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 3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한국인 여성 김 아무개 씨(19)가 숨진 채 발견됐다. 김 씨가 발견된 곳은 자신의 아파트. 김 씨가 숨져 있는 것을 발견한 어머니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은 김 씨가 목이 졸린 흔적이 있고 집안 곳곳을 뒤진 흔적이 있다는 점을 들어 금품을 노린 강도의 소행으로 결론지었다. 하지만 범인에 대한 단서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넉 달 뒤인 지난 2007년 7월 7일 새벽 1시경 필리핀 중부 판나이 섬 일로일로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조 아무개 씨(28)가 식당에 손님을 가장해 침입한 강도의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 당시 목격자들은 필리핀인 3명이 식당에서 식사를 한 뒤 조 씨가 문을 닫으려 하자 갑자기 총으로 조 씨를 쏘고 돈을 훔쳐 달아났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이 역시 범인은 검거되지 않았다.
이후 2007년 12월 25일 온 가족이 함께 모여 크리스마스를 즐기던 오 아무개 씨(38)와 그의 부인 이 아무개 씨(36)가 집에 들이닥친 괴한 3명에게 총격을 받고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현장을 목격한 이는 이들의 열 살 된 딸과 아홉 살 된 아들. 이 아이들은 당시 경찰 조사에서 ‘얼굴에 복면을 쓴 괴한들은 집에 침입해 아버지를 때렸고 이를 보고 놀라 숨은 후 두 발의 총성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당시 경찰은 집안에 귀중품이 그대로 남아 있고 집에 있던 ‘특정’ 물품이 없어졌다는 점을 들어 단순 강도 살인 사건이 아니라 원한이나 금품에 얽힌 사건으로 보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300억 원대 재력가 박 아무개 씨(여·67)의 피살 사건이 국내에 알려져 충격을 주었다. 지난 4월 3일 박 씨가 필리핀 바탕가스주에서 머리에 두 발의 총격을 당해 사망한 채 발견되면서 이 사건은 “우발적 강도 살인이다” “가족이 살인을 청부한 사건이다”는 등 숱한 의문을 남겨 아직도 한국 경찰이 수사 중이다.
지난 6월 초 경찰은 “딸이 청부 살해를 사주하는 것이 녹음된 녹취 CD를 필리핀 경찰에게 넘겨받아 조사에 들어갔다”고 밝히면서 사건의 실마리는 조금씩 풀리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 6월 19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녹음 CD의 목소리는 박 씨의 딸 목소리와 유사하지만 청부 살해를 직접 지시하는 내용은 담겨있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려 사건은 다시 미궁 속으로 빠져든 상황이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