산 쇠고기에 관한 기사가 나오면 ‘이쪽’ 아니면 ‘저쪽’으로 이분법적 사고를 하는 일부 사람들의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Hi! 오랜만이군, 친구. 설마 나를 잊은 건 아니겠지. 건망증이 심한 친구들을 위해서 하는 말인데 나 미국산 쇠고기야. ‘오륀지’ 발음으로 표현하자면 ‘엄메어리컨 미트.’ 작년 10월에 봤었잖아. 설마 9개월 만에 날 잊은 건 아니겠지. 그동안 부산의 어두컴컴한 창고에 있느라고 답답해서 죽는 줄 알았어. 이렇게 다시 밖으로 나오니 참 좋네 그려.
너희들도 잘 알고 있다시피 다시 만나기까지 참 일들이 많았어. 서울 광화문에 수십만 개의 촛불이 켜졌을 때는, 휴~ 정말 다시는 못 보는 줄 알았어. 정말 그땐 대단하더라구. 도대체 그런 불가사의한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거야? 한우 먹어서 그런 거야?
난 요즘 서울 시흥동의 에이미트라는 곳에 머물고 있어. 요즘 날 만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이 무척 많아. 물론 싫어하는 친구들이 많다는 것도 잘 알지만 적어도 에이미트에 오는 사람들은 정말 날 좋아하는 것 같아. 그 사람들 얘기 한 번 들어볼래?
“설마 정부가 위험한 물건을 팔겠냐!” “난 광우병 같은 거 무섭지 않다” “고기가 너무 부드러워서 아흔 된 노모도 잘 드시더라”
내가 낯이 뜨거울 정도로 칭찬이 자자하다니까. 에이미트에서만 하루에 1t씩 팔려나가고 있어. 주인은 더 팔고 싶은데, 그 정도가 하루에 팔 수 있는 최대의 양이래. 지금은 좀 덜하지만 처음에는 날 사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100m나 됐다니까. 이렇게 인기가 있을 줄 알았으면 더 빨리 왔어야 하는데 말이야.
그런데 이렇게 많이 팔리는 건 파격적인 세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야. 내가 좀 헐값에 팔리는 것 같아서 기분은 별로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예전의 영광을 찾을 수 있다면 기꺼이 희생하겠어. 여기 주인은 왜 얼마 전에 MBC <100분 토론>에서 “엽세요!”로 유명해진 분 있잖아 그 분이야. 이 양반이 지금 한국수입육협회 임시회장을 맡고 있거든. 그래서 봉사 차원에서 날 싼 값에서 팔고 있는 거래.
항간에는 지난해에 들어온 내가 유통기한 때문에 파격 세일을 한다고 하는데 우리 주인 양반 얘기는 달라. 지금까지 팔고 있는 건 냉장육이었고 완전히 얼린 냉동육은 유통기한이 2년이라 아무 문제가 없대. No Problem!
내가 태어난 곳은 미국 중부야. 태어난 지 6개월 동안 우리 엄마하고 풀밭에서 뛰어놀았어. 참 그때가 좋았지. 아무 걱정 없이 신나게 뛰어 놀았으니까. 휴~ 고향 생각하니까 담배 생각이 나네 그려. 한 대 줄래… 불도 좀 줘….
▲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문화제.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도축한 후에 냉장 상태로 시애틀로 옮겨졌어. 거기서 배를 타고 부산으로 왔지. 도축하고 부산까지 오는 데 한 달 정도 걸리지만 난 일본을 거쳐 오느라고 35일 걸렸어. 지루한 여행이었어. 선내 서비스가 엉망이었거든. 비행기로 오는 친구들이 그렇게 부럽더라고.
내 선배들 얘기를 좀 해볼까. 선배들이 한국에 처음 온 건 전두환 대통령 시절이었어. 그때 그 양반 동생인 전경환 씨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했다 한우 농가 사람들이 소 끌고 광화문에 들이닥치는 바람에 된통 당한 일이 있었지. 그래서 들어오지 못하다가 88년 올림픽 때 올림픽조직위원회와 한국 호텔들의 성화로 잠깐 수입을 했었어. 이것도 한우 농가의 반대로 금방 중단되었지.
그러다 93년부터 쿼터제로 수입을 시작했어. 하지만 우리 고향 사람들이 그 정도로는 안 된다고 앙탈을 부려서 2001년 경에 전면적으로 수입했지.
우리 선배들은 한국 사람들한테 인기가 대단했어. 2003년에는 전체 쇠고기 시장에서 40%를 우리가 차지했으니까. 한우는 32%였고 호주와 뉴질랜드, 캐나다산이 합쳐서 28%였어.
이런 대단한 인기는 광우병 한 방에 추락했어. 인기라는 게 다 그렇잖아. 2003년 6월 우리 고향 옆 동네인 캐나다에서 광우병이 발생하고 그 해 12월에는 우리 고향에서도 광우병이 발생한 거야. 잘나가던 인기 여가수의 섹스 비디오 테이프가 공개된 셈이지.
2006년에야 간신히 수입을 재개할 수 있었어. 하지만 인기는 예전만큼 못했지. 때때로 뼈조각이 발견되었거든. 반송, 폐기, 수입재개를 반복하다가 2007년 10월에 등뼈가 발견되면서 완전히 수입금지되고 말았어. 내가 세상에 다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현 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지 덕분이 아닌가 싶어. 그런데 한국 국민들이 날 엄청 싫어한 거야. 국민들은 날 싫어하고 그 국민들이 뽑은 대통령은 날 좋아하고…. 좀 묘한 상황이지.
그런데, 정말 내가 맛있냐고? 이봐 당신네 나라 공무원들이 맛있다고 난리잖아. 그 사람들 못 믿겠다고? 지금 에이미트에 오는 사람들도 맛있다고 또 사러 오고 그래. 또 내가 맛있는 특별한 이유도 있어. 내가 이래 봬도 한우와 맛이 가장 비슷하거든. 호주산? 이봐, 내가 비디오 테이프 사건으로 활동하지 못하고 있을 때 걔네들이 잠깐 뜬 것뿐이야. 맛으로는 비교할 수 없어.
내가 맛있는 이유는 간단해. 한우와 같은 사료를 먹고, 비슷한 환경에서 크기 때문이야. 원래 소는 방목하면서 풀을 먹으면 맛이 별로야. 난 아까 말했듯이 비육 기간에는 움직이지 않고 사료만 먹었잖아. 야들야들하다고. 또 유전적으로도 비슷해. 과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내 품종은 홀스타인인데, 한우와 유전적으로 아주 비슷하대.
너희들이 나하고 한우하고 고기 상태를 보고 구별할 수 있을 거 같아? No, Never! 나를 가장 잘 아는 전문가들도 구별 못해. 그래서 미국산 쇠고기는 한우로 둔갑하기 아주 좋지.
원산지표시제? 맞아 믿을 건 그래도 그것뿐이지. 단속 공무원이 부족해 제대로 될까 싶기도 하고 제도가 성급하게 만들어져서 여기저기서 혼선이 빚어지고 있지만 그래도 어떻게 하겠어.
믿어! 믿고 먹으란 말이야! Oh Lord! 뭐? 믿지 못하겠다고? 광우병이 걱정된다고? Oh my god! 대통령, 총리, 장관 다 믿고 심지어 우리 부시 형도 믿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야. 진짜 안전하냐고? 그건 나도 몰라. 그걸 확실히 설명할 수 있다면 내가 진작에 나서서 촛불을 껐지.
류인홍 기자 ledhong@ilyo.co.kr
도움말 육류전문가 브래드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