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씨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다보니 일각에서는 김옥희 씨는 다리만 놔줬을 뿐 김 씨의 직계 가족 중 일부가 이번 사건의 로드맵을 세웠다는 확인되지 않는 소문도 떠돌고 있다.
영부인의 사촌언니로만 알려져 있는 김옥희 씨. 과연 그는 누구일까. 구속 전까지의 행적을 중심으로 그의 실체를 쫓아가봤다.
김옥희 씨의 가족이나 사는 곳 등 신상정보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김윤옥 여사와의 관계도 소문만 무성할 뿐 실제로 교류가 있었는지 조차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큰아버지의 딸이라면 상당히 가까웠을 것이라는 일반론적인 추측만 하고 있을 뿐이다. 김윤옥 여사는 진주에서 태어나 두 살 때 대구로 이사를 왔다. 이 때 김 씨는 열다섯 살이었다. 김 씨도 진주에서 태어나 대구, 상주 근처에서 살다가 서울로 올라온 것만 알려져 있을 뿐 두 사람이 진주나 대구에서 같은 시기에 살았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저 거쳐간 지역이 일치하는 것만 확인되고 있을 뿐이다.
김윤옥 여사가 이명박 대통령과 결혼한 이후 대기업 회장의 아내로서 살아온 삶의 행적이 분명한 반면 김 씨의 지난 수십년간 행적은 알려진 것이 없다. 각종 공문서 상에 나타나 있는 김 씨의 신상정보도 정확하지 않다. 심지어 남편에 대해서도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김 씨가 운영했던 것으로 알려진 인테리어 업체의 법인등기부상에 나타난 김 씨 주소지는 서울 압구정동 H 아파트지만 이는 김 씨 소유가 아닌 것으로 취재결과 확인됐다. 서울 양재동의 고급 빌라로 기재된 아들의 주소지 역시 실제 주인은 다른 사람이었다.
공공기관에서도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다 보니 김 씨의 신상정보에 대한 정보유출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검찰 출입 기자들에게 나눠주는 김 씨 관련 자료에서도 김 씨의 주소와 주민등록번호 등은 모두 삭제되어 있다.
김 씨의 개인정보가 유출되어 김 씨 주변에 대한 언론의 취재가 시작되면 자칫 새로운 사실이 불거질 수도 있기 때문에 공공기관에서 거의 ‘원천봉쇄’에 가깝게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요신문>의 취재 결과 김 씨의 실제 거주지는 강남구 신사동이었다. 이곳은 16가구가 모여 사는 다세대 주택이다. 대부분의 가구엔 한두 명의 거주자만 살고 있었다. 김 씨는 이 집의 세대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김 씨의 집과 이명박 대통령 부부가 다닌 소망교회는 직선거리로 10m가 채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도보로 길 따라 찾아가더라도 3분이 걸리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 김옥희 씨가 실제 거주하고 있는 다세대 주택. 그의 주거 환경으로 보아 외부에 알려진 ‘귀부인’의 삶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모습이다. | ||
물론 교회와 김 씨 집의 위치만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짐작하는 것도 논리의 비약이긴 하다. 그러나 직접 집을 찾아가보면 ‘이렇게 가까운데 연락 한 번 하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기자가 만난 이 다세대 주택 주민들 가운데 김옥희 씨를 봤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2개월 전 할머니 한 분이 사는 것 같다고 말한 주민이 있긴 했으나 정확한 인상착의를 기억하지 못해 그 할머니가 김 씨와 동일인물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려웠다. 바로 이웃에 사는 주민은 활동시간이 달라 이웃집과 교류할 틈이 없다고 말했다.
김 씨가 사는 것으로 보이는 집은 가스 사용량이 다른 가구에 비해 현저히 적은 것으로 보아 김 씨의 왕래가 뜸했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현재까지 검찰 수사 결과와 김 씨 주변 인물들의 행적을 종합해보면 김 씨는 사람들에 따라 ‘귀부인 김옥희’와 ‘가난뱅이 할머니’라는 다소 상반된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김 씨가 부회장으로 있었던 대한노인회의 관계자들은 김 씨를 영부인을 등에 업은 ‘귀부인’으로 평가하고 있다. 김 씨가 노인회 회장 선거에 개입해 특정 후보를 밀었다는 루머가 떠도는 것도 김 씨가 노인회 내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 씨는 노인회 외에 다른 분야로도 인적 네트워크를 확대하기 위해 활발히 움직였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일 <경향신문>은 육영재단 관계자의 말을 빌어 ‘김 씨가 재단에 찾아오기도 했으며 육영수 여사 추모식에 몇 년째 꼬박꼬박 참석했으며 자기가 먼저 명함을 꺼내 여기저기 인사를 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이런 외부 행사에 참석할 때 김 씨는 고급 승용차를 타고 고급 옷을 입고 다녀 잘나가는 할머니임을 의심치 않았다’고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씨가 살고 있는 다세대 주택이나 김 씨와 관련된 소문들을 따라가다 보면 과연 김 씨가 귀부인 행세를 하고 다닐 만큼 재력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김 씨를 잘 안다는 한 정치권 인사는 “김씨는 3~4년 전 사업체를 운영하던 아들이 사기를 당하면서 사실상 무일푼이 됐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경제적인 이유로 아들 식구가 월세를 전전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 씨가 앞서 말한 다세대 주택에서 홀로 살고 있는 것도, 나아가 김 씨가 이번 일로 받은 돈의 일부를 가족들에게 나눠준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재정상태가 이렇다보니 이번 사건으로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른 다른 인사들은 전관 출신이나 로펌 소속 변호사를 고용했지만 김 씨만 사선 변호인을 선임하지 못하고 국선 변호인에 의존하고 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