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플사의 CEO 스티브 잡스가 3G 아이폰을 공개하고 있다. 전세계 발매가 지난 11일 시작됐지만 국내 판매는 아직까지 미지수다. 사진 출처는 애플사. | ||
그러나 정작 이동통신 강국으로 불리는 우리나라에서는 3G 아이폰이 발매되지 않아 빈축을 사고 있다. GSM 방식으로 발매돼 국내에는 적용 자체가 불가능했던 1세대 아이폰과는 달리 3G 아이폰은 국내에서도 바로 적용이 가능한 통신 방식을 채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수입이 결정되지 않은 것. 3G 아이폰 발매를 기다렸던 국내 소비자들은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3G 아이폰은 지난 6월 9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애플 세계 개발자 컨퍼런스 2008에서 첫 모습을 드러냈다. 3G 방식의 아이폰이 출시된다는 소식에 최신 전자기기에 열광하는 한국 얼리어답터들은 국내 도입에 기술적 문제가 없는 만큼 이동통신사가 나서서 도입을 결정할 경우 국내에서도 아이폰을 사용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장밋빛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지난해 출시한 1세대 아이폰의 경우는 ‘그림의 떡’이었다. 국내에서 사용하는 CDMA 방식이 아니라 GSM 방식으로 개발돼 국내 도입 자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3G 아이폰의 경우 그 속에 담긴 운용체제의 세부적인 내용이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됐을 때 한국어가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한국시판이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였다. 최근까지 KTF가 국내에 3G 아이폰을 들여온다는 언론의 추측성 보도가 잇따르기도 했다.
그러나 7월 11일 아이폰이 전 세계 주요 국가에 동시 발매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국내에 도입된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애플사 홈페이지에 보면 이미 발매된 20개국 이외에도 연내 3G 아이폰을 판매할 예정인 70여 개국 리스트에도 한국은 빠져 있다. 기니, 온두라스, 몰타, 말리, 마다가스카르와 같이 우리나라 보다 기술 수준이 낮고 인구수가 적은 나라에서도 발매된 것을 볼 때 매우 의아한 일이다.
일단 업계에서는 3G 아이폰이 국내에 발매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 국내 발매되는 모든 휴대폰에 의무적으로 탑재해야 하는 ‘위피(WIPI)’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애플사 역시 공식발표는 하지 않았지만 한국 발매 버전에만 따로 ‘위피’를 탑재해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위피’는 휴대폰에서 각종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중간 관리 프로그램이다. 국내에서는 모바일 콘텐츠 생산 효율화를 위해 이동통신 3사가 동일하게 ‘위피’를 사용하도록 2005년 4월부터 법적으로 강제하고 있다. 당시 이를 추진했던 관계 당국에서는 ‘위피’를 국내를 넘어 세계적 표준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3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국내 이동통신 시장의 폐쇄성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해외의 경쟁력 있는 휴대폰이 국내에 들어오지 못할 뿐 아니라 국내에서 개발된 휴대폰 역시 해외에 판매하기 위해 또 다른 버전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SK텔레콤에서 발매한 블랙베리폰의 경우 당초 발매가 어려울 것으로 보였지만 법인 명의 가입을 조건으로 ‘위피’를 탑재하지 않고 우여곡절 끝에 국내에 발매된 사례도 있다. 그러나 정작 애플사가 국내 발매를 꺼리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애플사가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고 터치스크린을 내장한 데다 8기가바이트 대용량 메모리를 장착했음에도 불구하고 20만원 선에 제품을 발매할 수 있는 이유는 ‘아이튠즈’라고 하는 자사의 콘텐츠 서비스를 통해 수익을 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애플은 한국이 음악이나 동영상과 같은 콘텐츠를 돈 주고 사기보다 불법복제해 쓰는 것이 만연해 있기 때문에 아이튠즈를 서비스하지 않고 있다. 국내에 3G 아이폰을 발매할 경우 한국 유저들은 어떻게든 해킹을 통해 무료로 아이튠즈를 이용하거나 불법으로 콘텐츠를 담아서 사용할 공산이 크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불법복제가 심각한 중국에서도 3G 아이폰이 발매되지 않는 것을 감안할 때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한 많은 신규 가입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3G 아이폰을 두고 이동통신사들이 적극 발매를 검토하고 있지만 실제로 삼성이나 LG와 같은 휴대폰 메이커들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어 발매가 늦어진다는 주장도 있다. 이동통신사가 휴대폰 메이커에 눈치를 볼 정도로 갑을 관계가 형성돼 있는 것은 아니지만 떼놓고 생각할 수도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특히 20만 원 전후에 3G 아이폰이 출시될 경우 70만 원대에 팔리고 있는 삼성, LG의 풀브라우징 폰의 가격 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들 휴대폰 메이커가 미운털이 박힌 3G 아이폰을 발매한 이동통신사를 제외하고 이후 발매될 옴니아폰이나 데어폰과 같은 차세대 휴대폰을 공급할 경우 이동통신사 입장에서도 만만치 않은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3G 아이폰의 국내 발매가 불투명한 가운데 소비자들은 이를 사용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포털이나 커뮤니티 등에서는 미국에서 발매된 3G 아이폰을 구입해 국내에서 사용할 수 없겠냐는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3G 방식의 경우 유심카드를 이용해 본인인증을 하는데 현재 사용하고 있는 휴대폰의 유심카드를 빼내 3G 아이폰에 꼽는다면 사용할 수도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실제로 1세대 아이폰의 경우 중국에서는 해킹을 통해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유심카드를 빼내 아이폰에 삽입할 경우 음성통화는 가능하지만 정식으로 기기등록을 통해 사용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게다가 이러한 행위는 현행 통신법상 불법이기 때문에 자제해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
국내 소비자들이 3G 아이폰을 사용하기까지는 앞으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현재 위피 의무사용과 관련된 법률이 개정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애플사가 한국시장 진출에 대한 입장이 긍정적으로 선회한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에도 수많은 장애물들이 산재해 있다. 오픈소스 방식의 3G 아이폰이 발매될 경우 이동통신사 중심의 콘텐츠 서비스 체제가 완전히 개편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동통신 강국으로 불리며 전 세계에 수천만 대의 휴대폰을 공급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정작 여러 가지 제도와 이해관계에 묶여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을 구입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꼬집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3G 아이폰이란
애플사에서 개발한 풀브라우징 휴대폰. 초고속 무선통신을 통해 자유롭게 인터넷을 즐길 수 있으며 8~16기가바이트의 넉넉한 용량을 바탕으로 아이팟 수준의 고음질 음악재생기능을 갖추고 있다. 터치스크린을 채용해 편리한 조작 인터페이스를 지니고 있으며 애플사 특유의 디자인이 눈길을 끈다. 가격 역시 저렴해 8기가바이트 버전의 경우 199달러, 16기가바이트는 299달러에 팔린다. 단점은 짧은 배터리 지속시간 때문에 연속 통화시간이 4시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봉성창 경향게임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