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거된 조폭들의 사진으로 기사의 내용과 관련 없음. | ||
경찰은 역전파를 일망타진했을 뿐만 아니라 수원 지역 전체 폭력조직에 대해서도 소탕작전을 벌여 50여 명의 조직폭력배들을 검거했다고 한다. 가히 수원을 근거지로 하는 조폭들의 씨를 말렸다고 할 만큼 많은 숫자다. 덕분에 수원시 유흥가 시민들은 오랜만에 조폭 없는 세상에서 발을 뻗고 자게 됐다는 후문도 들린다. 한편에선 그렇게 쉽게 빨리 잡아들일 수 있는 것을 그동안에는 왜 안했느냐는 소리도 들린다. 한 여름 수원시를 서늘한 공포속으로 몰아넣었던 경찰의 조폭 검거작전의 전모를 취재했다.
경찰과 목격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지난 6월 27일 오후 9시경 수원역 근처의 한 술집에서 20대 후반의 한 남자가 다섯 명의 건장한 청년들에게 둘러싸여 욕설과 함께 구타를 당하고 있었다. 이 상황을 말리던 유일한 이는 B 씨. 하지만 B 씨도 구타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또 다른 2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그의 양쪽 팔을 붙들고 꼼짝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B 씨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뭐하는 짓이야! 하지마!”라고 소리치는 것밖에 없었다.
술집 주인도 구타 하고 있는 가해자들을 말릴 수 없었다. 경찰에 신고하는 것은 더더욱 생각할 수 없었다. 가해자들이 평소 자신의 술집에 자주 드나들던 폭력조직 ‘역전파’의 조직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5:1의 일방적인 집단구타가 끝난 것은 약 15분 후였다. 테이블에 앉아있던 한 중년남자가 나지막이 “그만”이라고 외치자 “네. 형님”이라는 말과 함께 순식간에 상황이 정리된 것. 그리고 이 남자가 “가자”라고 명령을 내리자 장정들 7명은 일사불란하게 그곳을 빠져나갔다. 이 중년의 남성은 수원 역전파의 중간보스 홍 아무개 씨(42)였다.
B 씨는 구타 당한 A 씨에게 “괜찮냐”고 물었지만 A 씨는 대답이 없었다. B 씨는 A 씨를 들쳐 업고 병원으로 향하며 어딘가로 전화를 돌렸다. 누군가와 이어진 통화에서 B 씨는 뜻밖의 한마디를 내뱉었다. “A 형사가 조폭에게 구타를 당했다.” 알고보니 조직폭력배들에게 구타를 당한 이들 일행은 경기경찰청 광역수사대 강력팀 소속 형사들이었던 것.
그렇다면 A 형사(경장)가 조폭들에게 폭행을 당한 사연은 뭘까. 경찰은 술자리에서 역전파의 중간보스 홍 씨에게 반말을 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A 형사와 B 형사(경장)는 카지노 운영과 술값 갈취 등에 역전파가 관련돼 있다는 제보를 받고 몇 달 동안 내사를 벌이던 중이었다.
폭행을 당한 그날도 A 형사 일행은 역전파가 자주 드나든다는 술집에 대한 첩보를 입수하고 그곳에 들른 것이었다. 그런데 마침 그곳에서 먼저 와 술을 마시던 역전파의 중간보스 홍 씨 일행을 만나게 됐고 오랫동안 수원에서 형사생활을 해온 B 형사가 홍 씨와 안면이 있어 합석하게 됐다.
강력팀 신참이었던 A 형사는 그날 홍 씨와 첫 대면이었다. 그런데 20대 후반의 A 형사가 40대인 홍 씨에게 실수로 반말을 하자 술에 취해있던 홍 씨가 ‘아우’들에게 다짜고짜 A 형사의 구타를 지시한 것. 경찰이라고 신분을 수차례 밝혔지만 구타는 계속됐고 A 형사는 전신타박상을 입어 전치 3주의 상해진단을 받았다.
이 사건은 곧바로 A 형사 소속 관할서인 경기지방경찰청 상부로 보고됐다. 경찰이 조직폭력배들에게 집단구타를 당했으니 경찰청이 발칵 뒤집어진 것은 당연지사. 사건 발생 이틀 후인 지난 6월 29일 ‘상부’에서는 수원지역에 위치한 모든 경찰서 강력팀에 “수원 일대 조직폭력배들을 싹 다 잡아들여라”는 명령을 내렸다.
곧 바로 수원 남부·중부·서부 경찰서 및 경기지방경찰청 강력팀이 모두 동원된 ‘협동검거작전’이 시작됐다. 이 작전은 지난 14일 역전파의 중간보스 홍 씨를 검거하고 2주 만에 종료됐는데 무려 50여 명의 조폭들을 검거했다. 역전파와 함께 수원 일대에서 악명을 떨치던 북문파, 남문파 등의 조직원들도 함께 된서리를 맞았다.
검거된 조직폭력배들의 혐의도 가지각색. 윤락업소 운영, 건설현장 이권개입, 카지노 운영 등은 기본이고 술값을 안주고 술집 웨이터를 때렸다는 혐의도 있었다.
일각에서는 쾌도난마처럼 전개된 이번 검거작전을 두고 “그렇게 쉽게 잡아들일 수 있으면서 그동안은 뭐했냐” 하는 비아냥도 들린다. 그동안 조폭들의 활동을 수수방관하다가 경찰이 당하니까 ‘괘씸죄’를 적용해 모두 잡아들인 것 아니냐는 얘기다.
하지만 작전에 직접 투입됐던 한 경찰은 “그동안 혐의가 있는 자들을 검거하지 않았던 이유는 이들을 지휘하는 두목급 인사들을 잡기 위해 지켜봤던 것”이라며 “이번 기회에 그간 꾸준히 내사를 해왔던 조직원들을 잡아들이자는 의미에서 검거작전을 펴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사건을 담당했던 경기지방경찰청의 한 형사는 “예전에는 조폭이 경찰을 때리는 일은 꿈도 꾸지 못했다”며 “이번 일로 공권력이 무너진 것을 실감하게됐다”며 혀를 찼다.
한편 수원 지역 유흥가 종사자들이나 인근의 주민들은 “어쨌거나 ‘조폭 없는 세상’은 좋은 것 아니냐”며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를 반기는 분위기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