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남파는 평균연령 60.5세에 이르는 할머니들로 구성된 소매치기단이라는 점에서 세간을 놀라게 했다. 그런데 수사결과 더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생계형 소매치기단으로 보였던 이들이 빌딩을 몇 채씩이나 소유하고 있거나 음식점을 운영하는 등 상당한 부를 축적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7월 5일 오후 5시경 서울 인사동 A 여성의류 매장 안(사진 위)은 일본인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관광객들 뒤에는 그들을 유심히 살펴보며 가까이 다가서고 있는 한 할머니가 있었다. 경찰이 지난 몇 달 동안 뒤를 쫓아오던 상습 소매치기범 장 아무개 씨(71·전과 24범)였다.
주변을 살피던 장 씨는 한 일본인 관광객 뒤로 바짝 붙어 자신의 솜씨를 발휘했다. 장 씨가 손을 날려 한 일본인의 핸드백에서 지갑을 빼드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몇 초. 워낙 감쪽같아서 피해자도 눈치채지 못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장 씨가 자신의 먹잇감을 살피는 동안 유독 장 씨만을 자세히 관찰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몇 달간 장 씨를 추적해오던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형사들이었다. 장 씨는 곧바로 현장에서 체포됐다. 그동안 인사동 동대문 남대문 일대를 돌며 소매치기를 해오던 할머니 소매치기 조직 ‘봉남파’의 마지막 일원이던 장 씨가 현행범으로 검거된 순간이었다.
장 씨는 지난 4월경에도 현행범으로 검거돼 불구속 기소된 전력이 있었다. 현행범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불구속된 사유는 ‘나이’ 때문. 법원에서는 장 씨가 고령임을 감안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그러나 경찰은 풀려난 장 씨가 또 범행을 저지를 것으로 보고 계속해서 추적했던 것이다. 장 씨가 지난 4월 검거될 당시 그와 함께 붙잡혔던 나머지 3명은 이미 구속된 상태.
봉남파는 모두 4명의 할머니로 구성된 조직이다. 이들은 10여 년 전 한 교도소에서 서로 알게 됐다고 한다. 당시 같은 교도소에서 지내던 이들은 모두 똑같이 소매치기라는 죄목으로 감방생활을 하던 입장이라 운동장 등지에서 만나며 쉽게 친해졌다고 한다. 이렇게 친해진 소매치기 ‘베테랑’ 할머니 4명이 출소한 뒤에 이들이 ‘왕언니’라 부르는 김 아무개 씨(73)를 중심으로 만든 소매치기 조직이 바로 봉남파다. 결국 봉남파의 조직원은 5명이었으나 왕언니가 얼마 전 구속되는 바람에 최근 ‘활동’은 4명이 해왔다고 경찰은 밝혔다.
왕언니는 초창기 이들에게 있어서 ‘전주’인 동시에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고 한다. 서울에 아파트를 구입해 놓았던 왕언니는 자신의 ‘아우’인 일당들을 그곳에 거주하게 했고 이들이 검거될 경우엔 변호사를 선임해주는 등 경제적인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왕언니가 치른 변호사 선임료는 출소한 후 갚아야 했다. 경찰은 왕언니가 이들을 일본에까지 보내 ‘원정 소매치기’를 시킨 적도 있다고 밝혔다.
봉남파 일당은 적게는 10범에서 많게는 25범의 소매치기 전과를 갖고 있었다. 이들을 몇 달 동안이나 근거리 추적했던 한 형사는 “한 골목을 지나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치자. 이들은 처음 마주친 사람부터 마지막 만난 사람까지 감쪽같이 다 털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평했다.
이들의 범행이 그처럼 성공률이 높았던 데는 철저한 역할 분담이 주효했다. 이들은 가방을 열거나 면도칼로 찢어 지갑을 훔치는 ‘기계’, 10여m 뒤에서 망을 보는 ‘안테나’, 피해자의 옆에서 몸을 가려주거나 주위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바람’ 등으로 역할을 분담했는데 고참인 임 씨와 장 씨가 기계 역할을, 나머지 두 사람(유 씨와 이 씨)이 ‘안테나’와 ‘바람’ 역할을 했다.
한편 이들은 생계형 잡범으로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경제적으로는 매우 부유한 것으로 조사결과 드러났다. 일당 중 임 씨는 서울에 5층짜리 빌딩을 갖고 있었고 아들은 미국 유학 중이었다. 평소 타고 다니던 차도 1억 원을 호가하는 외제차량이었다고 한다. 또 일당 중 장 씨는 부천에 2층짜리 건물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 한 명도 유명 브랜드의 커피숍에 이탈리아식 고급 레스토랑을 소유하고 있었다. 경찰 측 관계자는 이들 일당이 소매치기를 통해서 이 정도의 부를 축적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그는 “몇 해 전 이들 일당이 함께 부동산 투자를 했다는 정보를 입수한 적이 있는데 그것이 ‘대박’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들 봉남파 일당은 왜 소매치기를 멈추지 않았던 것일까. 경찰은 이들이 거의 ‘병적인 집착’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일당 중에는 ‘도벽증’ 등의 정신병력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경찰은 “이들은 단지 ‘스릴’과 ‘짜릿함’ 때문에 범행을 저질러온 것”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한편 범인 중 한 명은 이번에 출소하면 깨끗이 손을 씻고 재산을 정리해 아들이 있는 미국으로 가겠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